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아이돌이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계엄 이후로 배신자의 낙인이 찍혔다. 한가발이라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부르던 별명을 이제는 보수 진영에서 듣기가 어렵지가 않다. 그 이유는 그가 윤석열 대통령의 하야 혹은 탄핵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좌파 신문 한겨레는 엠브레인퍼블릭,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 케이스탯리서치가 공동으로 지난 17일 부터 19일 사이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탄핵 인용이 60% 탄핵 기각 35%로 나왔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당연히 이 격차가 25%로 매우 크다는 부분에 포커스를 두는 기사를 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무려 35%나 탄핵 기각을 주장한다는 점이다.
계엄은 국민이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그리고 보수 진영에서는 부정하는 의견이 많으나 12.3 계엄은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도 분명하다. 다수의 법조인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인정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아 답변했다. 아무튼 중도라고 우리가 쉽게 명명한 스윙보터 집단도 계엄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지 않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보수 진영 그 중에서도 이른바 ‘정통 보수’라고 스스로 부르곤 하는 보수 주류 집단에서는 계엄이 어떻든 간에 탄핵을 원하지 않는다고 힘을 주어 말하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잘라 말하며 혹자는 조심스럽게 “계엄은 잘못됬다고 생각하지만 탄핵은 원하지 않는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다.
12.3 계엄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던 아니면 소수로 추측되지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던 무려 35%에 달하는 국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원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탄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탄핵 반대 집회에 현장을 취재해보면 적지 않은 2030세대들이 참여하여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여러 세대에 걸쳐 남녀노소 없이 35%의 파면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절대로 작은 비중이 아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명분에서 불리한 상황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수치이다. 그런 환경에서 35%의 국민들이 파면에 반대하고 있으며 그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심지어 정설을 부정하고 계엄에 면죄부를 주면서 까지 반대입장을 고수하는 중이다.
그것은 이들이 더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완전히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문재인 정권에 이어서 이재명 정권 까지 대한민국에 수립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담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법률 전문가들이 지금의 위기 상황을 전시ㆍ사변에 준하지 않는다고 일관된 평가를 하는 것을 매체를 통해서 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지금을 전시ㆍ사변에 준한다고 믿는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전문가의 견해와 무관한 개개인의 판단이자 정치철학이자 양심이다. 그 양심이 옳고 그른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의 양심이 그렇게 외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미 면죄부는 주어졌다. 35%의 마음 속에서 면죄부는 오래 전에 발부되어 윤석열 대통령의 사저에 도착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론을 쫓아 탄핵을 주장한 한동훈 대표는 방해꾼에 불과한 것이다. 심정적으로는 배신자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란 자신이 듣고 싶은 것을 대신 말해주고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건설하는 것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의 양심과 반대로 이야기하고 자신의 양심이 원하는 것과 반대의 결과를 추구한다면 큰 배신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한동훈 전 대표가 한가발이 되고 배신자가 된 근본적인 이유다.
보수 내에서도 식자층 특히 법률,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접한다. 심지어는 서로 비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사실 양 측 모두 잘못한 것은 없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정치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것이 유권자라는 집단의 특징이며 정치에서 저들이 갑인 이유다. 물론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적 지식과 소신을 부정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다만 문제는 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조화 시키고 화해 시키는 탁월한 정치가가 보수 정치에는 없다는 것이다.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유권자가 원하는 바를 추구하는 불가능한 과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묘다. 예를 들면 “12.3 계엄은 계엄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국회가 탄핵한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파면에는 반대한다. 파면이 될 정도의 잘못 까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들의 용인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로선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계엄에 대한 제제 수단이 없기 때문에 제제하지 못한다. 다만 차후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파면에는 반대한다.” 같은 논리를 펼 수 있다.
전문가의 문법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정치인의 문법으로는 가능하다. 그런데 비슷한 시도를 하는 정치인이 없다. 참으로 아쉬운 현실이다. 정치 초보 한동훈도 정치의 문법을 아직 익히지 못하였다. 그것이 한동훈이 배신자가 된 사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