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때리기 여념 없는 보수 언론

이른바 보수 언론이라고 불리는 우파 성향 매체들이 의사들을 때리는데에 여념이 없다. 국가가 쿠바 모델을 위해서 의료 제도를 대대적으로 수술하는데에 있어서 의사협회와 전공의 단체 등 의사 조직체들이 반발하는데 있어서 시종일관 비난을 쏟아내는 중이다. 의사 단체들 주장의 요지는 지금의 의료서비스 품질이 절대 유지 되지 않을 것이며 급락한 질적 하락을 겪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 언론은 이러한 논리에는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

보수 언론이 의사들을 향해 쏟아내는 칼날 같은 비판의 논리는 단순하다. “환자가 있는데 어떻게 쉬느냐!”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언론인들은 환자들의 아픔을 직접 보듬는데 조금의 기여도 한 적이 없는 직렬이라는 것이다. 환자를 보살피고 치료하고 그들에게 감정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의사라는 직렬이다. 이들이 환자를 뒤로 하고 거리로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이해가 조금도 없다. 기자가 “펜대나 굴린다.”는 비판을 받을 때 그렇게 억울해 하는 것이 기자들이었지만 정작 그런 힐난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반성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의사들은 봉사하는 직업이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 의사들은 코로나 때문에 극한의 상태로 일하는 중이다. 그런데 운동권 사람들이 의사들이 그로기 상태에 빠진 상황을 노려서 등에 칼을 꽂았다. 이건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밥그릇을 밟아 부쉈다거나 등에 칼을 꽂은 상황이다. 당연히 어떠한 상황이라도 사람이 반발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인 것이다. 하지만 보수 언론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아픈 사람이 존재하는 동안에 너희는 반발할 자격이 없다!” 이것이 보수 언론의 시각이다. 상황이 어떻든 의사들이 현장을 떠나서 불안감을 주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보수 언론은 의사들이 몰린 상황이 절벽 끝인지 아닌지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의사들이 현장에 붙어서 자신들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등에 칼이 꽂히던 밥그릇이 박살나던 자신들이 필요할 때 의사들이 필요한 위치에 있는 것만 중요한 것이다. 전쟁 영화를 보다보면 비슷한 캐릭터가 있다. 국가를 지켜야하는데 어디 보급 타령을 하느냐고 소리치면서 돌격만 외치는 그런 현장 지휘관 말이다. 사회 구조상 언론은 지휘관의 위치에 있다. 그런데 자유 진영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군인들이 식량 타령을 하느냐며 본보기로 총을 쏘는 그런 지휘관을 가진 상황이다.

지휘관이 덕장일 필요는 없지만 병사를 지나치게 이해 못한다면 전시에 총살 감이다. 패튼 장군은 맹장이고 훌륭한 지휘관이었지만 당시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PTSD에 잘 몰랐던 상태에서 병사를 욕보였다는 이유로 좌천되었으며 그 논의 과정에서 극단적인 주장도 있었다고한다. 의료계는 전통적으로 사회주의 진영에서 부루주아지라며 경멸받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우파 진영에 우호적이지 않다. 왜냐면 괴상한 사회주의 망상을 의료에 적용할 때 마다 보수 언론은 사이코패스 마냥 공감능력 없이 의사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만 원했기 때문이다. 패튼 처럼 경질되어야 할 지휘관이 아닐까?

의사들은 역으로 이런 제안을 해야한다. 언론사로 등록된 모든 회사는 막내사원 부터 대표 까지 최저임금만 받는 법안을 입안하자고 말이다. 그리고 불평하는 기자들에게 이런 메일을 보내자. “지금 나라가 위긴데 네 월급이 중요하냐?”, “고통 받는 국민들을 위해서 노트북이나 두드려라!”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것도 좋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