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 인식된 권리

0
279

얼마 전에 경험한 일이다. 집 근처 주유소는 햄버거 드라이브스루 매장과 함께 운영되고 있는데 진입로는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차량들은 진입로 초입에서 기다렸다가 순서대로 자리가 나는 곳으로 진행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 그렇게 해야 차량 끼리 동선이 뒤섞이고 혼란을 겪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필자의 차량이 맨 앞에 있을 때 뒤에서 클락션 소리가 울렸다. 그는 필자가 비어진 자리를 향해 차량을 이동할 때 까지 수 분 동안 이루어졌다. 그리고 기름을 넣으며 20대 극초반의 운전자가 햄버거를 기다리며 필자를 노려 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황을 보아 그는 자신의 ‘햄버거 가게를 이용할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필자가 방해한다고 생각해서 화가 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필자는 주유소를 질서정연하게 이용할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를 행사한 것 뿐이었다. 우리 사회는 온갖 사람들이 수 많은 권리로 무장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권리들은 서로 간섭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풍조는 그럴 때 마다 상대방의 권리는 생각지도 않고 자기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당한다고만 생각하고 화내고 항의하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도로에서 차선을 바꾸려 하면 진행 차량이 저 뒤에서 부터 하이빔과 크락숀을 활용해 분노를 표출하는 현상이 있다. 그가 그 차선을 이용할 권리가 있는 것 처럼 상대방도 똑같은 권리가 있건만 자신의 ‘차선을 이용할 권리’가 침해 당했다고 믿는다. 마치 차선 전체를 전세 낸 것 처럼 말이다.

너무 도로 위의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 다른 일화를 소개하려 한다. 이제는 대략 18년 전 쯤의 사건이다. 의무경찰이던 필자는 시위 현장을 전전하며 ‘인내 진압’이라는 개념에 맞춰 매일 매일 운동권 사람들의 살아 있는 샌드백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어느 간부가 시위 현장에서 우리를 두들겨 패던 어느 운동권 성향의 인물을 만류했다. 굳이 이럴 것 까지 있느냐며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간부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크게 분노했다. 그는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란 말이다!”라고 외쳤다. 그렇다. 그는 헌법이 그에게 부여한 집회시위의 자유를 크게크게 인식해서 집회라는 현장에서 어떤 행동을 해도 자신의 권리행사라고 믿게 된 것이다. 현장에 가득한 경찰들도 신체를 보호받을 헌법상의 권리가 있다는 것도 그걸 자신이 침해한다는 것도 인식 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풍선 처럼 커다랗게 느끼고 있는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에 분노했을 뿐이다.

어디선가 읽은 글에서는 어느 자영업자가 진상 손님들 중에서 젊은 진상들이 가장 무섭다고 토로하는 내용이 있었다. 나이가 있는 진상들은 자기 욕심을 채울 목적이지만 젊은 진상들은 자기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인식하는 순간 끝장을 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권리를 침해 당한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나 아르바이트생이 잘못을 비록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들도 권리가 있다는 것은 무시한다. 방금 획득한 거대하고 강력한 자신의 권리 앞에 그들의 권리는 하찮거나 아예 그 존재 자체를 잊을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상의 권리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이런저런 권리들이 있다. 그런 권리는 이론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행사하려 할 때 여차하면 자기 권리를 행사하려는 타인과 간섭을 일으킨다. 우리는 이를 상호 존중과 양보로 해결한다.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를 여럿이 행사하게 될 때는 줄을 서고 차례를 기다리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간단하고 일상적인 것이 아닌 상황에서는 이러한 원리가 잘 발휘되지 않는다. 서로 자기 권리만 행사하려 하고 동시에 행사되려는 상대방의 권리를 ‘내 권리에 대한 침해’로 오인한다. 이러한 현상의 공통점은 자기 권리를 과대하게 확대해서 인식하는 것에 있다. 혹자는 이기심으로 해석하곤 하지만 필자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까지 이기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 이타심이 충분히 작동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 사회는 상호존중의 의미에 대해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