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충과 500충 그리고 결혼

요즘 대중화된 페미니즘 주류에서는 저속한 담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300충과 500충이라는 용어다. 300충은 남성 전반에 대한 비하 표현으로 남성이라면 최소 세후 300만원이 넘는 소득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당연히 세후 300을 벌어도 대접 받지 못한다. 그 미만은 인간대접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세후300을 달성한다고 평가해 준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하층으로 분류해서 조롱한다.

이러한 인식은 결혼 적령자들을 타깃으로 한층 진화한다. 결혼 상대자가 세후 500만원을 벌지 못하면 결혼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세후300의 소득이 남성인 인간의 최저 기준이기 때문에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세후 500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300 미만은 사람 취급할 필요도 없고 최저 인간이 300을 버니 가정을 꾸리고자 노력을 한다면 500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500 미만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으니 가정을 꾸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럴듯한 계산이 나온다. 맞벌이로 여성의 소득은 여성의 용돈으로 쓰여야하니 논외로하고 남성의 소득으로 생활을 해야하는데 양가 부모님께 용돈 그리고 식사는 대부분 외식 그리고 차량 두 대를 유지해야하고 주기적으로 명품을 구입해야하니 500으로는 오히려 부족하다며 세후500의 소득도 배우자로서의 최저 기준이며 그렇기 때문에 500충이라며 남편으로서 최저 기준을 간신히 획득한 자로 얕잡아 부르는 것이다. 주거는 당연히 시댁이 책임지는 걸로 계산한다.

이렇게 시작한 결혼 담론은 기가막힌 프레임을 구축한다. 세후500의 소득 서울 중심부 아파트 소유자가 기준으로 언급되고 있다. 서울 진입은 불가능하니 이미 서울에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융자가 있으면 안된다. 융자 비율은 논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융자를 남기고 결혼하면 부부가 함께 빚을 갚게 되서 불가하다. 물론 상기된 것 처럼 여성의 소득은 여성이 다 써야 하기 때문에 애초에 융자 상환 동원을 가정하지 않는다. 남성의 소득이 공동소유이기 때문에 함께 갚는다는 개념이 성립하는 것이다.

거기에 옵션 처럼 더 붙는 조건도 흥미롭다. 적어도 35살 까지는 결혼하지 말라는 조언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연하나 서너살 연상이어야한다. 그러면서 고가 아파트에 따라 붙는 혼수 요구를 강하게 비난한다. 그래서 10억 초과 신축 아파트와 2~3천 정도의 세간살이가 합리적인 결합이다. 그 나마도 이른바 혼수를 남성이 다 부담하면 ‘개념남’이라면서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결혼은 망혼이다.

이 극도의 이기적인 담론이 성립하는 근거는 여성은 돈을 못벌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임금차별을 당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등한 기여가 불가능하고 나아가 피해자이기 때문에 가해자인 남성이 여성의 몇 배의 수입을 창출하고 가계와 주거를 몽땅 부담하는 것이 여성이 당하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아주 조금 만회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자신들이 원하는 결혼 적령기의 남성의 근무지에 동일임금을 받는 여성 동료의 존재는 생각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담론에 따르는 담론으로 왜 남성들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면 연인을 버리고 동료 중에서 결혼 상대를 찾느냐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이 곁가지 담론은 결국 한남 프레임으로 귀결되고 자기 자신의 조건을 계산해 보지는 않는다. 정작 자신들은 끊임 없이 조건을 제시하고 비교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결혼 담론을 이끄는 사람들 중엔 기혼자들도 적지 않다. “결혼해 보니까”, “주변을 보니까” 이러면서 조언을 해주는 광경을 가끔 볼 수 있다.

우스운 것은 이 기혼자들의 의견이라는 것이 자신의 결혼생활에서 겪은 고충은 반영된 것이지만 자신들이 제시하는 청사진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부분이다. 자신들이 권유하는 형태의 결혼이 현실성이 있는지 실제로 덜 고통스러운지 아무도 경험해 보지 않아서 검증되지 않는다. 하지만 막연히 자기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에 의지하여 조언을 한다. 그리고 수용하는 사람들은 결혼 선배라며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자체로 얼마나 위태로운 현상인가?

가끔은 여초 집단의 기혼자들이 자신들의 결혼 생활에 불만이 많아서 다른 여성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거나 아니면 어느 순간에 낭패에 빠지게끔 몰아넣는 것인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이 말을 따라 낭패를 보는 것도 자기 선택에 대한 대가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는 일부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이러한 담론이 강력한 프레임으로 우리 사회 전면에 나서지 않길 바랄 뿐이다. 자기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남성이던 여성이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