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에 머문 ‘건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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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벽배송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편리함’ 뒤에 가려진 노동의 고단함을 조명하고 그들의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에 이견을 가지진 않는다. 하지만 이 논의가 과연 진정으로 모든 ‘새벽 노동자’의 건강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특정 산업을 겨냥한 칼날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본질은 ‘새벽 배송’이 아니라 ‘새벽 노동’ 그 자체에 있다. 새벽배송 금지를 외치는 이들의 논리는 다른 수많은 새벽 노동자들의 현실 앞에서 길을 잃는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밤샘 수술로 생명을 구하는 의사,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의 교대 근무자, 응급 상황에 출동하는 소방관 등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수많은 필수 노동자들의 건강권은 어떻게 되는가? 특정 직업군을 ‘필수’라는 이름 아래 건강권을 희생해도 되는 계급으로 치부하는 오만한 발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는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결여된 ‘선택적 정의’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금지’라는 극단적이고 단편적인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노동으로 인해 건강이 조금이라도 훼손되지 않는 직업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노동은 필연적으로 정신적, 육체적 소모를 동반하며, 관건은 그 손상을 회복할 ‘충분한 휴식’과 ‘정당한 보상’을 어떻게 보장하느냐에 있다. ‘금지’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우리는 모든 노동을 금지해야 한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진다. 이런 지적에 “왜 그렇게 극단적이냐”고 반문하는 것은, 자신들의 논리가 가진 극단성을 외면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단편적인 접근은 이 논의의 또 다른 맹점을 드러낸다. 바로 전문가의 의견이 선제적으로 배제된 채 주장이 앞선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다루면서 정작 신체와 건강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의사 집단의 의학적 소견이나, ‘건강권’의 법적 범위와 한계를 규정할 법률가들의 전문적 검토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새벽배송 금지’라는 정치적 구호를 먼저 만들어내고, 그들의 허술한 논리가 반박에 부딪히자 뒤늦게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전문가를 찾는 모양새다. 이는 전문가의 객관적 진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답(금지)에 전문가의 권위를 이용하려는 본말전도에 불과하다. 이처럼 전문가가 배제되거나 입맛대로 동원되는 토론은 노동 환경의 실질적인 개선 방안 대신 감정적인 여론전에만 매몰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진정한 노동자의 건강권 보편화에는 관심 없이, 유독 ‘새벽배송’만을 문제 삼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숨은 의도를 짐작하게 된다. 정치적, 산업적 역학 관계 속에서 특정 기업을 ‘길들이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심과, 경쟁 구도에 있는 기존 운송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그들이 휘두르는 ‘건강권’이라는 칼날이 정작 노동자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노동자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금지’가 아닌 ‘보장’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노동 강도에 맞는 휴식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퇴근 후 대기와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여 실제 휴식 시간을 늘리기 위한 셔틀버스 시스템의 고도화와 같은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새벽배송 논란은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건강권’을 얼마나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특정 산업에 대한 표적성 공격을 멈추고,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참여하에 모든 노동자가 충분한 휴식을 보장받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