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은 왜 그랬을까? 2편

의사단체와 의대생들이 투쟁에 나선 목표, 의료 4대악은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도입, 첩약 급여화 그리고 원격의료 허가를 지칭한다. 이 중 1편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도입의 정치적 이유를 분석하였다. 2편에서는 원격의료 허가와 첩약 급여화를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서 서술하려 한다. 원격의료 자체는 오랜 세월 미래 기술로 인류가 꿈꾸던 것이다. 집에 앉아서 의사의 진찰을 받고 치료도 받는 세상이 사람들이 꿈꾸던 미래의 모습 중 하나였다. 수십년 동안 공학자들은 이 기술을 연구했고 전 세계를 작전반경으로 하는 미국은 이 기술을 어느 정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원격의료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법규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예 엄연히 불법이다. 의료법 17조 1항에 따르면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檢案)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아니면 진단서ㆍ검안서ㆍ증명서를 작성하여 환자 또는 「형사소송법」 제222조제1항에 따라 검시(檢屍)를 하는 지방검찰청검사(검안서에 한한다)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직접 진찰이 법이 강요하는 것이다. 진찰이 아예 이루어지지 않고 진단서 등이 발부되거나 환자의 설명에만 의존하여 오진하는 경우를 막기 위한 취지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2년 부터 의료법을 개정하여 원격의료의 길을 열기 위해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논리는 매우 합리적이다. 원격진료가 허용되야 임상에서 노하우가 축적되고 이로서 기술 보완이 이루어져 원격의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노하우라는 것이 바로 실패 사례라는 것이다. 공학적으로 오류 사례를 축적해서 이를 보완함으로서 기술의 발전을 꾀할 수 있다. 문제는 의료에서 실패 사례는 것은 오진이고 이것은 환자의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지 않더라도 환자는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보건복지부의 의도는 일제강점기의 731 부대를 떠오르게 한다. 731 부대는 수용인원에게 의학적 실험을 가했다. 평시에는 시행할 수 없는 도덕적 장벽을 전시라는 명분으로 허물었으며 731부대의 복무 의사들은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의학 발전에 공헌한다. 역사에 각인된 부도덕한 공헌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미래의 부를 명분으로 도덕적 장벽을 허물려 하고 있다.

웃긴 것은 이 사안에 있어서 모든 책임은 의사들만 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원격의료가 전격적으로 허용되면 의사들은 강제로 원격의료를 행해야하고 불가피한 오진의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법은 결과론으로 오진의 책임을 의사들에게 폭넓게 씌우고 있으며 진료를 거부하는 것 역시 강력하게 처벌하기 때문이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면 환자들의 원격의료 요청을 의사들은 억지로 받아들이곤 줄줄이 사법처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행정 편의대로 결정하고 예견된 실패는 의사들을 고발하는 것으로 해결해 온 보건복지부 다운 구상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료 주체에도 환자들에게도 비인간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료 분야를 가장 관료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원격의료는 정권을 가리지 않는 보건복지부의 오랜 숙원이다. 운동권 정부의 수족으로서 의료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힘을 받은 보건복지부는 그 힘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숙원을 실현 시키려 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달리 보면 보건복지부에게 자신들의 정치 거래와 사회주의 의료 욕구를 대행하기 위해서 운동권 진영이 보건복지부의 오랜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두 가지 측면은 마치 동전의 양면 처럼 동일한 본질을 가진다.

첩약급여화는 운동권의 취향을 보여준다. 물론 한의계의 건강보험 진입 시도는 더 긴 시간 동안 이루어져왔으나 운동권 진영의 취향과도 딱 맞아 떨어진다. 의사들을 부르주아지로 보면서 경멸하는 전근대적 시각을 가진 운동권으로서는 의사와 동등하지만 의사들과 경쟁하는 존재를 갈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와 동등한 의료인이라 주장하며 의사들을 반박하는 한의사들이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반미, 반문명 성향은 전통의학에 대한 더 높은 신뢰와 선호를 보이는데 마치 이들이 생활한복을 입으면서 서구 문화가 많이 반영된 트랜드를 쫓는 최신 패션과 멀어지려 하는 것과 같은 심리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미국이 선두에 있는 의료 기술보다 한국의 전통 의술이 더 우월하다는 클리셰를 만들어낸다.

이 클리셰는 사실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승냥이 떼와 같은 미제 놈들이 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조선을 침략했지만 조선의 민중들은 조선 고유의 것 즉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압도적인 정신력과 실력으로 미제의 첨단 기술을 까부순다는 북한의 선전물이 담고 있는 클리셰이다. 운동권 진영의 주축인 86세대가 20대 시절 공산주의와 북한에 잔뜩 심취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운동권 진영은 저 더러운 부루주아지들이 장악하고 있는 의료 자원을 빼앗아 민족 의학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발상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공약에서 부터 첩약급여화가 실려 있었던 것이고 운동권 정권이 드러서자 마자 온갖 사안에서 한의계 입장을 반영하는 정책을 편 것이다.

이 두 사안에 있어서는 운동권의 소망이 적용된다기 보다는 의사들이 수 십 년 동안 반대하던 사안들이 갑자기 상황이 뒤집어져 강하게 밀어붙여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시나 운동권의 사정이 깊숙히 관여되어있다. 어떤 국민이라도 아프면 병원을 이용해야 하지만 한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선택에 의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첩약 급여는 모두를 위한 모두의 공적 부조의 구조가 깨지고 일부를 위한 전부의 부담으로 바뀌는 것이다. 정의의 손상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집단이 아니다. 의료가 더 이상 과학이지 못하고 종시에 정치이기도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뒤틀린 취향과 정치논리와 싸우는 모두에게 응원을 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