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에서 푸른 눈은 이질적인 존재를 상징하곤한다. 종종 ‘이방인’에 대한 대명사 노릇을 하는 것이 푸른눈이라는 표현이다. 예를 들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외부에 알린 힌츠 페터 기자에 대한 다큐의 부제는 ‘푸른 눈의 목격자’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사에서 최초로 푸른 눈을 가진 정치인이 등장했다. 의대 교수로 저명한 인요한 교수가 국민의힘의 혁신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하게 정치인으로 데뷔한 것이다.
인요한 교수가 푸른 눈을 가진 백인이긴 하지만 한국 사회의 이방인이라고 하기엔 무리인 부분이 있다. 무려 4대에 걸쳐 한국에서 선교와 의료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린튼家의 일원으로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5.18 당시 시민군 통역관으로서 역사의 한 장을 함께 했으며 그 이후 의료계 발전에도 이바지해서 특별 귀화자 1호이며 한국 법에서는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이중국적자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인물이다. 특별한 사람이긴 하지만 이방인이라고 하기엔 한국에 녹아 있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정치와 담을 쌓았던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드문 호남 보수로서 보수 정권의 사회통합을 위한 직책을 맡기도 했었지만 명예직에 가까웠다.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의 커리어는 혁신위원장이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혁신위원장에 취임한 순간이 명백히 한국 정치사에 이방인 아닌 이방인이 등장한 시점으로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는 다인종 사회가 아니다. 굳이 인위적으로 미국 같은 다인종 사회가 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것은 일종의 사대주의일 뿐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가 한민족으로 정체성을 지켜왔다고 해서 실제로 인종간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세계화가 진행되고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자연히 한국 밖이 출신인 한국인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 밖 출신의 정치인도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그리고 영남과 호남으로 갈려서 서로 다름을 극복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 출신 아프리카 출신 이렇게 다양한 한국인들이 늘어나면서 단결과 조화는 더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푸른 눈의 정치인의 등장을 시작으로 이러한 난제가 진전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나아가 피부가 검은 대통령 혹은 삼바를 사랑하는 정치인의 등장도 상상해본다. 우리가 품어낸 사람들이고 그렇다면 그들의 정치 참여는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끝에 상호존중과 조화가 존재하는 사회가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