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점점 부유해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내던 사회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사회로 점점 변화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비록 ‘새벽배송금지논란’ 자체는 논란을 주도하는 집단의 숨겨진 의도가 의심된다 하더라도 사회구성원들이 한 번 쯤 생각해볼만한 상황이다. 물론 사회구조의 압력과 개개인의 자유의지가 뒤섞여 어떤 노동을 할지 ‘선택’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선택을 한 각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해야한다. 그리고 그 존중을 바탕으로 동시에 사회적 책임도 공존함을 인정하여야한다. 그것이 겸허한 사회 구성원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일단 사회구성원간에 이 문제를 진지하게 대하기로 합의되었다면 과학적으로 그리고 전방위적으로 연구에 돌입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은 상태에 이를 것이다. 지금 민주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우는 주장 속 ‘유해성’이 그렇다. 먼저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노동을 유해하게 만드는 요소를 최대한 수집해서 정량화 해야한다. 그리고나면 이를 통해 노동과 건강 간의 상관 관계에 대한 ‘모델’을 만들수 있게된다. 그리고나서야 유해성을 어디 까지 허용할건지 사회적 논의를 비로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기준치 이하로 떨굴지 연구해야한다. 아마 기관이 아예 따로 설립되어 수시로 평가해야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디 까지 강제할 것인지 그리고 어느 부분은 권유와 혜택으로 유도할 것인지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가야할 길이 멀고 지리한 기다림의 과정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런 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정치 아니었는가 묻고 싶다. 그런 면에서 풋사과보다도 설익은 논리를 전가의 보도 처럼 휘두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노총의 행보는 어린아이의 소꿉장난에 비유하고 싶다.
솔직히 우리 사회가 이것이 가능한 단계로 진입했는지 아직은 갈 길이 남았는지는 필자가 확신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연구와 공론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 사회는 어느 사이엔가 이것이 충분히 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라 믿는다. 특히 이 아젠다를 보수 진영이 추구했으면한다. 보수 진영은 이 나라의 생존이라는 아젠다를 성공시키고 나서 더 이상 굵직한 아젠다를 설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공이라는 구호는 여전히 유효는 하지만 과거의 위상을 가지지 못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새벽배송논쟁’은 이미 결론을 정해 놓고 과학적, 의학적 소견을 그 결론을 그럴듯하게 꾸며내는 장식 처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엄연히 ‘건강’이라는 과학적, 의학적 대상을 아젠다로 설정했다면 과학자, 의사들을 전면으로 세워 충분한 연구를 진행하고 그것을 근거로 논쟁을 벌여야한다. 그런데 이권이 걸린 집단들이 이 아젠더를 주도하고 있다. 수 십 년 전 생존 문제를 해결한 이후 대형 아젠더를 가지지 못한 보수 진영으로선 이 문제를 한 번 손에 쥐어볼만하다. 하지만 과연 관심이나 가질런지는 확신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