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좌파 진영에서 일반화된 경제논리는 주류 경제학과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라 우기는 이른바 양두구육의 프로파간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적자재정론]이라는 이름을 별개로 붙여준다. 이 [적자재정론]의 문제는 [적자재정론]이 언급하지 않고 감추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IMF의 ‘속도 조절’은 규모의 제한을 전제로 한다. [적자재정론]은 “IMF가 속도의 조절만 요구하였다.”며 적자 규모에 대한 억제의 필요성을 외면한다. 하지만 IMF가 권고한 ‘속도 조절’은 재정 준칙(GDP 대비 적자 3% 이내)의 엄격한 준수와 가역성 확보를 의미하는 것이지, 무분별한 팽창의 면죄부가 아니다.
둘째, ‘미래 투자’라는 명목 하의 ‘지배구조적 지대 추구’ 문제다. 정부 지출 중 NGO 지원금 및 보조금성 예산이 연간 수조 원대에 달하며, ‘친환경 급식’이나 ‘기본소득’ 같은 복지 컨셉의 사업들이 ‘미래 투자’로 둔갑하여 재정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아닌 진영 내 ‘나누어먹기’로 이미 변질되었다.
셋째, ‘차환(Roll-over)’의 함정은 숫자로 증명된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국채 이자 비용은 2024년 약 32조 원에서 2029년 약 45조 원으로 매년 평균 8.75%씩 급증할 전망이다. 이는 국세수입 증가율을 훨씬 상회하는 속도다. 빚으로 빚을 갚는 행위가 반복될수록 정부는 생산적 투자 대신 ‘이자 돌려막기’에 급급한 구조적 수렁에 빠지게 된다. [적자재정론]은 이 모든 것을 차환으로 해결한다는 발상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드라마틱한 부채의 증가를 낳을 것이다.
넷째, 시장의 자금 흡수 능력은 유한하다. 2025년 국가채무(D2)는 1,273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며, 이는 GDP 대비 48.1%에 육박한다. 매년 쏟아지는 수십 조 원의 신규 국채 물량을 받아낼 투자자와 투자자금은 무한하지 않다. 채권 공급 과잉은 국채 가격 하락(금리 상승)을 초래해 민간의 대출 금리까지 끌어올리는 역효과를 낳는다.
다섯째, ‘저금리 환상’은 끝났다. “금리가 낮으면 부채가 늘어도 괜찮다”는 주장은 변동성 리스크를 무시한 발상이다. 미 연준의 고금리 장기화 기조 속에서 우리 국고채 금리 또한 하단이 높아졌다. 금리가 1%p만 변동해도 추가 이자 부담은 수조 원 단위로 뛴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여섯째, 비기축통화국의 한계와 국가 리스크 프리미엄이다. OECD 비기축통화국의 평균 부채비율은 약 54% 선이다. 한국은 이미 50% 선에 근접했으며, IMF는 한국의 부채 증가 속도가 비기축통화국 중 1위가 될 것으로 경고했다. 기축통화국(평균 90% 이상)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시장의 ‘신용 등급’ 체계를 무시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일곱째, 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 버퍼’의 소멸이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부채비율이 10%p 상승할 때마다 잠재성장률은 0.5%p 하락한다. 관료들이 빚의 규모를 관리하는 이유는 IMF 외환위기나 전쟁 같은 급성 위기 시 최후의 보루를 남겨두기 위함이다. “위기는 없다”는 낙관론은 가장 위험한 도박이다.
여덟째, 민간 투자의 효율성을 정부가 이길 수 없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장은 정부의 직접 지출이 아닌, 민간의 창의성과 투자를 뒷받침하는 인프라에서 나왔다. 국가가 직접 거대 자본을 쏟아붓는 방식은 과거 추격형 경제에선 유효했을지 몰라도, 지금 같은 혁신 경제에선 비효율과 관치 금융의 폐해만을 낳을 뿐이다.
[적자재정론]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금 당장 빚을 내서라도 투자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를 펴고 있다. 단순한 만큼 굉장히 논리 자체로는 흠 잡을 것이 없고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 주장은 실제 시장의 메커니즘과 비기축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이 처한 통계적 현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그렇게 외면한 현실은 이 발상을 실행시켰을 때 잔인한 흉기가 되서 대한민국을 직격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