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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훔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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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19일 한국타이어 조현범 회장의 배임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본사와 조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은 조 회장이 회삿돈을 자택 인테리어 공사 대금과 자동차 구매 비용으로 유용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대기업은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이중 삼중의 감시와 처벌이 이루어지지만 중견 미만 특히 소규모 중소기업에서는 회사 자금의 사적 유용이 여전히 때때로 발생하고 당사자들은 이를 숨길 생각 조차 하지 않아 사회적으로 고스란히 노출된 사실이다. 인터넷에서 나쁜 중소기업을 묘사할 때 “임금은 체불하면서 사장은 차를 바꾸는 기업.”이 전형적일 정도로 편법, 불법으로 공금을 사적 사용한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배임, 횡령 특히 오너의 범죄가 심각한 이유는 문화적으로 여전히 회사를 대주주가 사유물로 여기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근대적인 인식 때문에 영세기업은 말할 것이 없고 규모가 커질 수록 국가의 감시가 심해지는 큰 기업들도 비슷한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주식회사여도 오너가 회사 주인이란 생각으로 회사의 재산이 아닌 오너의 재산이라고 오너도 주변에서도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도 거리낌 없이 배임을 하지만 주변에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오너도 아닌 CEO들도 비슷하게 바라보는 경향도 있다. 그나마 사회적으로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길은 먼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가 건강한 자본주의 사회로서 발전을 거듭하기 위해서는 법과 높은 도덕성에 의존하여 원칙대로 작동해야한다. 부패가 심했던 사회가 이 정도로 고도화된 자본주의 국가가 된 것도 부패와 끊임 없이 싸워온 기성세대가 쌓아올린 금자탑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우리 사회가 부패와 사회정의에 대해서 만족하는 사회가 아닌 것 처럼 자본주의도 더 건강하고 더 활발한 그래더 더 크고 첨단의 자본주의 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보통의 사회 구성원들의 욕구다. 이러한 목적에 우리 세대에서도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앞 서 선배들 보다 더 뼈를 깍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몇몇의 의식 차원이 아닌 아닌 사회 차원에서의 발전을 꿈꾸어 본다.

간첩이 활개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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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 중반에 이르러서 인터넷 공간에서는 당시 반여(지금으로는 반야) 성향의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에 간첩이 있다”는 말이 오고갔다. 어떠한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에 해당하는 ‘문재인 정부 정책’을 보았을 때 매국적인 정책이 다수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저러한 매국적 정책을 양산하는 것은 저 정권이 간첩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 말기에는 정부가 간첩이라는 전제 하에 중국의 앞잡이냐 혹은 북한의 앞잡이냐를 놓고 진지한 대화를 어렵지 않게 관찰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기능을 박탈하는 정책은 너무나 당연한 대공수사기능의 말살로 여겨졌다.

지난 18일 국정원은 다수의 단체들 특히 민주노총과 그 관련 조직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압수영장이 나왔다는 것은 법원이 납득할만한 충분한 증거물을 국정원이 제출했다는 의미이다. 수사 대상 중 얼마나 유죄가 나올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 간첩이 대거 암약하고 있으며 문재인 정권과 당시의 여당(지금의 야당)이 이와 싸우는 국정원의 대공수사 조직을 없애 간첩의 활동을 수월하게 해주려 했다는 정황이 국민들의 눈 앞에 떡하니 등장한 것이다. 거기다가 국정원이 흘린 “윗선이 수사를 막았다.”는 문재인 정권 시절의 수사 비화는 운동권을 제외한 국민 대다수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간첩이 없는 사회는 없다. 분단 이래로 한국과 북한은 서로 활발한 첩보활동을 해왔다. 중국의 스파이들이 호주나 캐나다에서 선거에 개입하고 미국에서 활동하다 왕왕 적발되기도 한다. 이렇게 활발한 첩보활동을 벌이는 중국이 바로 턱 밑에 있는 한국을 가만히 두었을 리가 없다. 마침 근래에 중국의 ‘해외 비밀 경찰서’로 의심되는 기관이 서울에서도 발견이 되어 기관들이 내사에 들어간 상황이다. 다만 첩보활동이 당연하다면 그 첩보활동을 색출하는 작업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방첩 기능을 하나하나 망가뜨려갔다. 그리고 그렇게 억압된 방첩 수사가 한거번에 이루어진 것이 어제의 압수수색인 것이다.

국정원은 잡아들이는데에 급급하기 보다는 최대한 관찰, 감시하여 그 배후의 배후 까지 뿌리 뽑는 것을 선호하는 조직이다. 이런 대대적이고 공개적인 압수수색은 국정원의 본래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현 정권이 대공쇼를 벌여야 할 정도로 지지율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국정원의 움직임은 일종의 정치공학적 선택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가능성이 가장 높다. 지난 정권이 망가뜨린 국정원 기능을 되살려달라는 시그널을 정권에 보내면서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했을 것이다. 국정원이 굳이 이런 움직임을 취할 수 밖에 없도록 몰아 넣은 문재인 정부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적어도 방첩 활동을 훼방 놓아서는 안됬다.

과연 문재인 정권은 무너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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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시작되고 6개월 지났지만, 국회 과반은 민주당이 쥐어흔들고 있고 지금도 공격이 들어가고 있다. 게다가 윤석열 당선은 정말 아슬아슬한 차이였다는 점만 봐도 이재명 당선을 떠나 윤석열 당선은 바카라 도박에 가까웠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박정희 서거 이후 5공화국 부터 신군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단순히 집권을 위한 실용주의를 넘어선 체제였다는 점임을 되새겨보자. 실제로 김재익 같은 인물이 민주화 인사들에게 수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경제 발전이 민주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념가였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의 증언으로 나타났고, 전두환은 ‘경제는 자네가 대통령이야’ 같은 어록 뿐만 아니라, 허화평을 위시한 허씨들의 청와대 권력 암투에서도 김재익을 보호하였다. 전두환 이후로 노태우 정권까지는 이런 부분들이 나름 지켜졌다고 해도 무방한 이유 중 하나가 노태우는 6공화국을 위한 단절은 했을 지언정 실무적인 부분은 5공의 후신이라 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영삼은 IMF로 이미지가 안 좋아지긴 했지만, 관료들은 계속 이어져온 체계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김대중 정부에 들어와서 IMF 이전의 시스템이 많이 무너지긴 했지만, 노무현 정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체제였다고 해도 무방하고 노무현도 전작권 반환에 대한 인식을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 거역할 수 없다고 언급하고, 제주해군기지에 평택 미군기지, 자이툰 파병 같은 부분에서는 나름 후한 점수를 얻고 들어갔을 정도이다. 군사정부(?)나 민주정부(?)와 다른 철학이었어도 경제를 위시한 실용적인 부분이 나름 공통분모인 점을 지울 수 없었다. 왜 갑자기 여러 정권들을 언급하게 되었냐면,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져오던 ‘권력 이동’이 아닌 ‘권력 획득’을 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이명박이라는 정치인이 박근혜를 싫어해도 정권의 연장을 가능케 하였다면, 박근혜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게 탄핵이라는 방식으로 탈취를 당했고, 비선실세, 태블릿, 삼성승계를 위한 승마 구입 같은 진실의 유무를 벗어난 국민의 감성을 흔들기 좋은 소재로 공격당하고 패배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수없는 뻘짓을 했어도 견제가 제대로 안 되는 이유가 앞서 언급한 ‘권력 획득’을 통한 절대적인 지위를 보장받았다는 점이 사유다. 동시에 이재명 당선이 단순히 돈 권력 여자 문제 때문에 당선이 안 된게 아니라 당선을 가능케 하기 위한 ‘권력 이동’을 위한 동기가 전혀 마련 안 되었고, 이낙연이 탈락하게 되면서 전라도에 존재하는 민주당의 정통성이 희석되어 80%대의 낮은 지지율이 나오게 된 탓이다.

친문과 이재명의 사이가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닌 친문이 이재명에게 권력 이동을 해줄 수 있는 동기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친문과 이재명은 아직도 물과 기름 사이로 지내고 있으며 윤석열 정부에 대한 공격이 다중화 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과연 향후 어떻게 될까?

“내부총질”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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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여권에서는 “내부총질”이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이 신조어의 정확한 의미는 정의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확한 용법으로 쓰이고는 있는 신기한 상황이다. 용법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내부총질의 의미는 바로 일종의 내부비판이다. 하지만 내부비판이라는 단어가 이미 있는데 왜 내부총질이라는 유사한 신조어가 탄생한 것일까? 그것은 내부비판은 긍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대부분 독자들이 짐작할 수 있듯이 내부총질은 부정적 뉘앙스의 내부비판을 지칭하게 된다.

정치권에서 내부총질이라고 불리는 상황은 어떤 것이 있을까? 대표적인 상황은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도록 말로 판 함정을 사용할 때이다. 예를 들어서 “천인공노할 부정부패를 인정하지 않으면 역사 앞의 죄인이 된다.”는 표현이 있다. 잘못을 인정하면 부정축재범이 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 어떤 선택을 해도 나쁜 것 뿐이다. 정치권에서 서로를 향해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서로를 공격할 때 쓰는 방법이기 때문에 같은 당 내부에서는 대부분 상황에서 금기이다. 하지만 아주 밥먹듯이 쓰는 정치인이 몇몇이 있다.

이런 정치인들의 면모를 보면 어느 정도 세력이 있지만 소수에 머문다. 그렇기 때문인지 억울한 심리가 자주 엿보이며 동시에 사사건건 자신만이 옳다는 나르시즘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 대신 선택 받은 지도부를 향해서 끊임 없이 내부총질을 한다. 하지만 이런 정치인을 당원들이 사랑하기는 힘들 것이다. 항상 열성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원 다수의 지지는 받지 못하는 정치인들 중에 이러한 내부총질을 잘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그저 내부비판을 했다고 해명하지만 청맹과니라도 순수한 내부비판이 아님을 알 수 있을 상황이 대부분이다.

한덕수 총리 발언의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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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총리가 이태원 사고의 생존자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에 대해서 “본인 생각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나오는 중이다. 그 중 어느 정치인은 여당임에도 불구하고 “공감능력 제로…”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것 만큼은 너무 많이 갔다. 죽음을 당연하게 여긴 것도 아니고 적대적인 태도나 비아냥거리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아니다. 만약에 사망자가 좀 더 굳건했다면 치료 의지가 더 강했다면 그 가정하에 결과는 생존이라는 긍정적인 형태의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한덕수 총리는 적어도 사고 생존자의 사망을 안타깝게 여기고 죽음이 아닌 생존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표현한 것 만큼은 분명하다.

다만 기성세대 특히 산업화 세대 특징이 개인의 생존은 개인의 극복 문제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는 것이다. 과거의 우리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개인이 굳건했다면 혹은 개인이 치료의지가 강했다면 생존하지 않았겠냐는 탄식이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한덕수 총리는 현재를 살고 있는 현직 정치인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인식이 고루하고 시대에 맞지 않다고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망자들을 이용해 먹으려고 눈이 벌개진 운동권을 제외하면 누가 봐도 안타까워하는 것 만큼은 사실인데 그것을 “공감능력 제로….”라며 왜곡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정치인은 이러한 비판을 반복하고 있는데 내부 비판자로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 대중의 지지를 얻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상대 진영에게나 퍼부을 프레이밍을 같은 진영내에서 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내부 총질”의 정의 아닐까?

한파에 행사 불참한 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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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이 작성될 시점에서는 SNS에서 운동권 성향 이용자들 끼리의 성토이며 아직 언론에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신한울1호기 준공식에 불참한 것을 놓고 불만이 많다. 앞서 언론사들은 일제히 한파를 이유로 대통령이 참석예정이었던 행사에 불참하고 행사를 축소 했다는 기사를 인터넷판에 송고했다. 대부분 가치 판단 없는 사실 보도이다. 운동권 진영에서 불만이 많은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탈원전’정책을 뒤집은 현장과 관련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표면적인 이유는 “날씨가 춥다고 출근을 하지 않느냐!”는 논리다.

사실 대통령이 사무실 까지 가는 것이 출근이고 원전 까지 가는 것은 외근에 가깝다는 것 부터 사실 관계에 맞지 않다. 하지만 이런 지엽적인 부분을 떠나서라도 운동권 진영의 비판은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한파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 있어서 그렇게 작은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는 수 주 전 부터 현장을 관리하고 경호 작전의 대상이 된다. 이 경호 작전은 정교하고 세심한 계획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참석자들이다. 한파에 경호 계획에 따라 행사를 다 진행하면 참석자들의 건강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그러니 유일하게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인 대통령의 불참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한파는 또한 대부분 강한 바람을 동반한다. 대통령이 서울을 벗어나 국내에서 이동할 때엔 대부분 공군1호기로 불리는 회전익기 그러니까 헬리콥터를 이용한다. 헬리콥터는 그 특성상 기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예정에 없던 강풍이 분다면 대통령의 안위에 위협이 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행사 참석을 취소하고 규모를 줄이는 것이 마땅한 선택이다. 경호가 아니어도 한파는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 시킬 가능성이 있다. 마침 울진은 올해 산불이 난 지역이다. 만약의 사건이 벌어졌을 때 대통령이 해당 지역에 있다면 심각한 민폐가 될 것이다. 역시 아예 가지 않는 것이 만일에 있을 일을 예방하는 상책이다.

이러한 내용은 상식의 영역이다. 아무리 일반인들의 공론의 장이라고는 하지만 정적을 공격하고자 상식도 져버리는 인터넷 여론이 무서워 보인다. 만약에 이러한 내용을 전달하는 언론인은 없기를 바란다.

끝나지 않은 사법부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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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예규를 변경하여 고등법원 부장판사(이하 고법부장)들은 법원장에 지원할 수 없도록 막았다. 본래 사법부의 법원장 승진은 고법부장들을 인재풀로 해서 고법부장에서 법원장으로 진급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느닷없이 후보추천제로 바꾸더니 고법부장들은 후보로 나설 수 없게 막은 것이다. 이는 인재풀을 무시하고 입맛에 맞는 인사를 법원장으로 만들기 위해 인사제도를 왜곡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운동권 성향의 정치 판사들은 판사 사회 특성상 좋게 볼 수가 없고 소수일 수 밖에 없는데 이들로 요직을 채우려니 온갖 인사제도의 파행이 따르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후 부터 끊임 없이 정치 편향성 논란을 일으켰고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불만이 염려된다며 판사의 사직서를 반려한 적도 있을 정도로 매우 정치 지향적인 인물이다. 사법부를 겉으로라도 공정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보통의 정치 집단과 달리 자신들에게 완전히 안겨야 공정이고 정의라고 믿는 운동권 정권이 선택할 만한 최적의 인사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은 제도를 단단하게 손을 봐서 이러한 방식으로 정치 세력이 사법부를 장악하고 상시적인 정치 판결을 이끌어내려는 시도를 원천 봉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이 순탄할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압수수색 거부하던 ‘더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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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수행비서를 스토킹하고 주거침입과 보복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 군소 매체 ‘더 탐사’는 7일 오후 경찰이 집행하는 압수수색을 거부하며 경찰과 대치 하다 출동한 소방관이 문을 열자 어쩔 수 없이 압수수색을 받고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을 유튜브로 생중계 중이다.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명분은 ‘언론의 자유’다. 언론의 자유에 스토킹 등 강력범죄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라는 완장을 찼으니 특권을 가졌다는 인식이 운동권 진영의 오랜 습성이다. 필자는 운동권 진영에 관심을 가진 이래 20년 넘게 노조는 노동3법이 있으니 쇠구슬을 쏠 권리가 있고 이도저도 아니면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으니 죽봉으로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오후 5시30분 경 ‘더 탐사’의 라이브 영상에는 ‘더 탐사’ 구성원을 중점적으로 촬영하고 있지만 오디오에는 합법적으로 법집행을 하는 경찰관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유명 기자의 고함 소리와 나아가 운동권 지지자들이 모여 시위를 하며 소리를 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나아가 이 구성원은 스토킹을 합리화하면 “취재에 응하라.”는 주장을 펼치고 집회 참가자들은 동조하는 장면도 보인다. 이 모든 것이 법집행을 방해하기 위한 행위이며 운동권은 자신들은 법집행에 예외며 법집행이 가해진다면 자신이 옳은 일을 한 증거이며 부당한 탄압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특권의식과 도덕적 우월감의 산물이다. 언제 사회적으로 지탄 받는 행위를 하면서 특권의식을 방패로 삼아 도덕적 우월감을 표출하는 광경을 보아야 하는지 법치와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 한 시민의 입장에서 탄식만 나온다.

특권의식의 운동권, 이념 빈곤의 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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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정 의원은 지난 6일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하여 화물연대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강경 태도를 놓고 “공권력은 그런데 쓰라고 있는 것은 아니죠.”라던가 “그 얘기는 노동자를 적으로 여기는 발언” 같은 강성 비판을 늘어놓았다. 그 중 백미는 “헌법도 무시하죠. 왜냐하면 노동3권 헌법에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태를 하고 계시니까.”라는 발언이다.

공권력은 현재 화물연대 구성원들의 테러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 운송에 복귀한 화물차량들을 에스코트하는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이 공권력의 용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결국 공권력이란 운동권 성향의 사람들에 의해서 운동권 성향이 아닌 사람들에게 쓰여져야 한다는 운동권 우위의 계급론이 물씬 담겨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개 단체를 북한에 비유했다는 이유로 노동자 전체를 적으로 돌렸다고 하는 것은 자신들이 전체 노동자들을 대표하며 자신들에 속하지 않으면 노동자라는 우월 계급에 들지 않는다는 공산당식 계급주의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노동3권 타령은 모든 특권의식의 최고봉인데 노동3권에 화물연대가 비판받고 공권력의 제약을 당하는 폭력, 협박, 테러등은 속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3권이 담긴 헌법이 무시당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운동권의 특권의식, 계급의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다. 이것은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별개의 세계관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운동권 진영은 공산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공산주의 특유의 계급의식을 지니고 있는데 바로 자기 집단으로 이루어진 지배계급과 이에 상대되는 피지배계급으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헌법이 부여하는 노동3권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고 자신들 계급이 특권 계급이며 지배 계급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특수 권리 일종의 장식품 같은 것이다. 즉 ‘우리는 노동3권도 가지고 있는 특수 계급이다.(그러니 테러도 해도 되고 쇠구슬도 쏴도 된다.’라거나 ‘어디 감히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인 우리에게 공권력을 동원해서 막느냐?)’는 발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권의식은 선거에서 졌을 때의 운동권 성향 유권자들의 반응의 원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지면상 다른 기회를 기약하려 한다. 우려되는 것은 우익 진영의 반응이다. 우익 진영은 엄연히 이념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해석은 거의 없다. 폭력에 대한 반감 정도로 그 폭력에 내제된 현상과 이념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익 진영의 ‘탈이념 프레임’ 때문에 이념 연구를 게을리하고 이념과 현실간의 괴리가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유 이념은 화물차주들이 운동권 진영의 계급주의로 말미암아 사업자로의 권리와 노동자로서의 권리 까지 누리는 특권 집단이 된 것에 문제제기를 해야만한다. 또한 엄밀히 정체성이 자영업자인 화물차주에게 과연 업무 재개를 명령하는 것이 자유 국가에서 옳은지. 자유 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업무 재개를 명령할 수 있는 특수성이 무엇인지 논쟁해야한다. 우파 내부에서도 원칙론자와 실용론자들로 갈려 첨예한 논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 화물연대의 특수한 처우이다.

하지만 우파 진영에서는 이러한 논쟁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 문제제기를 할 만큼의 이념적 사상적 지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젊은 유권자들일 수록 더 성향이 심하다. 보고 배울 대상이 점점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고민정 의원의 우스워 보이는 발언은 그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면 우스운 것이 아니라 소름돋는 시각을 담은 내용이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우습고 어리석은 것은 고민정 의원이 아니라 상대방을 해석도 비판도 못하는 우익 진영이 처한 현실이다. 우익의 위기다.

( 인터뷰 전문 : Click )

화물연대와 페미니즘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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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가 자신들의 파업에 동조하지 않는 비구성원 화물차주들에게 쇠구슬로 사제 총기를 발사하는 등 살인미수, 테러 등의 행위를 가차 없이 행하고 있어 운동권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에게 민심을 잃고 있다. (운동권을 지지하는 이들은 대체로 테러 행위를 지지한다.) 심지어 대통령의 지지율을 올리는데 톡톡한 역할을 하는 중이다. 필자는 십 수 년 전 화물연대 구성원들의 외침에서 이러한 행위를 저지르는 도덕적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생존권의 침해다. 생존권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이다. 그러니 우리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도 ‘정당방위’이다.”라는 발언이었다. 이들은 지금도 같은 논리를 강조하며 도덕적 우월감에 차서 테러를 저지른다. 물론 저들의 주장을 받아주지 않는게 곧 죽음으로 직결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실제로 약자이지 않지만 운동권 진영에서 “약자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약자 이기에 무엇을 해도 정당하다.”는 논리로 직결되며 이는 즉 무엇이든 해도 되는 특권 계급임을 의미한다. 사실 제도적으로 장애인은 더 이상 약자가 되면 안되지만 장애인을 약자로 만들지 않겠다고 하지 않고 “장애인은 약자이니 보호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운동권만의 언어로 “(약자라는 이름의) 특권 계급이니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운동권 진영에 기생해서 수 십 년 간 성장해 온 페미니즘 진영이 주장하는 “여성은 약자다.”라는 논리와 직결된다. 혹자는 ‘여성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닌데 왜 약자라고 하느냐?’는 의문을 품는데 그것은 일반인의 언어로 해석했기 때문에 오는 몰 이해이다. “여성은 (약자라고 부르는) 특권 계급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해도 정당하고 온갖 특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로 해석해야한다.

물론 여기서 장애인도, 화물차주도 그리고 여성도 운동권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약자’이다. ‘약자’가 아닌 여성은 “명예성기”, 약자가 아닌 화물차주는 “명예자본가” 등의 이름으로서 특권을 가질 자격이 없다. 이러한 운동권 진영의 특권 의식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저들을 이해할 수도 없고 해석할 수도 없다. 저들 스스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