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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사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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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제네 구성원 일동은 진심으로 이태원 사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사태를 보는 이에게 요구하는 사회, 정치적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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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라는 일본산 모바일 게임이 우리 사회의 어느 부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해당 게임의 유저들과 국내 운영사와의 갈등은 우리 사회에 좀 더 널리 알려질 수 있었으나 태풍 같은 재앙과 이런저런 쏟아지는 사회적 갈등 속에 묻힌 부분이 없잖아 있다. 이 사건의 두 가지 큰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같은 게임임에도 일본 서버보다 적은 유료 재화를 제공한다. 둘째, ‘서버 점검’ 같은 수단을 동원해 게이머들이 게임상에서 얻을 기회 이익에 손상을 주었다. 이 부분에 대한 운영사인 카카오게임즈와 유저들 사이의 갈등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정치권까지 뛰어듦으로써 더 복잡한 사안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칼럼을 작성하는 이유는 게이머들이 분노한 이유를 안내하는 데에 있지 않다. 그러한 목적이라면 이미 탁월한 기사들이 수도 없이 쏟아진 상황이다. 이 사태의 진정한 문제점은 이 갈등 상황에 끼어든 여러 주체가 전혀 이 사안의 본질적,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데에 있다.

필자는 이 사안의 본질을 두 가지로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소비자 권리 보호”이며 둘째는 “가상 공간에서의 소비자 기망에 대한 정의”이다.

게임사 혹은 운영사와 게이머와의 갈등은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라는 게임이 처음이 아니며 오히려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이 그대로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은 법적으로 제대로 된 소비자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환불 문제이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다 중간에 그만둘 때도 환불이 법적으로 의무화되어있고 공제 기준이 제도적으로 정해져 있다. 헬스장에 만족할 수 없는 고객이 환불을 받을 수 있으므로 고객은 헬스장에 매이지 않고 만족할 수 있는 다른 헬스장으로 옮길 수 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환불이 불가능한 게임의 경우는 서비스에 만족할 수 없는 게이머가 게임을 떠날 때 게이머의 선택 책임보다 큰 액수인 지급한 전체 금액을 포기하고 떠나야 한다. 게임사들은 고객들로부터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일개 헬스장도 면할 수 없는 환불 책임은 제대로 부과되고 있지 않다. 국가의 소비자 보호 노력이 게임에 있어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성세대가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서비스와 재화의 지급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 산업은 십 수조 원대 규모의 거대 산업이다. 이 모든 것은 게이머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그런데 이 십 수조 원을 내는 게이머들이 소비자로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 시스템의 커다란 구멍과도 같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었을 때 투자자가 100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금융상품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금융사의 실수로 이익을 얻지 못했거나 혹은 수익을 실현하기 위한 선택권이 박탈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기대 이익의 일부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을 것이며 실수한 금융사는 정부의 제재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실수한 인물은 해고당하거나 징계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상에서 100만에 해당하는 유료 재화를 얻을 기회를 게임사 혹은 운영사의 실수로 박탈당했을 땐 아무런 보상을 받을 권리가 없다. 주어지는 보상은 오직 운영사의 시혜일 뿐이며 따라서 보상 여부는 게이머가 아닌 운영사의 권리가 되어버린다. 분명히 게이머는 현실의 화폐를 지급하여 얻은 가상 공간에서의 재화에 대한 손실에 대해서는 금융사와 달리 운용사에겐 책임이 지워지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책임을 철저히 부과하기 위해 금융사는 금융감독원의 세심한 감독하에 있지만, 게임 운용사는 그런 감독을 받지도 않는다. 다시 금융으로 돌아와서 만약 금융사의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 행위가 있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엄청난 범죄가 성립될 것이며 국가와 사법당국은 강한 철퇴를 내려칠 것이다. 그런데 운용사가 게이머들을 속였을 땐 어떻게 될 것인가? 운용사가 유저들을 기망했는지 여부조차 아무도 알 수 없다. 속인 기업을 제외하면 말이다. 가상 공간에서는 거래 주체의 ‘기망 행위’에 대한 정의도 불분명하여 어떤 행동이 게이머에 대한 혹은 기업에 대한 기망인지 정해져 있지도 않다. 기망의 상황이 의심될 때 잘잘못을 따지고 문제가 있는 쪽에 철퇴를 내려칠 제도적 근거가 없다. 그저 의심만 할 뿐이고 게이머들은 시끄럽게 시위를 할 수밖에 없으며 그때마다 정치권은 적선하듯 관심을 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운용사의 빛 좋은 사과를 받아들이고는 또 똑같은 일을 당할 것이다. 아니 이미 수차례 같은 일을 반복되고 있다.

게이머들은 당연히 운용사에 시정과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면 안 된다. 한발 더 나아가 똑같은 고객이면서 휴대전화나 차를 살 땐 받을 수 있는 소비자로서의 보호를 게이머의 입장이 될 땐 받을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십수조 원을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정치권은 국민의 수족에 불과하다. 그에 앞서 국민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어야 이를 제도로 만들어낸다. 게이머들은 소비자의 권리를 원해야 한다. 그리고 기망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을 바라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먼저 여러분들께서는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속이는 행위에 대해서 수사하고 처벌할 수 없는 제도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수족들에게 요구할 것이다. “게임 산업에서도 소비자를 보호하고 기망행위를 처벌하는 걸 가능하게 합시다”라고 말이다. 이러한 요구와 요구에 응해 이루어지는 제도의 마련은 게임 시장에서 자꾸만 희미해지고 있는 신뢰를 되살릴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체감하지는 못하겠지만 게임 시장을 계속 건강하게 지키고 존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자유 시장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사드 운용은 주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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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지속적으로 새로 출발한 윤석열 정부에게 사드 문제를 강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고수해 온 이른바 3불1한 정책을 계승하라는 것이다. 3불 1한이란 사드 추가 배치, 미국 MD 시스템 참여 그리고 한미일동맹 결성을 하지 않고 앞 선 박근혜 정부가 설치한 성주 사드 기지는 운영 주체인 미군이 제대로 운영하기 힘들게끔 방해하는 정책이다. 중국은 박근혜 정권 당시 우리 군이 도입한 것도 아닌 미군의 사드 설치를 문제 삼아 한국 기업들을 억압하는 ‘한한령’을 발령하고 2021년에야 공식 해제했다. 하지만 한한령의 해제 후에도 정상화 된 것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이 우리를 우롱한 것이다.

외교와 군사는 한 국가의 주권 중에서도 핵심이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뺏은 것이 외교와 군사 분야에 대한 통제라는 것을 떠올려보자. 중국을 겨냥한 것도 아닌 사안에 대해서 지금 처럼 간섭하는 것은 엄연한 내정간섭이다. 사드에 반대하는 중국의 논리는 일언반구의 가치 조차 없는 억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운동권 진영은 중국 사대의 방침에 따라 진영 차원에서 이를 지지하고 문재인 정부는 3불 정책을 펼쳤다.) 중국과 조약이나 협약을 맺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 정권이 따를 필요가 없음에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윤석열 정부가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권 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당 독재 국가의 한계를 보여주는 면도 있다.

중국은 민주주의에도 국제 관계에도 상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과거에는 외교 룰은 지키려는 노력을 했지만 시진핑 집권 이후로 ‘굴기’를 내세우면서 그나마도 집어던지고 본색을 드러냈다. 자신이 멋대로 굴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라는 천자국을 21세기에 추구하고 있다. 이런 비상식적인 국가가 큰 나라라는 이유로 우리 주권을 침해 당할 수 없다. 결연히 맞서야 한다. 이를 위해 고통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20세기에는 일본이었다면 21세기에는 중국이다. 대한민국은 조선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미합중국이 동맹이다.

(이미지 : 성주 사드 발사대를 방문한 미군 장성들, 미국 정부 저작물, 미군 전략사령부 제공)

이것이 경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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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전국에서 총경들이 한 장소에 집결했다.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면서 전국 경찰서장 대회를 개최했기 때문이다. 민간에서는 이 행동의 심각성을 잘 모른다. 경찰서장들은 관할 지역의 치안을 책임지기 때문에 함부로 지역을 떠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장은 일선 지휘관으로서 유사시에 반드시 지휘에 임해야 한다. 서장의 지역 이탈은 심각한 치안 공백이며 집단적으로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은 전국적인 치안 시스템의 비정상화를 의미한다. 심각한 상황이 운이 좋게 발생하지 않아 인식하지 못했을 뿐 국민들은 치안 시스템의 결함에 노출된 것이다.

사실 정부 조직법 상 경찰은 행안부 소속의 조직이기 때문에 이제 까지 행안부에 경찰국이 없었고 행안장관이 경찰을 지휘할 수 없었다는 것이 놀라운 진실이다. 경찰은 명목상으로만 행안부 산하에 존재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실 직속의 조직이었다. 이것이 마치 경찰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는 것 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이 민정수석을 거쳐 하명 수사가 가능한 비선에 의해 통제되는 친위대 같은 위치에 있었다. 이는 경찰을 심각하게 권력 지향의 조직으로 만들었다. 인사철이 되면 경찰 조직은 청와대만 바라보게 되고 내부에서는 누가 청와대에 연줄이 있니 없니 그래서 승진을 하니 마니 하는 소문이 횡행한다.

경찰이 행정 조직으로서 법과 시스템의 지배를 받지 않고 권력자로부터 직접 지배된다는 것은 경찰 조직의 독립성의 정반대에 위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종속”을 의미한다. 경찰 조직은 권력에 종속되고 이를 통해 떨어지는 권력의 부스러기를 미래에도 향유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권력과 경찰력의 유착의 대표적인 결과물이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이다. 이 건은 현재 재판 중에 있는데 비록 사법적으로 무죄를 받는다 하더라도 수사 과정에서 이미 사실로 밝혀진 일렬의 과정은 분명한 권력과 경찰간의 유착임은 분명하다. 이를 경험한 윤석열 정권은 아예 경찰을 권력에서 뜯어내어 장관을 통해 지시를 받는 정상적인 시스템을 이제야 구축하려 든 것이다.

현재의 실질적으로 대통령 직속의 경찰은 과거 군사 정권이 사회 통제를 위해 일종의 경찰국가를 구축한 산물이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검찰에 의한 통제가 유일하게 경찰에 가해진 강력한 제어 수단이었지만 경찰 국가의 영광을 잊지 못한 경찰은 수시로 수사권 독립을 외치며 과거로의 회귀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 선봉에는 경찰 조직에 대한 장악력을 급속히 키워온 경찰대 출신의 간부들이 있었다. 좌파 집단은 좌파 답게 정권을 얻을 때 마다 법률과 시스템을 통한 지배를 무력화하고 검찰을 포함한 모든 기관을 장악하러 들었으나 헌법기관인 검찰은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경찰대 출신들은 이러한 좌파 정치 세력에 끊임 없이 구애를 해왔고 이러한 정경(政警) 유착의 완성이 문재인 정권에서 이루어진다.

문재인 정권은 권력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검찰의 팔다리를 자르고 경찰에 검찰의 기능 까지 모두 더해 버리더니 아예 검찰을 무력화 시키는 이른바 ‘검수완박’ 까지 도입한다. 애초 부터 권력을 향한 해바라기였던 경찰은 경찰국가로의 회귀라는 오랜 갈증이 해소되면서 자발적으로 좌파 정치세력에 철저히 충성하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노무현 정부 까지만해도 경찰에 대한 경계심을 숨기지 못했던 좌파 세력은 “이제야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스스로 민중세력이라 부르는 좌파 정치 세력이 국민들을 두들겨 패는 지팡이가 되었다는 의미다.

질병청이 보건복지부 장관의 지휘를 받고 산림청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 것 처럼 경찰청은 행전안전자치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 것이 정석이다. 경찰 국가이던 시절 유산이 권력자의 직접 지시가 가능한 친위대와 같은 위치가 경찰의 독립성을 의미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정치권력에 목을 매는 경찰이 어떻게 국민의 안위를 지킨다는 것인가? 경찰대 출신 간부들의 일장춘몽에 일선 경찰관들은 역량을 넘어선 업무량에 비명을 지르고 있고 치안 현장은 점점 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그런데 그 꿈이라는 것이 경찰 국가로의 회귀다. 권력에 바싹 붙어 권력을 누리는 것이다. 너무나 정치적이고 너무나 나약하지 않은가?

형식이라도 공정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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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의 9급 사무원의 채용이 문제가 되었다. 심지어 야당의 고민정 의원의 경우 “사적 채용”이라며 일인 시위를 벌이기도 하는 상황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공채 형식에 수치화된 평가만을 공정하게 본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정하지 못한 사회가 공정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고 그 중에서도 공정할 수 밖에 없어 보이는 방식을 선호하게 만드는 것이다. 수능에 대한 선호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지난 정권은 우리 사회의 오랜 취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고야 말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불공정에 대한 성토와 공정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등에 엎고 집권한 윤석열 정부다. 상술한 대통령실 9급 사무원의 경우 이른바 윤핵관 중에서도 최고라고 지목되고 있는 권성동 의원의 후원회장 우 모씨의 아들이었다. 야당은 이를 굉장한 부정부패로 프레임을 짜고 있지만 이는 한 편의 블랙 코메디에 불과하다. 야당도 이러한 채용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 의원과 대통령실의 해명대로 별정직 공무원을 채용하는 공채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 모 군의 채용은 문제가 없다. 대통령 선거는 정권을 가지기 위한 정치 집단의 건곤일척이기도 하지만 정치에 꿈을 가진 젊은이들에게는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는 채용의 현장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자원봉사를 한 후보가 당선이 되어야 한다는 관문을 통과하면 이를 눈여겨 봤던 캠프 관계자들에 의해 발탁되어 그 귀하에서 (당연히도)말단이지만 젊은 나이에 청와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새파랗게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무슨 능력을 갖추겠냐는 반박도 합당하다. 하지만 고도화된 대선판에서 시키는 일을 그대로 잘 수행하는 것도 능력 없이 할 수 없다. 캠프에서는 그렇게 안절부절하는 청년들도 굉장히 많다. 그리고 봉사 기회 자체가 이미 좁은 문이다. 학벌, 경력 등을 평가 받는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평가에는 인맥도 포함된다.

하지만 권성동 의원의 대응의 일부는 심각하게 잘못되었다. 우 모 군의 수행 능력에 대해서 호평하는 것도 좋고 자신이 평가하였을 때 수행 능력이 충분하여 대선 캠프에서 봉사할 기회를 준 것도 문제가 없다. 그리고 윤석열 캠프에서 충실하게 주어진 일을 소화해냈기에 청와대에서 9급 행정 요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할 기회를 준 것도 정상적인 채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권 의원의 발언에는 공정과 거리가 먼, 심각한 인식이 담겨 있다고 본다.

첫 째, 7급으로 채용될 줄 알았다는 발언이다. 우 모 군에 있어서 9급은 합당할지 몰라도 7급은 과하다. 이는 권 의원이 우 모 군에게 특혜를 줄 의사가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우 모 군은 받지 못한 특혜를 실제로 받은 청년들이 있을 가능성도 암시하고 있다. 둘 째, 최저임금을 운운하며 그의 임금을 사유로 우 모 군에게 미안하다고 한 점이다. 그는 자신의 직책에 맞추어 법이 정한 임금을 수령하고 있다. 만약 9급 공무원의 봉급이 작다면 공무원의 봉급을 현실화해야 옳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콕 찍어 우 모군에게 미안함을 내비춘 것은 자신이 호평한 인재에 대해서 특별한 대우를 당연시하는 시각을 노출한 것이다.

권성동 의원의 발언에는 특권에 대하여 당연하게 여기며 특권으로 인식하지도 않는다는 부분이 그대로 드러난다. 실제로 특혜가 주어지지도 않았고 잘못을 하지도 않았지만 권 의원의 발언은 대중에게 밉게 보일 수 밖에 없고 나아가 다수에게 특혜가 실제로 있었다는 인식 까지 심어준다. 이것은 공정이 아니다. 권성동 의원은 지역에서 굉장히 유능한 정치인으로 통하고 인기도 매우 높은 사랑을 받는 정치인이다. 하지만 필자는 수 년 전 그를 손님으로 맞은 적이 있는 바텐더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권 의원을 접객하고 몇 일 만에 필자에게 이 사실을 털어 놓으면서 지역에서 호감을 듬뿍 받는 정치인이었지만 손님으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 놀랐다고 평가했다.

솔직히 아무리 대단한 정치인이라고 해도 늘 완벽할 수는 없으며 사석에서는 못난 면을 노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거물 정치인 권성동 의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한 청년에게 실수한 것과 이번 일에서의 대응 실수는 차원이 다르다. 특혜가 아니라 국민이 요구하는 공정함에 미치지 못했을 뿐이지만 그렇기에 말이라도, 형식이라도 더 높은 공정성을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전국민에게 비호감을 샀다는 것을 늘 호감 속에 있던 권 의원이 알아차리기는 힘들었을 수도 있다. 국민 앞에서는 좀 더 겸손하고 더욱 더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준석의 징계와 반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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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은지 삼 주가 지났다. 현재 까지도 이 대표의 지지자들은 들끓고 있다. 이들은 아예 징계를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의 옹위세력에 등을 돌렸고 지지율은 폭락해 버렸다. 하지만 징계를 이끌어낸 기존 보수 세력 주류는 – 이준석 대표 지지층에서는 구태라 지칭하고 통상 구보수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 이러한 사단에 담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럴 줄 몰랐다.”거나 “겁난다.”는 반응이 없다. 그것은 이런 사달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한 상태로 진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보수가 이준석 대표와 유승민 전의원을 보는 시각은 “내부 총질”로 대표될 수 있다. 우파 정당 내에 기생한 좌파로서 끊임 없이 상대 당 프레임에 힘을 실어주고 타당하던 아니던 보수 정당을 공격하는데에 꼭 동참하면서 매번 “합리적 우파이기에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다.”라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구보수의 입장은 “민주당 가서 하라. 다를 것도 없는데.”이다. 하지만 무수한 좌파의 공격을 막아낸 이준석 대표로서는 억울한 부분이 클 것이다. 정치를 유승민계로 시작해서 지금도 유승민계의 우호 세력으로 꼽히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지지율의 하락도 각오했을 것이다. 애초에 불복하던 소수지만 대선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선 당대표를 선출할 지점에는 구보수 쪽에서는 청년들의 정치 욕구에 화들짝 놀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선 결과에서 예상 보다 낮은 투표율과 지지율에 구보수는 배신감과 동시에 자기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유승민계와 이준석계를 위험 요소로 믿는 자기 신앙에 따라 2030남성들과 척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들을 제거하겠다는 결연한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좌파 정당에서 넘어온 새로운 지지자들에 대해서는 ‘어차피 믿을 수 없다.’는 인식도 작동했다.

이런 저런 완곡한 표현을 걷어내고 서술하자면 이준석 대표에 대한 징계는 정치적 행위였다. 더 엄밀히 말하면 세력 대 세력의 힘겨루기의 산물이다. 물론 이준석 지지자들이 말하는 반역행위라는 프레임은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쪽은 대통령의 세력이기 때문에 아무리 당 차원에서 봐도 대등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행위를 사법 시스템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도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정치무관심층의 비중이 크고 새로 당원이 된 젊은 남성들은 이준석을 지지하는 동시에 정당의 원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리더라면 지지자들에게 충분히 상황을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당의 문법으로만 설명하고는 말았다.

그것은 ‘신입 우파’들을 배려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 신입 우파는 ‘신뢰할 수 없는 좌파’에 불과했다. 대화하고 설득하고 수용하여 구보수에 변화를 불어넣고 새로운 지지자들을 확고한 우파 지지자로 만들 생각은 애초 부터 없었다. 총선 까지 이 년 동안의 시간이 있어 만회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있었지만 도대체 그 만회의 대상이 누군지는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는 구보수 내부에서도 이준석의 대체제가 있느냐는 물음은 지속적으로 나온다. 이 대표의 지지율은 징계 전 보다 더 올라갔다. 소수지만 구보수에서 일부가 이준석 대표에게로 넘어갔다고 보아야한다.

어쩌면 이준석 없이 자기 힘으로 다시 2030남성들을 그리고 2030여성들 까지 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한 분위기 탓인지도 모르겠다. 매번 2030여성들을 언급하지만 얼마 전 까지만해도 2030남성들도 강력한 좌파 성향이었고 2030여성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더 강성의 좌파 성향이라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는 발언만 간간히 들려올 뿐이다.

이준석의 징계와 지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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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8일 6개월간의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정치 인생의 큰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에 이준석 대표의 지지층은 크게 격분하는 분위기지만 이들을 제외한 다수의 보수 지지층은 오히려 이를 반기는 듯 하다. 그럴 것이 이 대표가 이전에 속했던 유승민계 자체가 보수 내의 야당으로 선호 보다는 불호가 많은 상태였다. 이준석 대표의 당대표 당선은 2030 남성들의 강력한 지지와 중도층의 집결 덕이지 보수내 골수층의 불호 스탠스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짚고 갈 필요가 있다.

이준석 지지자들의 분노를 더 자극한 것은 윤리위원회가 증거주의에 입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는 오해가 있다. 정당의 윤리위원회는 사법기관이 아니다. 지극히 정치적인 사유에 대하여 정치적인 결론을 내리는 기관이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시절인 지난 2018년에는 얼마 전 보궐선거에서 5선을 달성한 김영선 의원이 무려 당원권 3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적 있다.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을 해당행위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이 대표 지지자들에게 위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윤리위원회의 속성을 떠나 이준석 대표가 대통령 측과 힘겨루기 끝에 당내 권력에서 밀려났다는 것이 본질이며 이 대표에 권력을 실어주고자 하는 지지자들로서는 화가 치미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는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정치인이고 그에게 ‘불호’의 평가를 주는 상대적 다수는 오히려 만족하고 있다. 2030도 예외는 아니다. 여론조사기관 넥스트리서치가 SBS 의뢰로 지난 9~10일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2030남성들 중 근소한 다수가 징계 결과를 지지했다.

이준석을 지지하는 2030남성들은 소속 집단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대표성은 지니고 있으나 그 대표성이 완전하지는 않다. 여론조사에서 징계를 찬성한 사람들 중 좌파 지지자들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내부의 ‘불호’를 가진 청년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이들과 어른 세대의 다수를 껴안을 수 있어야 이준석의 정치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담담하게 지지자들의 당원가입을 촉구하던 이준석 대표의 모습을 보면 그는 이러한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수완박은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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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을 추진하고 있다. 앞 서 검찰이 가지고 있던 수사지휘권을 경찰에 넘긴 여당이 이제는 그나마 남겨놓았던 ‘6대 중대범죄 수사지휘권’ 까지 박탈해서 경찰이 수사한 대로 기소만 가능한 조직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한국 특유의 서열 의식과 어울러져 “영감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일종의 갑질의 상징이었다. 검찰의 실수들도 항상 나열되며 검찰 기능의 축소를 외치는 자들의 근거가 되어주었다. 비록 경찰이라고 실수들이 없었던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강력한 검찰의 등장에는 정말로 강력했던 경찰의 견제가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군대와 마찬가지로 무장 조직인 경찰은 군사독재 정권 치하에서 군부에 협조하여 시민들을 탄압하는 역할을 했으며 이를 위해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통제하고자 검찰의 강력한 수사지휘권을 가지게 된 역사가 있다. 물론 현재는 군사정권이 아니고 경찰이 견제 받은 세월이 길어져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여당의 수사권 조정은 무언가 문제가 있었다.

6대 중대범죄를 제외하고는 1차적 수사를 개시할 권한을 경찰에 모두 넘겨 버렸다. 검찰이 범죄를 인지해도 경찰이 수사를 개시하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견제’라는 것이 사라진 것이다. 1차 수사는 경찰이 전담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대부분의 국가가 시행하는 제도라고 해도 특수한 경우에는 검찰이 1차 수사에 나설 수 있는 방법을 남겨두어야했다. 하지만 여당은 그러지 않았다. 거기다 국정원에서 안보 사건 수사 기능을 떼어다가 경찰에 붙이면서 견제도 없는데다 조직도 비대해진 초강력 경찰이 탄생한다. 이 모든 것은 이른바 ‘검찰 개혁’의 일환이었다.

‘검찰 개혁’은 바로 독립성을 띈 검찰 조직을 완전히 손발을 잘라내어 운동권 권력을 견제하는 일이 없도록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 따위 작업에 ‘개혁’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지만 저들은 그렇게 하였다. 검찰에서 떼어낸 권력을 경찰에 부여한 것은 행정자치부 소속인 경찰이 대통령의 통제에 더 가깝고 어떻게 보면 이것이 권력지향적으로 보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운동권 권력은 자신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동안 경찰은 완벽히 통제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저들이 그토록 말살하려던 검찰의 독립성은 군사 정권 시절 현 여당의 선배세대가 투쟁한 산물이라는 것이다.

검수완박은 ‘퇴행’이다. 수사지휘권의 요체는 두 권력기관의 상호 견제에 목적이 있다. 이를 조정한다면서 견제가 거의 되지 않게 만들었으니 이미 한 번의 퇴행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아예 박탈하여 견제라는 것을 없애버릴 심상이다. 애초에 이들의 명목은 검찰의 일방적 독주를 막고 상호견제가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통제가 힘든 검찰을 무력화 시키고 반대로 만만해 보이는 경찰이 독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부패 수사의 노하우가 축적된 검찰을 수사에서 배제시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운동권 진영은 이제 ‘신적폐’라는 오명을 달았다. 대장동 사건이나 태양광 비리 등 이제 까지 도덕적 경고자가 없었던 운동권 진영의 부정부패야말로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대중은 인지하게 되었다. 정권 교체는 이들을 처단해 달라는 메세지도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 국가의 사법 시스템 자체를 망가뜨리려는 것은 부정부패 보다도 더 악랄한 역사에 대한 범죄다. 죄를 은폐하는 대신 국가 차원에서 수사 능력을 말살하겠다니 운동권 다운 발상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을 보아 검수완박 자체는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두고두고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되기를 빈다.

검수완박의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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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K정치의 관전자로서 검수완박의 강행은 민주당에 파멸적 결과로 이어질거라는 예감이 든다. 냉정하게 절차적으로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이러한 상황에서 뻘짓을 하는 주체에게 항상 파멸적인 결과를 안겨왔다.

검수완박의 문제점은 의도가 발작적이며, 현실적으로 매끄럽게 실행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검수완박’이라는 용어의 파괴적인 이미지 때문에 보수적인 유구권자들의 역린을 건들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마 법안이 처리되고 현실에 드러날 시간을 고려하면 그 결과는 다음 총선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에 검수완박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 백래쉬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도 든다. 필자가 떠올린 시나리오에 몇 가지 분기점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운동권 내부나 경찰 내부에서 파멸적인 사태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자당이 만든 검찰총장이 상대당 대통령으로 당선된 상황에서 검수완박은 역사의 흐름을 손으로 막고자 하는 행위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개인적으로는 높진 않지만 문재인이 검수완박을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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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사저가 임기 전 살던 곳이 아닌 지역에 신축됨에 따라 기존의 사저는 매각되었다. 문제는 매각가가 26억인데 지역민들은 적정 가격을 9억 원 정도로 본다는 것이다. 과소평가 되었다고 가정해서 15억이라고 가정해도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가격이다. 혹자는 가격은 파는 사람 마음이고 사는 사람 마음이니 매수자와 매도자가 동의한 가격이면 그만이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문제는 고위공직자의 재산을 시세 보다 비싸게 매입하는 방식으로 뇌물을 주는 수법이 이미 기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엄연히 공직자이다. 대통령의 사저를 두 배 가까이 비싸게 샀다면 이것은 심각한 부패 문제가 된다. 구매자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 친지, 친구 까지 싹 찾아내서 특혜를 받은 것이 없는지 검증해야한다. 뇌물인지 아닌지 여부는 대가성에 달렸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적 공동체’ 개념 까지 동원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하고 재판에 회부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 검증을 받아야 한다. 자신이 만든 선례를 피하고 싶을 것 같지는 않다.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