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독립”, “경찰의 주체성 확립”.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된 단어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그 화려한 포장지를 걷어내고 나면,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사법 정의’라는 거창한 가치가 아니다. 그곳에는 경찰 조직을 장악한 좌파 세력이 자신들의 치부를 스스로 도려내고 덮을 수 있는 ‘면죄부 발행 권한’만이 남는다. 우리가 흔히 ‘보안수사권’이라 부르는 권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이들이 보안수사권의 폐지를 수사 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 혹은 전문성의 영역으로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호도하는 순진한 발상이다. 수사의 본질은 범죄를 밝혀내고, 그것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독점하고, 외부의 감시 없이 자체적으로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을 경찰 집단에게 쥐여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곧 그들이 ‘심판받을 죄’와 ‘묻어버릴 죄’를 선별할 수 있는 절대 반지를 끼는 것과 다름없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소위 ‘경찰 선에서의 사건 종결’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이는 범죄 혐의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수사권이라는 이름의 필터를 통해 특정 세력에게 불리한 사건은 상부로 보고되거나 검찰·법원으로 넘어가지 않고 증발해 버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보안수사권폐지는 범죄를 척결하는 칼이 아니라, 권력과 결탁한 내부의 범죄가 외부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는 방패로 전락한 것이다.
경찰 조직은 본질적으로 상명하복의 위계가 뚜렷한 집단이다. 만약 이 거대 조직의 머리를 특정 정치 세력이나 이익 집단이 장악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에게 보안수사권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수사를 초동 단계에서 무력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혐의없음”, “증거 불충분”. 이 몇 글자의 수사 종결 보고서만 있으면, 거대한 비리도, 조직적인 범죄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암장된다. 이것이 과연 사법 정의인가?
진정한 사법 정의는 권력이 있는 곳에 더 엄격한 감시가 작동할 때 실현된다. 그러나 현재의 보안수사권 논의는 감시를 지우고, 그 자리에 ‘자율’이라는 이름의 ‘성역’을 쌓고 있다. 이는 수사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범죄 연결고리를 경찰 단계에서 끊어내기 위한(꼬리 자르기) 구조적 설계에 불과하다.
우리는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보안수사권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국민의 인권이나 사회의 정의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그것은 오로지 누가 수사의 칼자루를 쥐고, 누가 그 칼날을 피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이권 다툼’일 뿐이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수사권이 특정 세력의 방어막으로 악용될 수 있는 구조를 방치한 채 정의를 논하는 것은 기만이다. 보안수사권 폐지가 ‘범죄 은폐의 면허증’이 되지 않도록, 그 화려한 명분 뒤에 숨겨진 ‘차단과 은폐’의 욕망을 꿰뚫어 보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