Home Blog Page 6

자다 봉창 두드린 계엄의 이상한 점

0

2024년 12월 3일 11시경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은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 계엄의 면면은 이상한 점 투성이다. 이번 계엄 비정상이라는 지적이 빗발치지만 본래 계엄이라는 것이 보통의 상황을 위해 준비된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정상이라는 것이 일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면 당연히 비정상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이상한 것이 많다. 애초에 너무나 뜬금 없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계엄 이야기가 있었지만 늘 나오던 이야기기 때문에 예상된 것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그 증거로 우리 사회가 굉장히 충격받은 분위기를 보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을 제시하고 싶다. 그런데 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 같은 황당한 계엄에 의문점이 꽤나 많다.

첫 째, 동원된 병력이 너무나 적다. 바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동원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특수전사령부와 수도방위사령부가 계엄에 참여했던 것을 생각하면 훨씬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고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열려진 동원 병력은 대략 50명 가량이다. 둘 째, 동원된 병력이 특수전 병력이었다. 이들은 특수 작전에서야 스페셜리스트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는 전혀 훈련되지 않은 문외한이다. 온갖 장비를 걸친 민간인을 보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셋 째, 국회를 완전히 봉쇄하지 않았다. 충분한 병력과 경찰력으로 국회를 봉쇄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계엄을 해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것을 이른바 ‘법률기술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모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을 넘으면 얼마든지 국회에 진입할 수 있게 했으며 단지 당당히 문으로 걸어들어가려는 의원들만 제지했을 뿐이다.

넷 째, 국회의 의결을 제지하지 않았다. 하필 현장의 특수전 병력들은 침입과 제압에 특화된 병력들이다. 외부의 시민들을 경찰력이 막고 있었던 상황이니 내부의 특수전 병력은 국회의원들을 제압하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이들은 침입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다섯 째, 투입된 병력들은 실탄을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몇몇 장면에서는 훈련용 탄을 장착하고 있는 사진이 발견되었다. 계엄은 준전시 상황이고 여차하면 발포해야 함에도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다. 여섯 째, 너무나 침착한 국회의장이다. 엄청나게 급박하고 위기인 상황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매우 침착한 태도로 흥분한 의원들을 진정시키고 매끄럽게 계엄해제를 진행시켰다. 여덟 째, 이 모든 과정을 방관하던 행정부는 순순히 국회의 요구에 따라 계엄을 해제하였다. 아홉 째, 야간에 군사작전을 벌였는데 한미연합사와의 마찰이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 한국군은 한미연합군 소속으로 한미연합사의 지휘를 받는데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직도 구체적인 계엄 사유를 정부는 밝히지 않은 상태다.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이상하다. 너무나도 이상하다. 미국의 어정쩡한 태도도 이상하다. 과연 이 의문을 풀 수 있는 날이 올 것인가? 가끔 정치에서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수 십 년 후에나 공개되는 일이 있다. 이번에도 그럴 수도 있다.

보수는 주주에 관심이 없다

0

금융수익에 과세하는 민주당의 스탠스는 2년 연기로 선회했지만 다시 한 번 암호화폐 수익에 과세하겠다고 나섰다가 다시 한 번 큰코를 다치고 백기를 들고 금융수익과세와 함께 2년 연기를 받아들였다. 이 시도는 대한민국의 금융분야를 퇴보시키겠다는 운동권 진영의 과감한 행보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여러가지 증거가 있지만 주가가 폭락할 것을 걱정하는 여론에 주가 폭락시 돈을 버는 파생상품을 구입하라고 답한 것이 결정적인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두 사건 사이에 민주당의 행보다.

민주당은 금융수익과세추진이 가져온 악여론을 희석하고자 단순히 2년 연기를 한 것 뿐만 아니라 상법을 개정하여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증진시키겠다고 천명했다. 현재 자본시장법은 대주주가 온갖 농간을 부려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아도 이를 처벌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지나치게 횡행하는 물적분할이다. 필요성이 없어도 특정 사업이 잘되면 물적분할을 할 뿐만 아니라 물적분할된 회사를 대주주가 독점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소액주주들은 주가의 가치가 곤두박질치는 일을 겪는다. 가까운 사례로 하이브의 총수가 자본투자자들과 계약을 맺어 자기 지분을 늘린 사건도 있다. 이 과정에서 주가가 급락하여 역시 많은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지만 처벌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문제는 국민의힘의 태도다. 두 번의 과세 문제에서는 그래도 바로 반응했던 국민의힘이 대주주가 아닌 주주들의 권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에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아니 국민의힘 뿐만 아니라 보수진영 자체가 이 사안을 외면했다. 기업들을 대변하는 단체들과 몇몇 친기업성향의 매체들이 반발했을 뿐이다. 금융수익과세가 새로운 코리아디스카운트가 될 것이라는 보수진영의 주장은 타당하다. 하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코리아디스카운트가 다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대주주의 횡포다. 이를 보수진영이 모를리가 없지만 슬그머니 외면해버린 것이다. 애초에 이 진영이 다수 주주들의 권리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결할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반증이다. 스탠스 자체를 보여주지 않는 진영은 영혼이 없는 인간과 같다. 영혼이 없는 진영이 권력은 원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민주당, 청년들 향해 전쟁을 선포

0

‘블록체인과 Ai’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민주당원들과 국회의원들이 ‘국민’과 ‘그들만의 민주주의’라는 것을 볼모로 청년들과 서민들의 마지막 남은 계층 이동사다리인 암호화폐 시장을 ‘과세’라는 무기로 탄압하고 있다. 금투세랑 코인 과세 유예는 하나의 묶음 즉, 세트와 같은데 제대로 된 법안과 기준도 없이, 무작정 과제만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 산업 기술인 Ai•코딩•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다루는 전장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투자자들을 향해서 민주당은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자본가들과 능력자들을 탄압하는것이 옳은 것인가? 무능한 사람들이 국회에 입성하고 그들을 단지, 질투하는 대상을 향해 대신 공격과 발언을 해준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추종하는 무지몽매한 지지자들의 표를 얻어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결과가 이런것이다.

지난 15일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심에서 징역1년•집행유예2년 형을 선고받자, 노조들의 파업과 시위 & 동덕여대 페미니스트 사건 & 오늘의 주제인 민주당의 가상자산(암호화폐)과세 유예없이 공제까지. 과연 이것들이 단순히 그들만의 ‘국민’과 ‘청년’, ‘국가경제와 미래’를 위한 일인 것일까?

이러한 결과들은 결국 남녀 갈라치기 젠더갈등•저출산 시대•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기술과 경제의 퇴보를 불러왔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CEO 일론머스크는 자율주행과 우주산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주는 자율주행차 시범도입을 넘어 완전 자율주행으로 넘어가는 흐름에 있다. 또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를 ‘국가전략자산’으로 비축하겠다고 선언하였으며, 취임 즉시 암호화폐 및 가상자산 과세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빠르게 시대를 역행하고 있으며, 우리는 안타깝게도 빠르게 바뀌는 글로벌 트렌드에서 20년은 퇴보할 것이다. 국민들은 이제라도 바뀌는 세상 속에서 눈을 뜨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할 것이다.

2025년, 내년부터 대한민국의 지하경제의 자금은 급속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범죄집단이 힘을 가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인데, 미성년자 포르노, 마약, 강간 등 중범죄의 통계가 폭증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 감각을 갖춘 정치인이 민주당에 한명도 없다는것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매우 아쉽고 유감을 표한다. 이제 대한민국의 1%에 해당되는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뒷받침하는 투자자들의 미국 월스트리트로의 이민 러시는 2025년도 새해부터 본격화 될것으로 보인다.

비리는 실존하지 않던가

0

윤석열 정부에서 과학, 기술 연구 보조금을 대대적으로 삭감하며 ‘연구 카르텔’을 운운하자 연구자들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고 반발했다. 사실 전 정권의 마구잡이 지출로 보수 정권은 마른 수건 까지 짜내야 하는 입장에 늘 처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카르텔을 운운한다거나 과학과 기술 분야에 대한 폄하를 발언한 것은 정도를 많이 넘어선 것이다. 저인망식으로 비리를 찾아내 철퇴를 내리는 식이 아니라 일단 삭감하고 보는 방식도 국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큰 원인 중 하나이다. 과연 근거가 있냐는 의구심을 샀다.

하지만 과학 분야 종사자들은 9 년 전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전라남도 산하 연구소에서 25억 짜리 ‘초임계 추출기’를 이용해서 참기름을 생산, 연구소장 명의의 선물로 배포되다 적발된 사건이다. 그들의 행태는 무려 2011년 부터 여러 해에 걸쳐 벌어졌다. 이 정도의 황당한 짓을 해도 해를 여러 번 넘겨야 적발이 되는데 여기 저기서 새는 세금이 얼마나 많을지는 따져보지 않아도 뻔하다. 일하지 않은 사람을 일한 것 처럼 꾸미는 일은 만연한 일이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이 일상다반사이다. 당장 “연구비”와 “부정수급”을 검색하면 얼마나 많은 결과가 노출되는지 직접 해 보면 알 일이다.

앞 선 칼럼에서 필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른바 위정자들이 대부분 ‘급제자’들인 것은 사실이다. 한국 특유의 문화에 기인하여 이들이 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이는 면모를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나아가 연구비를 대거 삭감한 과정도 무리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온갖 연구에서 빼먹으려는 연구자들이 넘쳐나는 것 역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엄연한 팩트다. 반발할 때 반발하더라도 수치는 알아야하지 않을까. 그래야 이러한 어리석은 시도 앞에서 당당할 것 아닌가?

인문학은 위기인 적이 없다

0

인문학이 위기라는 사회적 주장은 수 십 년 째 계속되고 있다. 키워드를 “인문학”과 “위기”로 검색 엔진을 작동시키면 단번에 수 십 개의 칼럼과 기사들이 쏟아진다. 모두 인문학의 위기를 주장하는 칼럼과 기사들이다. 하지만 이들 주장을 살펴보면 인문학의 위기는 허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 많은 교수들과 언론인들은 인문학이 퇴보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 증거로 내놓은 것은 대학들의 인문학 학과의 폐과와 인문학 전공자들의 취업난 현상 뿐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인문학 교수들의 위기이고 인문학 학과 졸업자들의 위기지 인문학의 위기는 아니다.

혹자는 필자의 주장에 “연구자들과 학생들의 밥벌이가 안되는데 그 학문이 발전할 수 있는가?”라고 묻곤한다. 필자는 단호하게 “상관 없다.”고 반박한다. 어떤 학과던지 흥망성쇠가 있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는 유기체 같은 존재이다. 당연히 수요가 달라지고 학과를 원하는 수요도 달라지며 그렇게 학과의 흥망성쇠과 반복된다. 이과나 공과대학에서의 폐과나 정원 조정을 두고 아무도 과학의 위기나 공학의 위기를 말하지 않는다. 연구 환경도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 학과의 발전을 보장하지도 않고 나아가 인문학의 흥망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폐과나 정원축소에 대한 이공계와 인문학의 시각 차는 과학과 공학은 학문으로 취급하지 않는 인문학 학과의 후진적 인식을 보여줄 뿐이다. 심지어 적지 않은 사회 구성원들 특히 노장년층을 중심으로 과학과 공학은 인문학 전공자의 통제하에 있어야한다는 발언을 서슴치 않을 정도이다. 철학자들이 국가의 대부분의 부와 권력을 차지하고 그 밖의 사람들을 사람으로 취급도 하지 않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을 감추지 않는다. 상업과 공업을 천시하여 알량한 농업 분야에서 그나마 부를 창출하면 그걸 철학자들이 몽땅 차지하고 압도적인 권력을 누렸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과 공업이 창출하는 부의 양은 과거와 달리 압도적이며 이에 종사하는 이들의 인문학적 소양은 그 때의 철학자들에 뒤쳐지지 않는다.

과거의 인문학과의 전성기야 말로 비정상적인 현상이었다. 급격한 산업화로 국가에 부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인문학을 학문의 요체이자 전부로 여기던 사회적 분위기가 신설 대학마다 인문학과를 비대하게 건설했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많은 인문학자들이 필요했다. 그 잘못 끼워진 첫단추를 그리워하고 유지하려는 것이 사회적 흐름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현자를 자칭하는 인문학자들의 태도이다. 그렇게 많은 대학이 그렇게 많은 정원의 인문학과를 만들어냈으니 이제 폐교와 폐과의 흐름을 피할 수 없었던 것 뿐이다. 인문학은 위기인 적이 없다. 실수로 벌어졌던 호시절의 잔치판이 지나간 것 뿐이다.

인문학 전공자들의 취업난은 전공자들의 취업난일 뿐이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불황 속에서 누구나 취업난이다. 인문학 전공자들이 좀 더 힘들 뿐이다. 폐과나 정원이 줄어드는 것은 교수들의 제자가 줄어드는 것 뿐이다. 그렇다고해서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퇴보했다는 정황은 없다. 증거도 없다. 증명되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탐욕으로 범벅이 된 시대착오적 망상과 욕망을 사회적 위기로 비화시키는 일은 없어야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당신들이지 않은가? 혼자 욕심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도 모자라 사회적 전략을 엉망으로 만드는 행동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0

몇 해 전 필자의 모교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다. “보성고 사상 강요 사건”으로 명명된 해당 사건은 여상사가 부하 남직원을 성추행하는 내용의 과제를 제출한 학생에게 남녀 성별을 바꾸도록 교사가 강요하면서 학생이 입시 문제로 협박한다고 느껴 문제가 된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서로 오해였던 걸로 정리되며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었다. 중요한 포인트는 ‘여성은 약자니 가해자가 될 수 없고 남성은 강자니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 논리는 작금의 페미니즘 진영이 전가의 보도 처럼 사용하는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의 핵심이다.

사실 동일한 논리는 2010년대 후반 페미니즘 진영이 정치권의 핵심으로 떠오르기 한참 전 부터 좌파 진영의 표어였다. “진보 세력(좌파 세력)은 약자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될 수 없고 극우 세력(우파 세력)은 강자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수 없는 여론 조작과 범죄 행위에 있어서 이 논리로 방어했다. 사람을 때려도 물건을 훔쳐도 심지어 누군갈 죽여도 범죄가 아니라 ‘저항’으로 치환해내는 기적의 정신 승리의 근본이었다. 심지어 애초에 사건이 벌어진 적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그대로 좌파 진영의 품 안에서 몸집을 키운 페미니즘 진영에 이식된 것이다.

하지만 범죄는 강자와 약자를 가리지 않는다. 애초에 절대적 강자나 절대적 약자가 있지 않다. 그것은 좌파 진영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단지 상황을 왜곡하기 위한 냉혹하고 잔인한 선택일 뿐이다. 지난 23일 어느 검사가 중징계를 받았다. 부하 검사를 성추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해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이다. 여성은 절대적 약자이기에 상사여도 강자가 될 수 없고 가해자도 될 수 없다는 좌파 진영의 저열하기 짝이 없는 논리를 모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에 필자는 극도의 분노와 수치심을 감출 수 없다. 그렇지만 학교 당국은 그 교사를 감쌌다. 그런식이었다. 늘 그런식이었다.

진영을 따지지 않는 의료 죽이기

0

윤석열 정부의 자칭 의료개혁이 점입가경이다. 이제는 40개 의대 교수협의회가 소속된 전국의대교수협의회가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하는 여야의정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부의 의료석열 정부의 자칭 의료개혁이 점입가경이다. 이제는 40개 의대 교수협의회가 소속된 전국의대교수협의회가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하는 여야의정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의대정원 2000명 확대 정책은 시작 부터가 합리적이지 않았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연간 2000명’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제시되었고 정부는 “근거가 있는 숫자다.”는 억지 변명이나 늘어놓았다. 하지만 논의된 적이 없는데 합리적 근거가 있는 결론이 도출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본래 의대정원의 대대적인 확대 정책은 좌파 정권의 발상이다. 좌파 집단이 의사 집단을 ‘썩어빠진 부루주아지 놈들’로 보는 것은 하루 이틀 현상이 아니다. 이들이 꿈꾸는 사회는 ‘무상의료’로 소련 시절의 표어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본의 집중으로 이루어지는 의료기술의 발전과 보수 특유의 중도좌파 정책인 ‘의료보험’으로 저렴하고 진보된 의료를 제공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소련이나 북한이 제공하는 무상의료만을 80년대 부터 되뇌이고 또 되뇌일 뿐이다. 보건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이들 좌파 세력은 자신들의 무상의료 주장이 가져올 파괴적인 의료 붕괴를 예상하는 의사 집단을 ‘숙청되야 마땅한 집단’으로 여기며 경멸해왔다. 그런 좌파 세력이 의료가 붕괴되던가 말던가 의사들을 극도의 공급 과잉으로 만들어 괴롭히고자 생각한 것이 의대 정원의 대폭 확대이다.

그런데 의사 집단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우파 정권에서 똑같은 정책을 가져왔다. 사실 의대 정원이 적어서 필수의료가 부족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피부과 등 높은 소득을 자랑하는 과들의 존재는 수 십 년 전 부터 존재했다. 물론 필수의료 지원자가 감소하는 것도 하루이틀간의 문제가 아니긴 하다. 하지만 극도로 빠르게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근래 몇 년 전 부터이다. 특히 소아과의 경우 이대병원 사건 이후 눈에 띄게 더 빨라졌다. 대부분 사법리스크가 발생하고 나서 벌어지는 일이다. 일렬의 의료소송에서의 판결들은 일괄적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의사의 과실이다.”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이란 본래 아무 과실이 없어도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신체를 100%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는 단지 최선을 다할 뿐이고 결정적인 과실이 아니라면 처벌받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법부는 단호하게 “환자가 죽었다면 유죄고 그 자체로 과실이다. 다르게 치료했으면 살았음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사법부의 태도는 사법부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주류의 시각을 보여준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 이른바 ‘급제자’들은 세상 모든 것에 자신들이 통달한다고 믿는 경향도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자식 말고는 모두 소모품’이라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치료행위가 결국 소송을 통해 유죄를 받고 의사 자격을 박탈당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치료하고 법원의 판결을 마땅히 받아들여져 사회적으로 폐기되는 길을 스스로 걸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 지배계급이 도달한 결론인 것이다. 이것은 이미 대부분의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강요 받는 입장이다. 월급 받는 입장이라면 스스로 소모품임을 자각하고 무리하다가 과로로 죽고 감히 산재는 신청하는게 아니라는 프레임이 낯설지 않은 것 처럼 말이다. 이제 ‘사(士)자’ 직업이라고 불리던 의사들은 기득권에서 축출당해 소모품의 위치로 가라는 것이 집권세력의 메시지이다. “어디 메스를 든 잡인이 겸상하려 드느냐?”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저에는 ‘인문학’이란 학문의 전부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과거 권력자였고 지금도 권력과 연결되어 있는 늙은이들은 과학이나 기술 전공은 직업인이나 양성하는 잡기로 보며 인문학이 대접받지 못하고 기술인이 취업이 잘되는 현상을 여전히 한탄한다. 이러한 현재를 세상이 뒤집어져 있는 것으로 여기고 그 원흉을 군사정권으로 본다. 천하디 천한 군인 나부랭이들이 뭘 모르고 잡인들을 대우하고 학문을 소흘히 해서 나라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수 십 년 동안 천한 잡인들을 소모품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고 헐값에 소모되고 폐기되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학문 즉 인문학을 배운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대접받고 부를 누리는 사회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며 조용히 투쟁해왔다. 그들의 시각에는 이제 메스를 든 잡것들을 자신들의 위치로 보낼 차례인 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사법부에 스며들고 이제는 행정부도 젖어들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이들의 세계관에는 우리 사회가 누리는 부의 원천이 기술과 과학이라는 생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암호화폐와 국가 전략적 비축자산

0

■ 서론: 2024년 11월 06일 미국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까지 미국의 거대 양당 모두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에 대해 지원을 한다는 정강 정책을 발표하였으며, 특히 도널트 트럼프의 경우, 지난 24년 7월 비트코인 매거진의 ‘2024 비트코인 컨퍼런스 행사’에서 “비트코인을 ‘국가의 전략적 비축자산’으로 포함시켜야한다.”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국가 전략적 비축자산(Strategic Reserve Asset)의 특징으로는 1) 경제적 안정성 확보, 2)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대응 3) 국가 안보와 긴급 상황 대비 4) 시장 영향력과 통제력 강화로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비축되고 장기적인 경제적•정치적•군사적•외교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전략적 준비자산으로 금(Gold), 원유(석유:oil), 희토류(Rare Earth Elements), 식량(Food Reseves)가 존재하는데, 여기에 비트코인 및 디지털자산(Bitcoin and Digital Assets)를 전략적 준비자산으로 논의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탈중앙화되어 있으며, 특정 국가나 기관들이 통제할 수 없는 일종의 ‘탈국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부 국가와 기관은 이를 새로운 형태의 가치 저장 수단으로 고려하고 있다.

■ 본론: 국제통용 화폐이자 세계 기축 통화인 달러와 무역의 중심지인 바다를 장악한 군사력 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힘으로 손꼽힌다. UN에 가입한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패트로 달러’를 매개로 무역 및 금융 거래를 하고 있다. 미국이 달러를 발행하면 수많은 나라들이 함께 사용한 다. 통화량을 늘리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게 경제학의 상식이지만 패권국가인 미국은 예외에 가깝다. 돈을 찍어 국가재정을 마련한다는 이른바 ‘인플레이션세’를 국가부채를 발행한 미국이 아닌, 전세계가 나눠 부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미국의 국민들에게 큰 부담을 지우지 않 고도 달러를 찍어 1000조가 드는 전쟁도 쉽게 결정할 수 있다. 이렇듯이 재정에 대한 부담없이 자유롭게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외에는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바로 이 ‘달러 패권’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2022년 발생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시작으로 전 세계의 지정학적 블록화가 급속도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흥미롭게도 미국 스스로가 달러 패권을 약화시키는 실책을 저질렀다 고 지적한다. 전세계가 함께 쓰는 달러의 힘을 이용해 문제 있는 나라에 대해 ‘달러를 사용 못하 게 하는’ 금융제재를 가하는 빈도를 높여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러시아는 탈달러를 이끄는 대표적인 국가다. 2022년 0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특수군사작전’을 수행하자 SWIFT결제시스템에서 러시아를 배제하는 경제제재를 가한 것이다. 처음엔 제재 대상국을 국제거 래에서 고립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빈도가 높아지면서 이런 제재 대상국들이 너무 많아짐에 따 라 이들끼리 제3의 결제수단(CBDC와 스테이블 코인)으로 거래하는 방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격 침공 이후 달러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 (SWIFT)에서 배제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지난 1년 동안 러시아는 외환보유고의 약 절반 이 동결됐고, 주요 러시아 은행이 SWIFT에서 배제됐다. 이 영향으로 러시아의 역외 위안화 사용 은 2020년 0.26% 미만이었으나, 1월 기준 2.57%로 급증했다. 러시아 국영 가스 대기업 가즈 프롬(GAZPROM)은 지난해 9월 중국석유공사와 러시아가 중국에 공급하는 가스 대금을 루블과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했으며, 금 생산업체인 폴리우스를 포함한 다른 러시아 기업도 채권 시장에 서 위안화 차입을 시작했고, 지난 2022년 10월, 모스크바 거래소에서 거래된 외화 중 위안화는 미국 달러를 넘어 가장 많이 거래된 외화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이자 “패트로 달러(1975년부터 원유 대금을 미국 달러로만 결제하도록 한 시스템으로 미국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만든 원동력)”를 통해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어준 사우디아라비아도 위안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2023년 3월 중국 국영 에너지 기업인 중 국해양석유는 프랑스 토털에너지로부터 구입한 아랍에미리트(UAE)산 액화천연가스(LNG) 대금을 위안화로 지급했다. 또한 사우디는 중국에 판매한 석유 대금을 달러 대신 위안화로 받는 것을 고려 중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2월 사우디를 방문해 에너지 협력의 새로운 패 러다임을 제시하고 석유·가스 거래에서 위안화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 데 따른 것이다. 그 외에 중국의 중재로 지난해인 2023년 03 월 이란 – 사우디는 단교를 한지 7년만에 관계정 상화 선언에 합의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기존 안보경제 체제의 확대현상이 벌어지며 블록화와 다극화된 새로운 안보 체제가 형성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주로 언론 등에서 제기되었으나, 학계 일각에서도 중국의 CBDC 디지털화폐 도 입과 SWIFT를 대체하려는 중국의 CIPS시스템은 ‘돈의 흐름’과 기축통화인 미국의 달러패권과 달 러화 위상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미국과 중국 간 디지털 통화패권 전쟁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넘어 국 가 간 지급 결제 시스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이러한 국가 간 지급 결제시스템 내에서 통 용되는 화폐가 비트코인•CBDC(디지털달러•위안화 등)인 것이다. 기존 미국 등 서구 선진국 중심의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IFT) 시스템이 중국, 러시아 등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의 경제 제재 용도로 활용되면서 중국, 러시아 등 Brics 중심 국가들이 무역에서 자체 국가 간 지급 결제 시스템을 선보이고 규모를 키우며 ‘탈달러화’를 가속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산원장 (DLT: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의 대표적인 기술이자 세계최초의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속성인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와 블록체인 기반 기술을 활 용해 SWIFT시스템을 대체하기 위해 탄생한 리플(RIPPLE)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즉, 정리하면 달러가 통용되지 않는 공간이 넓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공간의 확대를 세계2위 경제대국 중국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당면 과제는 당장 달러 패권을 무 너뜨리는 게 아니다. 향후 유사시에 중국을 겨냥할 수 있는 미국의 제재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할 정도로만 달러의 지위를 약화시킬 수 있어도 큰 성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은 그 목표 에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 결론:향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그의 발언대로 비트코인이 향후 전략적 준비 자산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전략적 준비자산들을 통해 외부 충격이나 2017년부터 현재의 2024년까지 진행중인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과 같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이와함께 비트코인은 인플레이션 헷지 자산이므로 국가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경제적인 자주성을 강화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기여하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트코인과 같이 디지털 자산(스테이블 코인과 CBDC: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들이 전략적 준비자산 목록에 포함이 되는 것은 글로벌사우스와 글로벌 노스의 각각의 정치•경제의 블록화와 전세계의 트렌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며, 총성없는 새로운 화폐 전쟁의 시작이자 신냉전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바라보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여성들이 21세기를 사는 방법

0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청년층은 남녀로 갈려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여성들에게 유리해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기성세대는 다수의 여성들에 의한 온라인 성범죄는 문제제기를 하는 쪽을 힐난하고 비웃지만 다수의 남성에 의한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에 있어서는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큰 분노를 쏟는다. 근본적으로 23쌍의 염색체 중 단 하나의 성염색체를 기준으로 진영을 나누고 자신들이 소속된 그 어떤 집단 보다 심지어 가족 보다 우선시하고 나머지 사람들에 극도의 증오를 보내는 것은 비합리적이지만 수 백 만의 사람들이 이에 열광하고 있는 상황이다.

젊은 여성들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래디컬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근원에 대한 토론은 꽤나 흥미롭지만 이 칼럼에서 다루려는 바는 아니다. 다만 이들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무장하고 젊은 남성들을 짓밟고 있는지 그 힘의 근본에 대한 서술을 하려 한다. 이들 집단은 아이러니하게도 19세기 가치관을 가진 가부장제로 무장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있다. 이들에 있어서 남성은 외부 세력과의 싸움에서 희생해야하는 의무가 있으며 가정의 경제도 전적으로 책임져야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정도로 가부장적인 집단은 한반도 역사에서 존재한 적이 없을 것이다. 고대 한반도는 일부 모계 사회였으며 가장 미소지니가 강력했다고 평가받는 조선 조차도 여성이 경제 활동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이들의 가부장적 성향은 여성의 의무에 이르러서도 동일하다. 가부장제의 사상은 여성은 무능한 존재로 보기 때문에 그다지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 집단은 이를 초월한 가부장적 태도를 취한다. 일반론에 있어서는 “여성도 충분히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각론에 이르러서는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의무를 수행할 수 없고 수행해서도 안되며 오직 남성들에게만 책임이 주어져야한다.”라고 주장한다. 가부장제 사회가 주장하던 바와 빼다박았다. 이들은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스스로 의식하는지 “가부장제와는 다르며 오직 ‘다름’을 인정하는 것 뿐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모든 ‘다름’이 ‘열등함’으로 해석된다는 것은 자각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들 집단은 ‘평등 사상’에 대한 독점을 시도한다. 어떤 것이 ‘평등’인지 남성들은 논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능력이 되어도 배제되고 능력이 되지 않아도 발탁되는 기계적인 ‘성 할당제’는 매우 불평등한 제도이지만 이들 집단에 의해서 ‘평등’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이 극히 불평등한 제도는 평등한 제도로 인정 받는다. 이는 이들이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인 것과 관련이 있는데 우리 사회의 사회주의 집단은 어떤 대상에 대한 평가를 독점하는 식으로 사회적 갈등에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 필자는 의무 경찰 출신이다 – 집회에서 밤이 새도록 경찰을 두들겨 패도 다음날 사회주의 집단과 이들이 장악한 언론이 “평화 시위”라고 정하기만하면 그 시위는 사회적으로 평화 시위로 인정 받았고 죽창으로 경찰관의 얼굴을 찢어 갈긴 인물도 평화 시위에도 불구하고 체포된 억울한 정치범으로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사회다.

이렇게 조선시대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극단적 가부장제와 평등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앞세워 청년 여성들은 청년 남성들을 아주 갈아내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승리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기성세대의 청년 착취를 위한 전략이 존재한다고 본다. 한국 사회는 계급이 어떤 특징 보다 ‘세대’로 갈리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오직 청년 세대만 남녀로 한 번 더 갈려 있다. 마치 백인 농장주가 흑인들은 집사 역할을 하는 흑인과 노동을 전담하는 흑인으로 갈라놓고 그들간의 갈등을 이용해 안정적으로 지배한 것과 형태가 유사하다. 86세대의 착취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남성들은 이제 산업화 세대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걸 깨달은 듯 하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하던 청년표가 대거 이탈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자살자 수 대신 자살 시도율인 이유

0

보통 언론에서 자살 문제를 다룰 때 자살자 숫자나 자살율을 인용하는 것이 과거 수 십 년 동안의 관행이었다.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자살이라는 사회현상을 다루는데 있어서 이 두 수치가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다. 처음엔 “여성의 자살자 수”만 똑 떼어내서 다루더니 “남성의 자살자 수”가 더 많다는 지적이 나오자 “여성의 자살 시도율”을 내놓은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거의 없던 방식이다. 이를 다루는 매체나 기관은 모두 똑같은 결론을 내세우고 있다. 이 사회가 여성만 똑 떼어내어 자살로 몰고 있는 가해자라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프레임이다.

그런데 자살자 수나 자살율이 자신들이 만든 프레임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매체와 기관들(대부분 주류 페미니즘*1 을 지지하고 나선 좌파 성향이다.)은 “시도율”이라는 수치를 가지고 나온 것이다. 물론 자살시도율도 연구하면 유의미한 내용을 찾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이제 까지 사회적으로 많이 다룬 통계가 아니기 때문에 대중에 알려진 기존의 자살율과 자살수와 다른 차이점은 유일하게 남성 보다 여성의 숫자가 크다는 것 뿐이다. 결국 이들 매체나 기관들의 의도는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 프레임을 이미 결론으로 정해두고 이를 지지하는 듯한 숫자를 가져온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프레임을 먼저 정하고 이를 지지하는 숫자를 바꿔가며 찾고 있다는 현상 만큼은 바뀌지 않는다.

사실 펜데믹과 자살과의 상관 관계는 경제 위기 앞에서 서민들, 약자들이 취약하고 이들이 죽음으로 몰린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일 것이다. 청년들로 포커스를 좁혔을 때, 남자가 여자 보다 더 많이 자살했다곤 하지만 남녀 모두 자살자 수가 는 것을 보면 강인할 것이라는 사회 통념과 달리 경제적으로 덜 갖춰진 청년층이 위기에 빠지기 더 쉽고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선거철 마다 남녀갈등을 일으켜 2030세대를 남녀로 가르고 다시 이들을 지지하는 405060과 607080으로 갈라세워 이득을 보려드는 운동권 진영에게는 저런 합리적 사고는 한가로운 이야기에 불과하다. 당장 다가오는 총선에서 다시 이기고 나아가 다음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남녀가 그리고 세대간이 반목할 불을 붙여야 할 절박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좌파 진영의 다급함을 이해해 줄 수는 없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도덕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지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나아가 이러한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이 낳은 괴물인 주류 페미니즘이 얼마나 거대하고 위험한 악인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맹인 코끼리 만지는 수준인 보수 진영의 주류 세력에 대해서도 회초리를 들 수 밖에 없다. 참으로 암담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