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Blog Page 7

소아과 수가 정상화

0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토요일의 느지막한 오후 가족 모임을 가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는 복통을 호소했고 하필 그 인근에는 주말 영업 병원이 없었다. 있었다 하더라도 너무 늦은 시간이라 진료가 끝났을 것이 분명했다. 결국은 아이를 데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차를 달려 응급실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그대로 달린 병원은 새로 지은 삐까뻔쩍한 종합 병원이었다. 그러나 응급실에 들어가자 마자 괴롭게 오는 아이를 안은채로 발길을 돌려야했다. 응급실에 소아과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세브란스 병원 까지 가서야 소아응급실에서 응급진료를 볼 수 있었다. 서울 시내를 가로지르면서 낭비된 시간 동안 아이는 치료받지 못하고 고통에 시달려야 했음은 물론이다. 거기에 더해 세브란스 병원에 소아응급실이 있어도 너무나 붐벼 다음날 새벽에야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소아과를 포함해서 필수의료 분야 수련의에 지원하는 의사들이 부족해서 난리인 것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소아과는 그 정도가 심해서 동네 소아과를 방문하면 한 시간 대기는 기본이고 두 시간 정도 대기하는 일도 허다하다. 지역에 소아과 의원이 워낙 많이 폐업해서 멀리서 부터 자차로 방문하느라 주차장이 북새통인 것도 늘 보는 현상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의료 정책의 핵심 집단의 해결책은 의사를 엄청나게 많이 배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밀려밀려 소아과 전문의 자격도 획득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소아과 의원을 창업할 것이니 지금의 소아과 의원 부족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집단은 좌익 집단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집단의 해결책은 정말 단순하고 명쾌해서 보수 진영에서도 대부분 수용하는 부분이다. 문제는 말한대로 실현될 리가 없는 지옥으로 향하는 초고속도로라는 것이다.

작금의 소아과 의원 부족 현상은 이미 있는 소아과 의원들 조차 폐업하는 현상의 결과물이다. 이 말인즉 지금의 환경에서는 직전 까지가 소아과 의원이 과잉 상태였고 그 과잉 상태가 해소된 적정 상태가 현재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설명에는 반드시 따라오는 반문이 있다. 소아과 의원에 환자가 가득하고 한 시간 넘게 대기하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어떻게 적정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반문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의료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족한 상태지만 공급자 입장에서는 적정 상태이기 때문이다. 입장에 따라서 적정하다 아니다는 다르게 볼 수 있다. 왜 적정한 의원의 숫자는 환자들에게 부족한 숫자가 되었을까? 그것은 소아과가 필수 의료의 하나로서 의료보험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있기 때문이다.

필수의료 진료과목은 필수라는 이유로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이 매우 적다. 의료보험은 그 시작 자체가 가난하던 박정희 정권 시절 서민들의 의료복지를 위해 고안된 제도로서 국가가 의료를 제공할 여력이 없다는 당시 현실 까지 반영되어 극도의 ‘박리다매’를 추구하도록 설계되어있다. 즉, 의원 입장에서는 이윤이 별로 안되는 것이다. 필수의료에서는 심지어 과잉진료에 대해서도 유난히 보수적인 기준을 들이대기 때문에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를 하면 심사평가원에서는 가차 없이 과잉진료로 판단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결국 소아과는 이윤이 극한의 작은 이윤에 이르렀고 그 결과 소아과 의원은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다수의 의원이 폐업하고 살아남은 소수가 일대의 수요를 흡수해 간신히 생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외과의로서 필수의료의 현실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던 이국종 교수가 최근 어느 방송에 출연하여 이제 까지 쉽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필수의료를 정상화 하려면 수가를 현실화 해야 한다고 말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수가를 올려 필수의료가 처한 극한의 박리다매 상태를 완화해야 의원도 늘어나고 대형 병원의 TO도 늘고 결과적으로 전문의가 되려는 의사도 늘 것이다. 이 교수는 필수의료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는 자신이 의대생이던 수 십 년 전에도 심각했다고 증언했다. 의대 정원은 비록 늘지 않았어도 수 십 년 동안 의사는 수 만 명이 더 공급됬는데 이는 해결되지 않았다. 원인이 의사의 숫자가 아니고 의료보험 시스템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수가를 정상화 해야 소아과가 살고 우리 아이들의 건강권을 확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이는 국민들이 다음의 세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첫 째, 자신의 일도 아닌 남의 분야(의료시스템)를 이해할 의사가 없는 부류가 있다. 둘 째, 의도적으로 쿠바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 당장의 의료 체계 붕괴를 바라는 부류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셋 째, 의료보험료의 증가를 우려하는 부류이다. *1 적어도 세 번 째 부류에게는 이렇게 묻고 싶다. “건강 보다 돈이 중요하십니까?”

  1. 문재인 케어 전에는 건강보험이 흑자였으며 문재인 정부는 한의원 보험 적용, MRI 보험 적용 등 우선순위에 없는 것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부은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은 문 정권의 낭비 정책을 바로 잡으면 수가를 올려도 어느 정도 완충시킬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외국인들의 건강보험 재정 피해도 보완 작업에 있는데 이 부분도 건강보험의 수가 인상 능력을 일정 부분 확보해 줄 것이다. 회계사들의 정확한 계산이 필요하겠지만 무조건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가난한 노인 부유한 노인

0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를 손보겠다고 공약을 내걸자 대한노인회에서 발끈하고 나섰다. 이 제도는 진작에 세대간 파열음을 야기하고 있던 갈등의 씨앗이긴하다. 본래 이 제도를 문제 삼은 것은 좌파 진영이었다. 90년대에 방만한 경영과 요금 인상 억제 기조로 적자가 커지자 지하철 운영 주체에는 구조조정의 압박이 가해졌다. 그 때 구조조정을 회피하기 위해 노조 측은 노인들의 무임승차를 문제삼고 나섰다. 무임승차 인원에 성인요금을 곱하면 어마어마한 거액이 생기니 이 만큼 돈을 내고 탔으면 구조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는 더 발전해서 구조조정 압박의 원인 자체가 무임승차에 있다는 주장까지 된다. 물론 이는 잘못된 논리다. 무임승차 제도가 없다고 가정하면 노인 탑승 횟수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한 금액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주장은 수 십 년 동안 좌파만의 전유물이었다. 빈약한 노인복지와 노인가난 속에서 얼마 안되는 노인 복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노인 공경의 사회 문화 속에서 노인복지는 빈약한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 나마 있는 복지 제도를 철회하자는 주장을 어느 정치인도 쉽게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책임을 물을 대상이 모호한 것도 원인이다. 서울시는 중앙정부의 정책의 비용을 왜 광역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하냐고 주장하지만 이 제도는 지방자치제도 시행 전의 정책이다. 즉 서울시와 정부가 한 몸이던 시절의 산물인 것이다. 만약 서울시의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게 되면 전국에서 왜 자신들의 세금으로 서울시민들의 복지를 지탱하냐는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나아가 너도나도 중앙정부에 막대한 자금으로 지하철을 건설하고 같은 복지를 제공해 달라고 나올 수도 있다.

사실 무임승차 제도는 가난한 노인을 위한 복지다. 산업화세대는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당연한 세대였고 이 영향으로 한국은 노인복지가 매우 빈약했다. 국가가 아닌 자식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인식은 노후 준비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결과를 낳았고 재산이 있어도 자신을 봉양하는 자식이나 장자에게 냉큼 증여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러한 현상은 2000년대 초에 증여 취소 소송이 줄을 잇게 되는 것과 이어진다. 이러한 빈곤한 상황에서 무임승차 제도는 노인복지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86세대가 정치적 주도권을 쥔 채로 노인에 진입하게 되면서 노인복지가 증가하게 되었고 이들은 노후대비를 시작한 세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큰 노인복지라는 좌파 정권의 소위 ‘집값 폭등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도 하다. 새로 등장한 부유한 노인층을 보면서 젊은 세대는 무임승차 까지 하는 것은 과한 복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더 나이든 가난한 노인들은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수도권 철도의 운영주체는 30년째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구조조정과 노조의 철밥통의 조합이 하청업체 직원의 죽음을 만들어내는 사고 까지 야기 할 정도로 마른 수건 까지 짜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유한 노인들까지 등장하면서 대중은 특히 청년층은 무임승차제도에 어떻게든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분명히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고 이를 위해서 누군가는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내야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 내용의 급진성이 없더라도 갑작스럽게 꺼내드는 것은 가난한 노인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이준석 대표의 발언은 늘 하던 방식이지만 약자에겐 정치적 폭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망언”이나 “폐륜”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고압적이고 청년들의 거부감을 자아내는 반응이다. 어쩌면 한동훈 비대위장의 사과로 대한노인회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

국가적 아젠다에 비하면 지하철 무임승차는 너무 사소한 주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소한 사안에 대해서도 각 정치 주체의 주고 받음이 이렇게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우리 정치의 미숙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을 어떻게 대할까

0

일본에 강진이 발생하였다. 여진이 129회에 달하고 사망자가 40명이 넘는 대재앙이다. 한국의 인터넷 여론은 일본을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한번에 뒤집혀졌다. 일본 정부가 자국 영토에 쓰나미 경보를 발령하면서 독도에도 경보를 발령했기 때문이다. 이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일본의 오랜 억지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한국이 식민지 상태에서 독립한 직후 부터 독도에 대한 집착을 포기할 생각을 가진 적이 없어 보인다. 연례행사 같은 도발이지만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온정의 태도를 보여야 할지 화를 내야할지 알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뜨끈미지근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지만 대체로 분노의 색채를 띄고 있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둘 다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이웃국가의 영토 도발에 분노가 치솟는 것도 인지상정이고 지진으로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것에 측은지심을 가지는 것도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감정이다. 이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만큼 우리 국민들은 복합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분노가 동정심을 삼키는 것도 측은함에 우리 권리와 감정을 억누르는 것도 합리적이고 현명하다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작금의 상황을 차분하게 순차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왕이면 재앙에 손을 내미는 것을 우선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다. 그것이 좀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통령이라고 상상해 보았다. 그렇다면 필자는 주한일본대사를 불러 그의 고국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위로하며 구조대를 파견한다거나 구호품을 보낸다거나 하는 것을 상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일본 정부의 독도 야욕에 대해서 강하게 항의할 것이다. 그리고는 약속대로 구호에 나설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우리 권리를 챙기면서 인간적인 도리를 실천하며 일본인들의 마음 까지 어루만지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 정부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궁금하다. 과연 인간적 고뇌나 전략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일까?

전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0

지난 4.5보궐 선거에서 진보당 소속의 강성희 의원이 당선됬었다. 전주는 전통적으로 친민주당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진보당이 인기있는 지역은 아니다. 오히려 영남의 일부 공업지대에서 인기가 높은 것이 진보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성희 의원은 당선되었다. 그 드라마틱한 승리 이면에는 무언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당시 선거와 관련된 여론조사를 확인해 보았다.

조사에 활용된 자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고했다. 4.5 전주 보궐선거에 대해서 총 5건의 여론조사가 있었다. 자료에 의하면 강성희 의원은 처음에는 미비한 지지율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상승해서 결국 높은 득표율로 당선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친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임정엽 후보도 지지율이 잠시 주춤하다가 서서히 올라 강성희 의원과 박빙의 승부를 보인다. 반면 정운천 예비후보의 지지율은 1위에서 시작되서 점점 하락하다가 김경민 후보가 공천되자 여론조사 결과가 반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선거 결과는 처참했다. 불과 일주일만에 이렇게 여론이 바뀔까 싶을 정도이다.

과연 이러한 결과는 강성희 의원의 인간승리일 뿐일까? 두 번 째 여론조사 까지 당선권에서 멀었던 강성희 의원의 지지율은 약 한 달 후 갑자기 뛰어올라 1위로 올라섰다. 자료를 보면 이 과정에서 김경민 후보 뿐만 아니라 친민주당 성향의 임정엽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 하면서 강성희 의원 쪽으로 지지율이 쏠리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분에 있다. 왜 친민주당 성향을 가진 전주 유권자들은 대거 친민주당 성향 후보에서 이탈해서 갑자기 진보당 후보에게로 돌아섰을까? 전문가들은 이른바 ‘군자산 약속’ 이후 주사파 군소 정당에게 민주당이 의석을 양보해 원내 정당으로 만들어주던 행태의 복사판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말 그런 이면 거래가 있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지만 확신하는 정치계 인사들은 매우 많다.

정당 지지율을 보면 의문은 더 증폭된다.(3월28일 -29일에 시행된 여론조사에는 정당지지율 문항이 없었다.) 압도적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유지되고 나머지 정당은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뻔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뻔한 결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후보 지지율은 분명히 한달 사이에 극단적인 변화를 보이는데 정당 지지율은 요동치지 않은 것이다. 좌파 색체가 강한 전주라는 지역구에서 국민의힘이라는 보수 정당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같은 좌파 정당인 진보당도 그다지 사랑을 받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당 소속 후보는 크게 지지 받고 결국 당선되었다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정당 지지율은 “진보당이 노력해서 표를 얻어낸 것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 몰아준 것이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간접 증거로 충분하다.

더 이상한 것은 처참할 정도로 표를 얻지 못했던 김경민 후보가 여론조사에서는 그럴듯한 지지율을 보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반등하는 희망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여론조사에서 보수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실제론 투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더 도발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바로 보수계 일각에서 계속 외쳤던 것 처럼 ‘여론조사 조작’이 있었을 수도 있다.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을 보았을 때 실제로 국민의힘 예비후보나 후보들이 높은 지지율을 얻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이 착각하도록 그럴듯한 수치를 제시했을 수도 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수치들에 대해서 ‘보정치’라는 것을 주는데 이 ‘보정치’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어 늘 논란의 씨앗이 되고 있다.

결국 5개의 여론조사와 선거 통계를 통해 얻어낸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 두 가지가 있다. 첫 째, 더불어민주당이 몰아주기를 하지 않았다면 벌어질 수 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러나 통계 자체엔 몰아준 증거를 찾을 수 없다.) 둘 째, 정당 지지율과 후보의 지지율이 여론조사 기간 내내 따로 놀다가 선거 당일에만 이 둘이 일치한다. (하지만 통계 자체엔 조작의 증거는 없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무언가 이상하게 흘러갔다는 것은 알아낼 수 있었다. 우리 보수계 일각에는 ‘부정선거’를 종교적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이들의 막무가내식의 자세가 이런 미심쩍은 부분을 밝혀낼 기회를 없애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공정한 선거는 과연 이루어지고 있는가? ‘알 수 없다.’ 그것이 이 번 조사의 결론이다.

푸른 눈의 정치인의 등장

0

동북아시아에서 푸른 눈은 이질적인 존재를 상징하곤한다. 종종 ‘이방인’에 대한 대명사 노릇을 하는 것이 푸른눈이라는 표현이다. 예를 들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외부에 알린 힌츠 페터 기자에 대한 다큐의 부제는 ‘푸른 눈의 목격자’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사에서 최초로 푸른 눈을 가진 정치인이 등장했다. 의대 교수로 저명한 인요한 교수가 국민의힘의 혁신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하게 정치인으로 데뷔한 것이다.

인요한 교수가 푸른 눈을 가진 백인이긴 하지만 한국 사회의 이방인이라고 하기엔 무리인 부분이 있다. 무려 4대에 걸쳐 한국에서 선교와 의료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린튼家의 일원으로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5.18 당시 시민군 통역관으로서 역사의 한 장을 함께 했으며 그 이후 의료계 발전에도 이바지해서 특별 귀화자 1호이며 한국 법에서는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이중국적자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인물이다. 특별한 사람이긴 하지만 이방인이라고 하기엔 한국에 녹아 있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정치와 담을 쌓았던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드문 호남 보수로서 보수 정권의 사회통합을 위한 직책을 맡기도 했었지만 명예직에 가까웠다.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의 커리어는 혁신위원장이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혁신위원장에 취임한 순간이 명백히 한국 정치사에 이방인 아닌 이방인이 등장한 시점으로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는 다인종 사회가 아니다. 굳이 인위적으로 미국 같은 다인종 사회가 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것은 일종의 사대주의일 뿐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가 한민족으로 정체성을 지켜왔다고 해서 실제로 인종간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세계화가 진행되고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자연히 한국 밖이 출신인 한국인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 밖 출신의 정치인도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그리고 영남과 호남으로 갈려서 서로 다름을 극복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 출신 아프리카 출신 이렇게 다양한 한국인들이 늘어나면서 단결과 조화는 더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푸른 눈의 정치인의 등장을 시작으로 이러한 난제가 진전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나아가 피부가 검은 대통령 혹은 삼바를 사랑하는 정치인의 등장도 상상해본다. 우리가 품어낸 사람들이고 그렇다면 그들의 정치 참여는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끝에 상호존중과 조화가 존재하는 사회가 있기를 바란다.

강서에서 보수가 졌다

0

지난 보궐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큰 표 차이로 더불어민주당에 졌다. 운동권 진영에서는 벌써 부터 기쁨에 가득차 ‘정권 심판’이 국민의 뜻이라고 외치고 있다. 물론 일면을 보자면 그런 부분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해석할 수 있으면 누구나 정치를 잘했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기본적으로 지난 지방선거와 결이 달랐다. 본래 강서구는 지난 지방선거 이전 까지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노현송 전 구청장이 세 차례 연거푸(노 전 구청장은 총 네 번 구청장을 역임했다.) 당선되어 12년 간의 장기집권을 했던 지역이다. 지방선거에서 구청장 선거는 다분히 시장 선거의 영향을 받으며 그렇기에 시장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정당의 구청장 후보가 후광을 입는 부분이 있다. 김태우 후보는 후광 없이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에서 싸운 것이기 때문에 2022년 지방 선거와 절대로 같은 지형에서 싸운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패배 원인은 네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정치판의 흐름인데 바로 직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것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관망하던 중도성향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확 쏠린 부분이 있다. 두 번 째는 405060세대의 뿌리 깊은 여당 혐오이다. 이들 세대는 확고하게 상수(常數)로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고 보수 진영을 비토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야당으로서는 늘 자신의 편이 있는 것이고 여당으로는 항상 극복해야 할 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세 번 째는 김태우 후보 본인의 역량이다. 보수 진영은 이른바 ‘완성형 정치인’을 원한다. 김태우 후보는 보수 진영이 생각하는 ‘완성형 정치인’의 전형이다. 비록 학벌까지 댈 수 없지만 검찰수사관 출신에 청와대를 거친 빛나는 간판이 있다. 그리고 공무상 비밀 유설이 됬긴하지만 분명히 정권의 비리를 파헤친 공로도 있다. 문제는 보수 진영의 망상과 달리 김태우란 인물은 ‘완성형 정치인’과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40억 애교 발언’ 하나로만 그는 한참 단련되야 할 초보 정치인임을 증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방 선거 까지는 열정적으로 달려들었던 2030남성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이 패배에서 우리는 보수진영의 본질적인 문제를 볼 수 있다. 바로 필즉사의 각오가 없다. 필즉사의 각오가 없으니 남는 것은 권력에 대한 욕심 뿐이다. 명예욕이던 권력욕이던 아니면 성공한 사람의 장식품이던간에 필사적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가겠다는 각오를 가진 인물이 없다. 이런 인물이 있더라도 같은 각오를 가지고 있지 않은 보수 진영은 그를 인재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부담스러워하고 배척한다. 보수 이념과 소신을 간직한 이들은 그저 기업에서 생업에서 자신의 삶을 살 뿐 정치권에 발을 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념에 경도되어 원리주의자가 되어서도 안되고 사상에 푹 젖어 뜬구름을 찾는 사람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념이 아예 없는 인물들도 역시 정치에 걸맞지 않는다. 하지만 보수 진영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 이념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념적 토대가 너무 얕아 이를 따질 능력 조차 없다. 겨우 가지고 있는 이념적 토대라고는 반공(反共)과 친미(親美) 정도이고 그 나마도 “공주님” 타령에 “각하” 타령을 곁들인다. 이런 집단에 무슨 각오가 있을까? 각오가 없으니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진영 차원에서 매달린 더불어민주당의 친명계에 이길 수 있을리 만무하다.

유권자들 대부분이 일개 필부들이라 하지만 이들도 다들 안다. 자신의 소중한 한표를 받아갈 자격이 있는 자들인지 아닌 자들인지 말이다. 자신의 표가 소중한 만큼 성심성의를 다 하는 진영에게 표를 주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사정이다.

과대 인식된 권리

0

얼마 전에 경험한 일이다. 집 근처 주유소는 햄버거 드라이브스루 매장과 함께 운영되고 있는데 진입로는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차량들은 진입로 초입에서 기다렸다가 순서대로 자리가 나는 곳으로 진행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 그렇게 해야 차량 끼리 동선이 뒤섞이고 혼란을 겪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필자의 차량이 맨 앞에 있을 때 뒤에서 클락션 소리가 울렸다. 그는 필자가 비어진 자리를 향해 차량을 이동할 때 까지 수 분 동안 이루어졌다. 그리고 기름을 넣으며 20대 극초반의 운전자가 햄버거를 기다리며 필자를 노려 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황을 보아 그는 자신의 ‘햄버거 가게를 이용할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필자가 방해한다고 생각해서 화가 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필자는 주유소를 질서정연하게 이용할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를 행사한 것 뿐이었다. 우리 사회는 온갖 사람들이 수 많은 권리로 무장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권리들은 서로 간섭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풍조는 그럴 때 마다 상대방의 권리는 생각지도 않고 자기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당한다고만 생각하고 화내고 항의하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도로에서 차선을 바꾸려 하면 진행 차량이 저 뒤에서 부터 하이빔과 크락숀을 활용해 분노를 표출하는 현상이 있다. 그가 그 차선을 이용할 권리가 있는 것 처럼 상대방도 똑같은 권리가 있건만 자신의 ‘차선을 이용할 권리’가 침해 당했다고 믿는다. 마치 차선 전체를 전세 낸 것 처럼 말이다.

너무 도로 위의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 다른 일화를 소개하려 한다. 이제는 대략 18년 전 쯤의 사건이다. 의무경찰이던 필자는 시위 현장을 전전하며 ‘인내 진압’이라는 개념에 맞춰 매일 매일 운동권 사람들의 살아 있는 샌드백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어느 간부가 시위 현장에서 우리를 두들겨 패던 어느 운동권 성향의 인물을 만류했다. 굳이 이럴 것 까지 있느냐며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간부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크게 분노했다. 그는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란 말이다!”라고 외쳤다. 그렇다. 그는 헌법이 그에게 부여한 집회시위의 자유를 크게크게 인식해서 집회라는 현장에서 어떤 행동을 해도 자신의 권리행사라고 믿게 된 것이다. 현장에 가득한 경찰들도 신체를 보호받을 헌법상의 권리가 있다는 것도 그걸 자신이 침해한다는 것도 인식 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풍선 처럼 커다랗게 느끼고 있는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에 분노했을 뿐이다.

어디선가 읽은 글에서는 어느 자영업자가 진상 손님들 중에서 젊은 진상들이 가장 무섭다고 토로하는 내용이 있었다. 나이가 있는 진상들은 자기 욕심을 채울 목적이지만 젊은 진상들은 자기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인식하는 순간 끝장을 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권리를 침해 당한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나 아르바이트생이 잘못을 비록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들도 권리가 있다는 것은 무시한다. 방금 획득한 거대하고 강력한 자신의 권리 앞에 그들의 권리는 하찮거나 아예 그 존재 자체를 잊을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상의 권리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이런저런 권리들이 있다. 그런 권리는 이론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행사하려 할 때 여차하면 자기 권리를 행사하려는 타인과 간섭을 일으킨다. 우리는 이를 상호 존중과 양보로 해결한다.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를 여럿이 행사하게 될 때는 줄을 서고 차례를 기다리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간단하고 일상적인 것이 아닌 상황에서는 이러한 원리가 잘 발휘되지 않는다. 서로 자기 권리만 행사하려 하고 동시에 행사되려는 상대방의 권리를 ‘내 권리에 대한 침해’로 오인한다. 이러한 현상의 공통점은 자기 권리를 과대하게 확대해서 인식하는 것에 있다. 혹자는 이기심으로 해석하곤 하지만 필자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까지 이기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 이타심이 충분히 작동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 사회는 상호존중의 의미에 대해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 만난 민주당 꼴뚜기들

0

16일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은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돈봉투 사건이 검찰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혁신을 하겠다고 책임진 사람이 민주당의 적폐청산을 할 생각은 안 하고 검찰 탓을 하고 있다. 이런 기가 막힌 발상은 문재인 정권 시절 자기들이 검찰을 정적 제거를 위해 조작에 동원했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김은경은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온화하고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학교수이다 보니 학문적 업적이 대단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이력을 보면 정통 교수로서의 행보보다는 권력기관과 권력주변에서 주로 활동해온 정치적인 사람이다. 그는 친문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자 권력기관 주변에서 활동하다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여성 최초 금감원 부원장에 임명되었다.

김 위원장이 민주당을 혁신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재명과 조국 일당들이 다음 총선 공천권 행사를 하도록 비단길을 깔아 주는 아바타 역할을 할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철저하게 종북화되어 있다,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세력 그 파견인 이재명과 체제변혁을 시도하다 구속된 바 있는 조국 일당들이 장악하고 있다. 절대로 당권을 내 놓지 않을 것이다. 내 놓고 싶어도 뒤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종북세력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 증거가 정의당 지지율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민주당이 죽쓰면 정의당 지지율이 올라갔다. 정상적이라면 약 7% 정도는 나와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죽 써도 정의당 지지율(2~3%)은 그대로다. 그것은 정의당을 전략적으로 지지했던 종북세력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며 개딸들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 만난 꼴뚜기들이 민주당이란 어물전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티벳 탄압에 힘 보탠 더민당 의원들

0

중국을 대거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티벳에서 개최된 ‘제5회 티벳관광문화국제박람회’에 참석한 것이 알려졌다. 이 행사는 중국 정부가 주최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SBS라디오에서 질문을 받은 더민당 장경태 최고위원은 “정치적 해석을 하는 게 너무 과한 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라고 의미를 축소하면서 “관제행사”라는 지적에 “중국 정부의 어떤 공식적인 요청이라면 외교적인 관계이기 때문에요. (중략) 공식행사 가는 게 업무이지요, 외교고요.”라고 합리화했다.

티벳은 중국이 힘으로 병합하고 티벳인들을 엄청나게 탄압 중이다. 장 최고위원에 앞서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나치”나 “킬링필드” 같이 약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사실은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와 같은 처지이다. 그리고 해당 박람회는 “관제행사”라고 둘러 말했지만 일제의 문화통치와 비슷한 행사이다. 중국의 정치 활동에 들러리를 섰으면서 정치적 해석을 하지 말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일제강점하에 있다면 일본의 문화통치 행사에 참석한 외국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해석을 하지 말자고 말할 수 있었을까?

티벳의 처지는 조금 과장을 보태면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문제이다. 중국이 국제적으로 수 십 년동안 비난을 받는 사안이기도 하다. 장경태 의원이 이러한 티벳의 처지와 중국의 속내에 대해서 모를 수가 없다. 만약 몰랐다면 뱃지를 달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 당이 예의상 애둘러 표현한 것을 꼬투리로 잡아 정치적 해석이 과하다던가 관제행사를 참석한 것이 업무이고 외교라고 항변했다. 중국의 압제 하에 신음하는 티벳인들의 땅에 가서 중국을 합리화해 준 것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업무이고 외교인가?

후쿠시마 선동

0

후쿠시마 오염수를 ALPS 처리한 배출수는 ALPS 처리 오염수라고 불러야하니 줄여서는 처리수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 그 본질을 빠짐 없이 축약어에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좌파매체들이 오염수라고 부르는 것은 ALPS 처리 사실을 슬그머니 기억에서 지우고 방사능에 대한 공포를 불어넣으려는 의도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의도가 없었다면 무능이고 있었다면 범죄다.

후쿠시마 처리수가 바다에 희석되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을 운동권 진영은 “그렇다면 오염수를 마셔라.”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반박이 아니다. 우리가 대소변을 하수처리하여 하천이나 바다에 방류하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을 근거로 “대소변을 먹어도 안전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먹을 수 없다는 답변이 나오면 꼬투리를 잡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양한 선전선동 기법을 이용하여 이웃 국가간의 호혜적 관계를 훼방하러 하고 있다. 마음 아프게도 대중에는 썩 먹혀들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 하늘이 움직인다고 믿던 시절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던 것 처럼 우리는 “(ALPS)처리수가 위험하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운동권 진영과 다른 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