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투쟁에 대한 평가와 제언

지방 토호와의 정치 거래와 사회주의 욕구가 점철된 의료개악에 맞서는 의료 투쟁은 의사협회와 정부 사이의 협상 타결 이후 짧은 시간 동안 뒤틀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얻어낸 과실도 서로의 손에서 주고 받으며 업치락뒤치락 바뀌는 모양새다.

의사단체와 운동권 집단 사이의 여론전에서 놀랍게도 일개 직렬집단인 의사들이 우세를 점했다. 이는 의사단체가 의료시스템에 대한 논쟁에서 현재 시스템의 유지를 바라는 대중의 지지를 받으면서 대의명분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가 운동권 진영이 너무나 당연시 하던 특권의식이 노출되면서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여론전에 쇄기를 박아 버렸다. 이로서 정부는 공세를 이어가면서도 굴욕적인 ‘원점에서 검토’라는 방안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그토록 바라는 철회는 아니었지만 강한 공세를 펼치는 동시에 놀라운 양보를 제시한 정부의 태도에 의사협회는 타협을 선택하고 만다. 그리 나쁘지 않다. 운동권이라는 집단은 절대로 물러서는 법도 없고 인정하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백기투항”이라는 반발과 탄식이 운동권 진영을 휩쓸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철회’가 아닌 ‘원점에서 검토’라는 이유로 투쟁 대오가 사분오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원점에서 재검토’는 ‘철회’와 다른 내용이 아니다. 이념집단은 영구한 철회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자기 이념이 지향하는 바가 너무나 분명하고 이는 불면하기 때문이다. 운동권 진영이 ‘철회’라고 명문화해도 ‘원점에서 재검토’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회’라는 문구에 집착하며 강한 비난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쏟아졌다. 물론 타협은 늘 내부 반발을 야기한다. 하지만 운동권 진영과 의사단체의 차이점은 운동권 진영은 빠르게 갈등을 봉합하고 대응에 나섰던 것이다. 운동권 진영은 ‘원점에서 재검토’라는 의미를 의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빠르게 포착하여 “공공의대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도발했다. 합의문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런 소리를 하는 건 강한 역풍을 야기하는 행동이지만 의사들이 수 일 간 ‘원점에서 재검토’라는 내용을 평가절하 해 놓은 바람에 대중은 운동권 진영의 행동에 문제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정확한 용어를 중요시하고 정치적 수사가 가지는 사회적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뼛 속 까지 과학자들이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다.

반세기 동안 정치 투쟁의 노하우를 쌓아온 운동권 진영의 반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계속되는 도발로 의사 집단을 분열로 몰아넣는 동시에 의대생들의 의사시험 거부 문제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레임으로 바꾸었다. 의사시험 거부는 수 천 명 규모의 의사 공급 문제를 야기함으로서 보건 당국을 파멸로 몰아넣는 폭탄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의대에 분노한 의대생들이 선택한 초강수이기도 하다. 이것을 ‘구제’ 프레임으로 몰아넣는 일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그대로 말려들어서 의사협회 등이 응시 거부자들을 구제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운동권 정권을 위한 판에 발을 들인 것이다. 이 프레임을 위해서 의학계의 사회주의 학자들과 운동권 계열 언론들이 총력을 쏟아붇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은 마치 화마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것 처럼 보인다. 시험 거부는 의대생들이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의 1년을 지불하고 보건복지부를 파멸로 몰아 넣는 버튼을 누른 것이다. 여기서 구제 받아야 할 대상은 의대생이 아니라 보건복지부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인식은 그렇지 않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사회주의 의료학자들은 구제 프레임을 대중과 의사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 구제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의사들은 현장을 모르는 책상물림들이라고 기가 차 하면서도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현장의 의사들의 의견을 취합하면 일관되게 사회주의 의료학자들의 뱀 혓바닥이 놀리는 것 처럼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두 가지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첫 째, 운동권 진영이 정말로 의사국가시험 거부의 결과를 과소평가한다면 저들은 치명적인 자충수를 놓은 것이다. 둘 째, 운동권 진영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저런 주장은 의사집단을 기만하고 ‘의대생 구제 프레임’으로 몰아넣기 위한 간교한 정치 공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같은 혼란에서 벗어나 상황을 냉정히 파악하고 정확하고 일사분란한 행보를 보일 필요가 있다. 솔직히 의사협회와 전공의단체가 의대생들을 구제하라고 나서는 것은 유리한 판에서 벗어나 운동권 집단을 위한 판으로 걸음을 옴기는 것과 같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의대생들은 의사국가시험을 응시하는 것이 상책이다. 물론 싸움이라는 것은 1년을 희생할 각오를 하고 정말 최악의 경우는 1년을 정말로 지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긴하다. 하지만 명확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얻을 수 있는 순간 재빨리 목표물을 손에 넣고 일사분란하게 전쟁에서 발을 뺄 수 있어야한다. 그것이 생존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3000명의 의사들이 배출되지 않는 최악의 경우에도 정부는 손상을 입겠지만 그것은 상중하에서 하책이라는 것을 인지해야한다. 필자는 의대생 단체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현실적인 목표로 한약 안전에 대한 공개 논의체를 설정하시라. 의사단체가 설정한 의료 4대악은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첩약급여화 그리고 원격의료이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문제는 현재 일단 판정승을 거두었으니 첩약급여화에 대한 여론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출구전략이 될 것이다. 첩약급여에 대한 과학적 공개 논의를 얻어내고 그 대가로 거부 방침을 풀고 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하면 의대생들은 의사 자격증도 얻을 수 있고 첩약급여를 공격할 무기도 손에 쥐게 된다. 공개 논쟁에서 한의계가 절대로 과학적 설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러한 제안은 정부를 상대로 한 가지를 더 얻어내고 의대생들은 대가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일석 이조의 전략이 될 것이다. 정부에 정치적 손실을 주는 것은 일시적이다. 운동권 진영은 아주 탄탄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국평오의 힘이다. 일시적 타격을 위해서 수 천 명의 1년을 지불하는 것은 그다지 이득이 되지 못한다. 정부에 일시적 타격을 면하는 대신 1년 지불도 회피하고 한의계와의 일전의 기회도 얻는다면 이른바 일석 이조가 될 것이다. 부디 이 투쟁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신들의 1년을 위해서라도 현명하고 교묘한 전략을 수립하기를 업드려 부탁하는 바이다.

관련글 : 작은 승리가 두려운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