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승리가 두려운 이유

본디 협상장에 들어간 사람은 엄청난 압박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을 결투나 전투로 비유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상대는 운동권이다. 운동권은 일반인이 아니다. 그들은 본디 악랄하고 평생을 남을 찍어 누르는 것만 고민하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폭탄을 떨굴 준비를 하고 있다. 고발 면허 박탈 모든 것을 고려하고 있고 그 카드를 보여준지 오래다. 아무리 정치 권력이라도 그렇게 까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운동권은 다르다. 그들은 무오류의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를 지배하고 부수는 것이 목적인 부류다. 그런 사람들이 실행에 옴기지 않는 것은 그 다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너 죽고 나 죽자는 꽤 매력적인 선택지이다. 왜냐면 보통 내가 죽는게 무슨 사안인지 잘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의 고통에 주목하는게 인간의 속성이다. 그래서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통쾌하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상대는 거대한 정치 권력이고 의사들은 일개 의사다. 모든 일이 벌어져도 정치 권력은 팔 하나를 잃는데에서 끝난다. 상대방은 모두를 잃는다 해도 발이다. 운동권 사람들은 만약 불가피하다면 의사들을 보두 총살을 하고도 남을 집단이다. 그래도 운동권 성향의 지지자들 40%는 굳건할 것이다. 저들은 근본이 사회주의에 있기 때문이다. 과연 장렬한 전멸 이후에도 지금과 같은 기분일지 자문해 보자.

협상 과정에서 저들의 악랄한 수법은 다 노출됬다. 고소고발로 협박을 일삼고 협상 내용을 중간에 뿌려버렸다. 그 과정에서 보통은 미안하다고 할 것을 고의는 아니었다고 뻔뻔하게 떠드는 것이 운동권 사람들의 무서운 점이다. 정치인들은 협상에서 무수한 양보를 요구한다. 이 단어 하나를 양보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인데 왜 양보하지 않으냐며 몰아 세운다. 그리고 양보하지 않으면 협상을 걷어차서 두려워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겠다고 공언한다. 원하는 것을 줄건데 단어 하나에 집착해서 걷어찬 것은 당신들이라는 것이다. 모든 협상이 그렇다. 그리고 그 정도 양보를 하지 않기도 힘들다.

의사협회는 승리한 것이다. 무오류성을 믿는 운동권으로서는 추진하던 일을 전면 멈추고 의논후 재개하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무릅을 꿇은 것이다. 말 몇 마디를 완화한 것은 그저 알량한 자존심 문제였을 뿐이다. 반발하는 의사들은 정치세력이 뒷통수를 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맞다. 확실히 운동권 진영과 맞서 싸우며 제대로 체득한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일 뿐이다. 그렇다고 완전한 승리를 받아낼 순 없다. 오히려 되묻고 싶다. 저들이 우스운가? 어차피 완벽하게 흡족한 협정문을 썼어도 운동권 진영은 다시 추진할 것이다.

사실 의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같은 수준으로 반응할 힘이다. 의사라는 직업 특성상 “다시 한 번”이라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불안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전진만 외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게 정치이기 때문이다. 투쟁대오가 가장 두려워할 것은 지금의 분열이다. 어쩌면 운동권 진영의 양보가 이러한 분열을 예상했기 때문일 수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쏟아지는 불평을 보면서 두려운 기분이 든다. 반발을 넘어서 와해가 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혹시라도 그나마 정치 경험이 있는 수장을 끌어내리고 열혈 백면 서생을 장수로 세운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