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국 정치를 이야기할 때 습관적으로 ‘보수’와 ‘진보’라는 익숙한 프레임을 꺼내든다. 국민의힘은 보수, 더불어민주당은 진보. 너무나 편안하고 안정적인 구분법이다. 그리고 보수이기에 우파 정당, 진보이기에 좌파 정당이라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이 구분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을까? 저들이 외치는 구호와 정책의 파편들 너머,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본질’은 무엇일까?
정치 이념이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궁극적 지향점이다. 현실의 정책은 온갖 타협과 전략적 판단으로 뒤섞여 본질과 거리가 있을 때가 있다.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수단이 아니라 그 수단으로 얻고자 하는 목적이다. 이 본질주의의 시각으로 한국 정치를 분석하면 다소 다른 결과가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보수 주류의 본질적 정체성은 중도 좌파이다. 이들의 뿌리는 박정희이다. 남로당 출신 박정희의 최대 업적으로 일컫는 ‘국가 주도 발전’ 자체가 좌파적 수단이다. 지금도 뿌리 깊게 내려온 관치주의도 박정희 시절부터 이어 내려온 좌파적 전통이라 볼 수 있다. 의료보험 역시 박정희가 실행한 대표적인 좌파 정책이다. 그리고 박정희가 생전에 주장하던 궁극적 목표점은 모든 국민이 가난에서 벗어나 잘사는 나라, 즉 ‘복지국가(복지사회)’였다. 이는 공동체 전체의 안정과 균등한 생활 수준 향상을 지향한다. ‘분배’와 ‘평등’이라는 가치는 이미 이때부터 그들의 신념 체계 깊숙이 자리 잡은 핵심 목표였다. 이는 명백히 전통적인 좌파의 가치다. 보수 주류는 여전히 관치주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며 ‘분배’, ‘평등’ 그리고 ‘복지사회’에 대하여 굉장히 우호적이고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동시에 ‘국가 주도 발전’의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하고, 재벌이라는 이름의 특정 계층에게 부를 집중시키며 공동체가 아닌 국가의 권위를 우선했다. 이는 엄연히 우파적인 수단이다. 국민의힘 역시 지난 정권을 통해 ‘감세’나 ‘규제 완화’ 같은 우파적 수단을 사용한 적이 있다. 왜 이들은 좌우를 바쁘게 오고 가는가? 간단하다. 목적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은 ‘분배’라는 좌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성장’이라는 선행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현실 인식을 가졌다. 파이를 키워야 나눌 것이 생긴다는 실용주의다.
신념이 우파라서가 아니라, 좌파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파적 수단을 가리지 않는 유연함, 이것이 바로 국민의힘, 그러니까 ‘보수’를 ‘우파’가 아닌 ‘중도 좌파’로 만드는 핵심이다. 이들의 통치 철학은 성장과 분배라는 사이클의 영원한 순환이다. 성장의 과실로 분배를 이뤄 공동체를 안정시키고, 시대가 바뀌면 또다시 새로운 성장에 집중해 다음 단계의 분배를 준비한다. 이것이 그들이 꿈꾸는 이상 국가의 작동 방식이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좌파 주류는 어디에 위치하는가? 이들은 레거시 좌파라고 부를 수 있다. ‘분배’, ‘평등’, ‘복지’라는 좌파적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국민의힘과 동일한 목적을 가졌다. 뿌리는 다를 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선행 과정’에 대한 인식에서 드러난다. 레거시 좌파는 성장을 통한 파이 확대라는 현실적 과정을 간과하거나, 분배를 거부하려는 ‘기만’으로 본다. 성장이라는 껄끄러운 현실보다 분배라는 달콤한 이상에 더 천착한다. 이는 이념적으로는 더 ‘순수한’ 좌파의 모습일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파이를 키울 동력을 잃어버린, 실용성 떨어지는 낡은 방식이다.
우리 사회 정치권에서 우파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당은 좀 더 ‘성장’과 ‘경쟁’을 추구하는 개혁신당 정도가 있다. 국민의힘보다 근소하게 우파 가치를 추구하며 중도 우파 성향을 띤다.
국민의힘을 중도 좌파라고 정의하면 내부적으로 계엄을 옹호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을 여전히 지지하는 세력이 근소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사회 규범과 원칙 그리고 사회질서를 존중하는 우파적 가치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좌파와 우파가 섞여 있지만 좌파가 본질을 점하고 있다고 보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좌파는 사회질서에 저항하고 혼란을 감수하고라도 목적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