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운동권이 손 대면 모두 파국일까?

운동권 집단이 손을 댄 분야 마다 제대로 된 결과인 것이 없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어물쩡 넘어갔지만 소득주도성장은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갉아먹기만 했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킨다는 정책은 실행할 때 마다 폭등을 야기했다. 기어코 시장 자체를 망가뜨리고 나서야 가격이 안정됬다. 과연 이것이 시장을 안정시킨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검찰을 개혁한다니 권력의 꼭두각시를 만드는 작업을 해대고 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소신 있는 정치인들이 추구한 민주 국가를 한큐에 되돌리는 중이다. 지금은 의료개혁을 한다면서 뻔히 미래에 의료 질을 떨구는 짓을 하겠다고한다. 그러고 보니 DJ정권 시절 의약분업은 그 목적을 달성했는가? 아무도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왜 운동권은 손을 대는 것 마다 실패할까? 그것은 운동권 진영의 깊숙한 속내를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중요한 부분이다. 운동권은 사실 실패한 적이 없다. 운동권 집단이 원하는 것은 항상 ‘대상의 파멸’이다. 약자 프레임에 사로잡힌 이 전투적인 집단은 끊임 없이 싸우고 망가뜨릴 대상을 찾는다. 그리고 기어코 망가뜨리고 만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정의로운 약자인 운동권이 처절한 투쟁을 거쳐 악한 누군가를 물리쳤다는 꿈을 꾼다. 의료계가 휘청거리고 검찰이 권력을 감히 건들지 못하게 되는 것 모두가 무소불위의 최강 세력 운동권의 행패이자 폭주지만 그들의 눈에는 정의의 승리다. 집값이 폭주했다고 실패가 아니다. 유주택자들에게 세금 폭탄을 떨궜기에 성공이다.

지금 그들은 의료계라는 괴물을 눈 앞에 둔 다윗이다. 의료 서비스가 망가지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의사들을 주저앉히는 것이 목적이지 국민들에게 더 나은 의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항상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누군가를 파멸로 모는 것이고 두 번 째가 세상을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파멸을 야기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이 나아지는 것은 어느 집단을 파멸로 몰면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최선을 다했는데 자신들이 무릅꿇린 대상이 저항해서 얻어내지 못한 것 뿐이지 자신들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운동권의 이념을 파고 들면 정치사상이 있지 않다. 누군가를 파멸로 몰고 즐거워하는 순수한 악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어느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평범한 한국인이다. 어느 문빠 원자력 전문가는 대통령의 오판에 피눈물을 흘리고 실업자가 됬지만 조국은 억울하게 당했고 의료개혁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파업하는 의사들은 모두 구속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어느 문빠 의사는 의료개악에 기가 차서 욕설이 튀어나오지만 원전은 없애야한다고 생각하고 조국은 억울하게 당했으며 검찰을 박살내서 정치 권력이 완전히 장악하는게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절반 이상의 사람들의 현실이다. 이들의 공통된 욕망이 하나로 연결된 것이 운동권이다. 이렇게 서로를 파멸로 몰면서 여전히 하나의 대오를 유지하고 그렇게 서로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며 나아간다. 이것이 ‘활동가’ 혹은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는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