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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초기 외교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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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기조는 확연하게 친미 노선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일단 한국의 보수 정당은 전통적으로 친미 노선을 고수해왔으며 이를 미국도 인지하고 있다. 이러한 친미노선의 성공이 폴란드 정부로의 막대한 무기 판매라고 볼 수 있다. 무기 판매는 단순한 상업적 거래가 아니라 외교, 정치적 행위이다.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최전방을 담당하는 국가로 이 NATO의 핵심은 결국 미군이다. 비록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직접 지원하고 독일이 갑작스러운 군비 증강을 하느라 납품할만한 서방국가가 한국 뿐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이 확실히 친미, 친서방의 노선을 택하지 않았다면 과연 미국이 정하는 질서 속에서 폴란드가 한국에 대대적인 무기 구매를 단행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러시아에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 것을 놓고 외교의 실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 하지만 이는 과도하게 서방 특히 유럽과 미국의 입장에 감정을 이입한 판단이다. 한국은 러시아와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있지 않다. 반면 경제적으로 많은 기업들이 러시아에 진출해 있으며 교민은 약 17만명에 달한다. 우리가 비록 서방국의 말석에 있다고 하지만 근래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 적이 없는 러시아를 상대로 이를 갈 필요는 없다. 우크라이나에 대량의 무기를 보내고 있는 폴란드에 막대한 무기 공급을 맡은 입장에서 충분히 서방국의 일원으로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표정관리를 통해 러시아에 있는 우리 기업과 교민을 보호하는 중이다. 매우 미묘한 줄타기를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보수 내부에서 나오는 가장 큰 불만은 선명한 반중노선을 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과 이를 갈며 갈등을 해야 만족할 수 있는 반붕 감정이 우리 사회를 감싸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반중 감정을 만들어 낸 것은 중국 자신이며 사필귀정이지만 그렇다고 중국과 과도한 갈등을 일으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적으로 매우 깊은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거주 중인 교민의 숫자도 많다. 이들을 위험에 노출 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또한 호주의 예를 들지만 호주는 중국과 접하고 있지도 않고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중국이 정치에 개입한 증거가 발견되지도 않았다. 그렇게 호주와 우리는 다른 상황이다.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호혜를 보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확고한 친미노선을 탔다는 것은 중국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전형적인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중국이 문재인 정권 때는 고압적으로 굴다가 최근에는 발언의 수위가 낮아졌다.

운동권 매체들의 행태를 봐도 윤석열 정부의 초기 외교 기조가 잘못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MBC는 얼핏 욕설 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욕설 프레임을 씌워 한미 관계를 흔들려 했을 정도이다. 이런 트집잡기에 나섰다는 것은 트집을 잡지 않고 비판할 거리가 많지 않으며 친미 기조에 훼방을 놓으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향신문이나 한국일보 같은 운동권 매체들도 지속적으로 미국을 폄하하며 미국을 버리고 중국의 종속할 것을 주장하는 사설을 내놓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수 세력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확고하지 못한 친미기조는 잘못된 지적이라 주장하는 바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평등 세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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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선 평등을 외치던 돼지들이 정작은 새로운 불평등과 새로운 계급을 만들고 자신들이 그 새로운 계급의 지배계급이 되는 과정이 적날하게 묘사되었다. 이 소설이 탄생한 것은 공산권의 붕괴가 있기 한참 전이었으니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이 소설에서 굉장히 유명한 대사는 바로 ”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로 새로운 계급을 추구하는 위선자들의 속성을 통렬하게 묘사한다. 페미니즘 진영은 이 소설이 비판했던 좌파 진영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그래서인지 위선 역시 동일한 종류의 것을 공유한다.

페미니즘 진영은 성별로 차별 받지 않는 평등한 사회가 아니다. 결혼제도라는 남녀 간의 결합은 페미니즘 진영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는 분야다. 페미니즘 진영의 중론은 바람직한 결혼이란 집을 남성이 구매하고 최소한 아파트 전세에 구 시대에 여성에게 요구되던 혼수 역시 남성이 준비하는 것이다. 가정 경제와 가사에 대한 인식도 재밌다. 그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수입은 남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가사는 남성의 돈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며 그 다음 단계는 수입은 남자가 책임지고 가사는 정확히 반 씩 분담하는 것이다. 가정경제를 남성이 책임지고 여성이 가사를 책임지는 형태는 ‘독박 가사’ 혹은 ‘독박 육아’이다. 남성이 기존의 남성성을 유지하는 것도 당연하고 여성성도 전담하거나 적어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 진영이 말하는 평등한 사회다.

실제로는 일단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계급으로 계급을 나누고 책임을 오로지 남성 계급에 부여한 다음 신설된 여성 계급은 권리만 향유하는 특권계층이 되는 것을 ‘평등’하다고 일그러진 정의를 내린다. 가부장제를 타파하고 기존의 가부장제도 무색할 정도로 불평등한 초강력 가모장제를 평등이란 이름을 붙여 추구한다. ‘성계급주의’를 실천하는 이 모습이 동물농장 속 돼지들과 너무나도 닮았다. 그렇다면 나폴레옹은 누구란 말인가?

과연 언론탄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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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 때 부터 극단적 좌편향 매체가 된 MBC가 대통령 순방 과정에서 전용기에 탑승하지 못한 것을 두고 MBC와 좌파 매체들은 언론탄압이라고 비판하는 분위기이다. 심지어 보수 언론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전용기는 취재의 장이기 때문에 탑승시켜주지 않은 것은 취재 제한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뉴제네 같은 군소 언론 역시 전용기에 탑승하여 취재하기 힘들다. 이는 뉴제네가 취재를 제한당해서가 아니라 전용기에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이다. 이제 까지 MBC가 당연하다는 듯이 전용기에 탑승할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특권이었다. 하지만 본질은 권력과 언론의 신사협정이자 동시에 대통령실의 재량이다. 전용기는 대통령실이 좋은 정보만 제공할 수 있는 완벽히 통제하는 공간이고 대형 언론에 좋은 소스를 주는 것이 홍보에 유리하기 때문에 MBC를 탑승 시키는 것이다.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여론 전문가로서 필자에게 대응법을 묻는다면 필자는 끝 까지 언쟁을 벌여 MBC의 사과를 받아낼 때 까지 논쟁하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이 때 몰아치듯이 틈을 주면 안된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 하지만 그 전에 근본적으로 MBC와 다퉈야하는 이유가 있는지 반문해 보자면 답변은 Yes이다.

MBC가 보도한 대통령 욕설 기사는 음향 전문가도 판별이 안된다는 결론을 내린 사안이다. 얼핏 듣기에 욕설로 들리는 대화는 수도 없이 많다. 멀쩡한 외국 곡도 “아나까나 까나리 까니”로 들리지 않던가? 이러한 입증 불가능한 소스를 가지고 억지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은 좌파 매체들의 오랜 고질병인 ‘낙인찍기’이다. 이렇게도 들리고 저렇게도 들리는 음성을 찾았으니 “욕설을 했다.”고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좌파 매체들의 오랜 습성으로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내가 방금 거짓으로 본질적 진실을 만들었는데 왜 기계적 진실에 불과한 실제 사실을 언급느냐?” 쯤 될 것이다. 솔직히 좌파 매체들은 매체라고 하기 힘든 ‘유사 매체’ 상태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과연 언론이라고 보기 힘든 조직을 언론 대우를 해 주어야 하느냐?’는 의문 정도는 들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엔 이러한 유사 언론과의 다툼 과정에서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는 것이 상책이 아니지만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적어도 ‘하책’은 아닐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통령실의 입장 역시 존중받을만하다.

이 과정에서 우스은 점은 좌파 집단의 이중성이다. 좌파 정권은 과거 청와대의 기자실을 폐쇄하면서 모든 언론사의 취재를 근본적으로 완전히 차단하면서 청와대가 발표한 그대로 받아 쓰기만 할 뿐 취재해서 진실을 전달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권이 아니라 좌파 진영 전체가 나서서 특정 언론사 하나를 죽이려고 온갖 수를 다 썼던 역사가 있다. 솔직히 해당 언론사가 좌파 정권에 사사건건 부정적이었긴 하지만 적어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최악의 해석을 덫붙이는 형식이었다. 정작 좌파 매체들은 반대 진영을 향해 온갖 억지와 낙인 찍기 나아가 거짓 기사 까지 쏟아내면서 ‘기울어진 운동장’ 한 마디로 합리화하면서 보수 언론사 하나를 죽이려고 혈안이었다. 매체, 지지자, 관변단체, 정권, 정당 모두가 합심해서 달려들었었다. 그런데 취제 제한도 아니고 편의 제공을 거절한 것 정도로 언론탄압이라니 좌파에는 염치란 없는 모양이다.

시각에 따라서 언론과 싸우는 것 자체를 ‘하수’로 볼 수 있으며 비록 언론과 싸우더라도 대통령실의 대응은 “상책은 아니다.”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론탄압’ 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군사정권 이후 우리 역사의 언론 탄압은 ‘안티조선’ 뿐일 것이다.

광화문에 펄럭이는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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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에 계양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이재명 복심’ 정진상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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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김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9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복심으로 알려진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대장동 개발사업 과정에서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에 특혜를 몰아주고, 428억 원의 뇌물을 약속 받은 혐의 등으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였고 정 실장은 바로 구속됐다.

정진상 정무조정실장은 좌파 진영의 대표적인 편향 매체인 ‘말’지의 기자를 거쳐 1995년 부터 이재명 대표와 인연을 맺었으며 이 대표의 공직 마다 수행원으로 채용되었으나 실제로 공개적인 수행을 하지 않는 ‘비밀주의’를 고수했다. 정 실장은 이재명 대표가 가장 믿는 인물로 지목되고 있으며 지난 2021년 JTBC가 인터뷰를 시도하는 영상을 촬영할 때 까지 사진 한장이 공개된 정보의 전부였다.

정 정무조절실장은 또한 이적단체인 한총련 산하 기관 남총련(광주 전남 지역 조직) 출신으로 극좌 단체를 후원하고 좌편향 매체를 구독한 것이 지난해 11월 경 기사화되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국가는 왜 장애를 극복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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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장애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장애를 안고 사는 것은 개인의 사정이니 장애인에 대한 국가적 정책과 사회적 자본 투입은 ‘불쌍한 장애인’들에 대한 시혜성 행위로 여겨지곤 한다. 이러한 인식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좌파 진영에서 늘 달고 사는 “약자에 대한 보호” 역시 장애가 없는 이들을 강자로 보는 차별적 시각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 국가에서는 이념상으로 장애인은 약자가 되면 안된다. 동등한 국민이자 주권자이다. 장애인이던 장애인이 아니던 어느 하나 더 많은 권리도 더 적은 권리도 없어야한다.

이러한 이념적 토대에서 필자는 국가가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두 가지 측면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 째, 모든 인간은 잠재적 장애인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사는 동안 부상이나 질환을 겪기 마련이고 그 동안에는 일시적 장애인이다. 다리를 다치면 거동이 불편하고 팔을 다치면 일반적인 작업이 불가능하며 중증 질환을 앓으면 신체에 대한 통제가 실제로는 거의 가능하지 않다. 거꾸로 이야기 하면 장애인은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 단지 부상 상태가 영구히 계속되거나 회복이 매우 느린 것 뿐이다. 장애인에 대한 물질적 투자는 절대로 장애인만이 향유하지 않는다. 제도적으로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않는 사람이라도 일생에 최소한 한 두 번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이용한다. 즉, 장애인을 위한 시설 투자는 없다. 전 국민이 한 번 쯤은 사용하게 되는 편의 시설에 대한 투자이다. 확고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야한다. 편의시설은 필수시설에 비해 후순위로 여겨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고 편의시설을 완벽에 가깝게 확충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이 편의시설은 장애인만의 점유물인 장애인 시설이 아니다.

둘 째, 동등한 권리를 가진 국민으로서 장애인도 동등한 기회를 누려야한다. 각 국민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은 국가의 의무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동등한 학습의 기회를 가져야하며 사회에 진출해서도 동등하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기회가 장애가 없는 사람과 똑같이 주어져야한다. 이를 위해서 국가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적 발전을 독려해야한다. 장애가 없는 사람도 더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 처럼 장애인도 더 편리함을 확보하기 위해서 스스로 투자해야 하지만 적어도 동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서 까지의 투자는 국가가 책임져야한다. 특히 개인 장비를 넘어선 사회적 시설에 대해서는 당연히 국가가 장애 여부를 떠나서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지어야하며 기존의 시설은 개선에 나서야한다. 또한 이를 위해 사회적 서비스가 필요하다면 사회적 서비스도 제공해야한다. 그것은 국가의 의무며 이를 위한 사회적 비용을 충당하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의무이다. 다만 이 공동체의 일원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도 가지지 않는 사람도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보수 진영은 현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합’의 이른바 ‘장애인 권리 예산’에 비판적이지만 제대로 된 반박 논리는 없다. 그 예산이 너무 크다거나 요구 예산이 전장연의 수익사업과 연관이 되었다는 정도이다. 물론 이러한 비판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확히 사회적 가치에 기반하지 않은 반론은 그 힘이 약할 수 밖에 없다. 전장연의 주장의 핵심은 ‘탈시설’이다. 보수 진영은 여기에서 “국가의 책임은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데 까지지 개개인의 원하는 삶을 모두 공동체의 부담으로 이루어 줄 수 없다.” 거나 “스스로 삶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국민들과 비교해서 이러한 국가의 지원은 특권이다.”는 가치에 기반한 반박을 가해야한다. 또한 ‘공동 시설’이 전장연이 주장하는 ‘소규모 사설 시설’ 보다 나쁘다는 근거는 없고 이른바 ‘시설’에서 벌어지는 범죄들은 어디에서나 발생 가능한 범죄들로 범죄 억제라는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한다. 나아가 아무리 우리 사회가 선진국이라고 해도 사회적 자본에는 한계가 있으며 당장 모든 장애인의 권리 확보를 위해서는 ‘공동 시설’이 현실적이며 다양한 삶의 확보는 그 다음에 논의되야 한다고 비판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장애 극복 정책을 펼쳐야 한다. 좌파식 시혜성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오해를 불러 일으켜 장애 극복 정책 자체에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면 안된다. 그것이 우려되는 점이다.

檢, 노웅래(민주) 의원실 압수수색.. 6000만원 수수 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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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김영철)은 지난 2020년 사업가 박모씨 측으로부터 사업과 관련한 청탁과 함께 6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노웅래 의원의 의원실을 16일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노웅래 의원은 MBC기자 출신이다.

반부패수사2부는 “뇌물 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도시 재생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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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사업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강력히 추진하고 결국 실패한 정책으로 ‘잘못된 정책’의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도시재생 사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오세훈의 서울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정책 대부분을 적폐로 규정하여 되돌렸고 상당수는 실제로 실패한 정책이었지만 도대체 어떠한 이유로 도시재생사업은 중단되지 않은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는 도시재생에 대한 오해가 자리잡고 있다.

대중에 알려진 도시재생은 박원순식 도시재생으로 지역의 낙후된 시설을 그대로 방치하고 몇 가지 요소만 정비하거나 집단 시설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이는 전형적인 운동권 취향으로의 ‘성형 수술’에 가깝다. 외부인으로서 자신들은 누리지 않는 낙후된 지역에 대한 향수와 좌파 공동체로서 성공했다고 자평하는 ‘성미산 마을 공동체 모델’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깔린 방식이다. 그것이 좌파가 생각하는 도시재생의 개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시를 재생한다는 본질적인 행위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이는 좌파식 도시재생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좌파가 혐오하는 자연스러운 지역 활성과 인프라 확충, 관 주도의 재개발, 거주자들이 조합을 꾸려 주도하는 재건축 등도 도시를 재생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재개발은 지역을 완전히 리셋하고 새로 인프라를 깔고 그 기반으로 새로 공동체가 건설되는 가장 순수하고 적극적으로 도시를 재생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재개발, 재건축만 도시를 재생하는 행위는 아니다.

재개발, 재건축 등의 과정은 너무나 많은 직접 비용과 사회적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모든 지역에서 가능하지 않다. 대부분 매우 오래된 지역, 낙후된 인프라 등이 우선의 조건이 되는데 일종의 경쟁이다. 이러한 경쟁에 밀려나서 우선순위에 들지 못한 낙후된 공동체는 이러한 과정에 배제되고 부족한 인프라를 감수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낡았지만 폐차하기엔 이른 차를 계속 고치며 타게 되는 것 처럼 이들 지역들에 현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인프라를 확충하고 낡은 공공시설들을 재건설하는 등의 작업이 이루어져야한다. 이것이 바람직한 도시재생이다.

결국 예산을 극도로 낭비하고 예산 집행 과정에서 업체의 탈을 쓴 좌파 집단에 세금이 돌아간다거나 좌파식 감성으로 쓸모 없는 시설을 양산하는 일이 발생한 것은 이것이 ‘좌파식’ 도시재생이었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이념을 주민들을 위한 형태로 만들었어야 하고 그렇게 도시를 재생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좌파식 도시재생에 대한 혐오감으로 도시재생 자체를 재개발과 재건축 외엔 외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실용적인 면은 떠나서 이념적인 측면에서도 태만이다. 보수 진영은 이렇게 태만하다가 대안이 없어서 좌파식 정책을 마지 못해 받아들이고는 이 정책이 실패하면 책임을 오로지 좌파에게 지우는 일이 반복되지만 사실은 보수에도 책임이 있다.

지금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도시 재생에 대한 보수 진영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패륜 기도’를 외치는 좌파 사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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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좌익 종교인 단체인 ‘정의구현사제단’은 극단적 좌편향 매체로 “언론사라기 보다는 프로파간다 기관이다.”고 평가 받는 TBS와의 인터뷰에서 “10.29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의 영혼도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라고 한 분 한 분 이름을 정성껏 불렀죠. 이름을 부르면 패륜이라고 하는데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는 것이 패륜이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패륜하는 기도를 해야 되고요.”라고 주장하여 세간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사제단의 의도는 명백하다. 자신들의 행동은 그저 안식을 기원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포장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러한 행위를 ‘패륜’으로 규정한 것은 그럴만한 사유가 있다. 먼저 사회 구성원들은 좌파 진영이 세월호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할대로 이용한 것을 명백히 기억하고 있으며, 좌파 매체들과 좌파 단체들이 사망자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공개하고자 하는 것을 세월호 같은 패륜적 정치 프로파간다의 기준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칭 정의구현사제단은 패륜적 정치 활동을 단지 이름을 불렀을 뿐인 것으로 왜곡하고 싶어하는 세월호 팔던 패륜 단체 중 하나인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어떤 집단이라도 이념에 매몰되어 인간성을 뒤로 하는 경우는 빠지지 않고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좌파 진영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 인상을 준다. 애초에 이념이나 진영을 최우선으로 삼는 풍조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작품성을 높이 평가 받지는 못하지만 “이념은 피 보다 진하다.”라는 대사를 내뱉는 순간 만큼은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현실을 적날하게 보여주는 최고의 장면이라고 신념을 담아 말할 수 있다.

문제는 보수 진영이다. 이들의 경쟁상대라고 하지만 이러한 비인간적 행보를 충분히 비판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여당의 의례적인 반박으로 넘어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데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가 자문해야한다. 보수 진영이 추구하는 인권 존중의 이념과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정치사상을 갖춘 이라면 이러한 비인간적이고 수 많은 가족들을 고통으로 몰아 넣는 행위에 맞서 격렬하게 싸워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상황은 보수 진영이 투쟁 동력을 상실한 것인지 정치 사상이 퇴색된 것인지 잘라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순간인 것 만큼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