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애 의원의 글

더불어민주당 한영애 의원은 백기 투항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 중앙 무대에서 활동하는 정치인이 공적인 경로를 이용해 직접 언급을 했을 정도면 굉장히 많은 지지자, 유력 인사들이 의사협회와의 협약을 백기투항이나 완전한 패배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친 운동권 성향의 매체는 정부의 용단으로 포장하며 쾌거라고 치켜올리지만 정작 인터넷 공간에서는 초상 분위기이다. 그런데 인터넷 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도 똑같은 인식이 공유되고 있음을 한 의원이 밝힌 것이다. 그 글은 이러한 지지자들에게 바치는 사과와 변명 그리고 새로운 각오다.

필자는 자유주의 성향을 추구하는 언론인이므로 비슷한 정치 성향의 사람들과 페이스북 계정이 연결되어있다. 한영애 의원의 글은 즉시 기사화되었고 의사들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그 기사를 공유하며 화를내고 있다. 등에 비수를 맞은 것은 의사들인데 좌파 정치인이 가증스럽게도 “백기투항”을 언급한다는 분위기이다. 그럴만도 하다. 운동권 정부의 고약한 정치에 신물이 난 사람들은 당장 정권을 끝장을 내고 싶었을테니 말이다. 운동권 정부의 노예 만들기를 당한 의사들 역시 정치적으로 각성하며 비슷한 욕구를 가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긴 싸움이 맞다. 무오류성을 신봉하는 운동권이 모든 것을 중단하겠다거나 상대와 협의해서 진행하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늑대가 갑자기 몸을 뒤집어 배를 보여준 것과 다름이 없는 행동이다. 필시 운동권 진영은 의사들의 투쟁이 장기화 되면 장기화 될 수록 자신들에 쏟아지는 비난이 더 커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의사에게 가해지는 원망보다도 더 말이다. 어쩌면 정신 나간 사람 마냥 남의 일인 거 처럼 대중이 듣기 좋은 소리나 늘어놓은 국민의 힘이 어부지리를 얻고 있기 때문에 다급해졌을 수도 있다. 물론 아주 작은 승리일 뿐이다. 산적한 사안에서 이 까짓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욕심이다. 끝장을 봤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전쟁에 비유해보자. 과연 적장의 목을 벨 수 있었을까? 상대는 거대한 정치세력이다. 운동권 세력이라는 괴물이다. 온갖 권모술수와 비겁한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한 힘으로 압박하는게 특기이던 구보수 세력을 박살내 버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강하기도 하면서 잔인하고 교활하다. 그리고 체급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필즉사생의 태도로 부딪치면 서로 피해를 입겠지만 의사들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는 시점에 운동권 진영은 손톱 하나가 빠지는 정도일 것이다. 운동권 정권이 그 손톱이 아까워서 뒤로 물러나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 그렇게 잘못이라고 보긴 힘든다.

이번 투쟁으로 의사 집단은 각성했다. 그저 동종업계 종사자에서 운명 공동체가 된 것이다. 의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시 쏟아질 의료개악에 맞서 언제든 싸울 수 있는 투쟁력이다. 첩약급여화는 착착 진행되고 있고 정원확대와 공공의대 패키지 역시 언제든지 다시 밀어 붙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의사 단체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이 작은 승리는 언제든 의사들이 반발했을 때 “정부가 이전에도 인정하고서 또 의료계를 정치적으로 수술하려 한다.”는 프레임을 제공해 줄 것이다. 전투 태세를 갖춰 본 경험은 두고두고 다시 투쟁에 나설 동력을 줄 것이다. 오직 걱정인 것은 분열이다.

의사집단은 각성한 김에 정치세력화에 나서야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정치와 관여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이미 정치의 한복판에 선 상황이다. 구성원 모두가 정치인이 될 필요는 없다. 대표자들이 그래서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걱정인 것은 분열로 인해서 모든 것이 엎어질 것 같다는 것이다. 그것은 투쟁 노하우의 단절과 짧은 휴식기 뒤에 올 새로운 저항의 동력을 모두 잃는 것이 될 것이다. 최대집 회장은 거칠어 보이는 외모와 그에 걸맞는 거칠고 무례한 태도로 그다지 호감을 얻지 못하는 인사인 것은 맞다. 그리고 이러한 봉합은 본래 대표가 온갖 불만을 감안해야 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불만이 진정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연 더 나은 투쟁가, 정치인이 나올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정무적 감각을 갖춘 인물은 어떤 집단에서나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이 분열이 운동권 진영이 노린 것이 아닐까 계속 불안한 이유이다. 강경파의 득세 그것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