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을 따지지 않는 의료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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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자칭 의료개혁이 점입가경이다. 이제는 40개 의대 교수협의회가 소속된 전국의대교수협의회가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하는 여야의정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부의 의료석열 정부의 자칭 의료개혁이 점입가경이다. 이제는 40개 의대 교수협의회가 소속된 전국의대교수협의회가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하는 여야의정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의대정원 2000명 확대 정책은 시작 부터가 합리적이지 않았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연간 2000명’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제시되었고 정부는 “근거가 있는 숫자다.”는 억지 변명이나 늘어놓았다. 하지만 논의된 적이 없는데 합리적 근거가 있는 결론이 도출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본래 의대정원의 대대적인 확대 정책은 좌파 정권의 발상이다. 좌파 집단이 의사 집단을 ‘썩어빠진 부루주아지 놈들’로 보는 것은 하루 이틀 현상이 아니다. 이들이 꿈꾸는 사회는 ‘무상의료’로 소련 시절의 표어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본의 집중으로 이루어지는 의료기술의 발전과 보수 특유의 중도좌파 정책인 ‘의료보험’으로 저렴하고 진보된 의료를 제공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소련이나 북한이 제공하는 무상의료만을 80년대 부터 되뇌이고 또 되뇌일 뿐이다. 보건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이들 좌파 세력은 자신들의 무상의료 주장이 가져올 파괴적인 의료 붕괴를 예상하는 의사 집단을 ‘숙청되야 마땅한 집단’으로 여기며 경멸해왔다. 그런 좌파 세력이 의료가 붕괴되던가 말던가 의사들을 극도의 공급 과잉으로 만들어 괴롭히고자 생각한 것이 의대 정원의 대폭 확대이다.

그런데 의사 집단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우파 정권에서 똑같은 정책을 가져왔다. 사실 의대 정원이 적어서 필수의료가 부족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피부과 등 높은 소득을 자랑하는 과들의 존재는 수 십 년 전 부터 존재했다. 물론 필수의료 지원자가 감소하는 것도 하루이틀간의 문제가 아니긴 하다. 하지만 극도로 빠르게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근래 몇 년 전 부터이다. 특히 소아과의 경우 이대병원 사건 이후 눈에 띄게 더 빨라졌다. 대부분 사법리스크가 발생하고 나서 벌어지는 일이다. 일렬의 의료소송에서의 판결들은 일괄적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의사의 과실이다.”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이란 본래 아무 과실이 없어도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신체를 100%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는 단지 최선을 다할 뿐이고 결정적인 과실이 아니라면 처벌받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법부는 단호하게 “환자가 죽었다면 유죄고 그 자체로 과실이다. 다르게 치료했으면 살았음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사법부의 태도는 사법부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주류의 시각을 보여준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 이른바 ‘급제자’들은 세상 모든 것에 자신들이 통달한다고 믿는 경향도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자식 말고는 모두 소모품’이라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치료행위가 결국 소송을 통해 유죄를 받고 의사 자격을 박탈당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치료하고 법원의 판결을 마땅히 받아들여져 사회적으로 폐기되는 길을 스스로 걸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 지배계급이 도달한 결론인 것이다. 이것은 이미 대부분의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강요 받는 입장이다. 월급 받는 입장이라면 스스로 소모품임을 자각하고 무리하다가 과로로 죽고 감히 산재는 신청하는게 아니라는 프레임이 낯설지 않은 것 처럼 말이다. 이제 ‘사(士)자’ 직업이라고 불리던 의사들은 기득권에서 축출당해 소모품의 위치로 가라는 것이 집권세력의 메시지이다. “어디 메스를 든 잡인이 겸상하려 드느냐?”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저에는 ‘인문학’이란 학문의 전부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과거 권력자였고 지금도 권력과 연결되어 있는 늙은이들은 과학이나 기술 전공은 직업인이나 양성하는 잡기로 보며 인문학이 대접받지 못하고 기술인이 취업이 잘되는 현상을 여전히 한탄한다. 이러한 현재를 세상이 뒤집어져 있는 것으로 여기고 그 원흉을 군사정권으로 본다. 천하디 천한 군인 나부랭이들이 뭘 모르고 잡인들을 대우하고 학문을 소흘히 해서 나라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수 십 년 동안 천한 잡인들을 소모품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고 헐값에 소모되고 폐기되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학문 즉 인문학을 배운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대접받고 부를 누리는 사회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며 조용히 투쟁해왔다. 그들의 시각에는 이제 메스를 든 잡것들을 자신들의 위치로 보낼 차례인 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사법부에 스며들고 이제는 행정부도 젖어들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이들의 세계관에는 우리 사회가 누리는 부의 원천이 기술과 과학이라는 생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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