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부장판사 글 전문

나는 문재인 정권의 출범에 즈음하여 새로운 정권의 성공을 희망하였고, 문 대통령이 표방한 ‘사람이 먼저이다’라는 기치에 걸 맞는 새로운 한국사회의 탄생을 기원하였다.

그러나 약 3년여 즈음한 현재에 이르러, 그동안 내 자신이 천명해 온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의 의사를 철회하기로 심사숙고 끝에 결심하였고,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평범한 국민들을 향하여 그간에 이어 온 일련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며, 우리 자신이 민주시민으로서의 합리적인 이성을 토대로 삼아 냉철한 판단 하에 국가의 장래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점을 자각하기를 희망한다.

이른바 권력의 핵심이 저지른 ‘조국 사태’에 대하여, 그것이 합리적인 이성에 입각하여 숙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권 비리’가 아니라고 강변하거나, 국정을 운영하는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마음의 빚’ 운운하면서 조국 전 교수가 ‘어둠의 권력’을 계속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권력의 메커니즘이 작동시키도록 방조하는 행위가, 과연 민주공화정을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하여 얼마나 큰 해악이 되는지 한번쯤이라도 생각해 보았는지 의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모르는 가운데 그러한 언행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국정수반으로서는 문제가 있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 대통령 스스로 그러한 비헌법적인 상황을 알면서도 그러한 언행을 감히 하였더라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두 가지 모두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행동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지고 있는 국정수반자의 지위로는 해서는 안 되는 언행이었고,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국민들은 느끼고 있다. 한 마디로, 대통령 자신이 대한민국의 국민들 앞에 ‘조국 민정수석’이라는 한 개인을 놓아둔 셈이다. 이것은 스스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를 포기한 것에 다름이 아니다.


몇 개월간에 이어 온 각계각층의 여러 가지 비판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자신의 위 발언을 철회하거나 사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조국 전 교수( 민정수석이라는 용어는 언급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는 정권의 창출 과정에서 ‘교수’라는 이름으로 암약하여 왔기 때문이다)는 여전히 ‘어둠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진보 논객인 진중권 씨는 근래에 문재인 정권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곰곰이 되씹어보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보기보다는 “권력 설계자인 조국 교수와 그가 구축이 된 ‘문빠’라는 집단”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내 자신이 느끼는 바에 의하여, 한국사회의 여러 조직들의 움직임과 이른바 ‘학생운동권’을 축으로 한 파생적인 권력조직의 생성화 현상을 추적해보면, 한국사회는 ‘비정상적인 점(占)조직의 구축’에 의하여 공식적인 민주주의 사회구조를 은밀하게 잠탈 및 유린하고 있다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이라고 파악하기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일반대중에게 인기 있는 문화계의 유명인사들이나 영화작품, 드라마작품 등을 통하여 특정한 방향의 정치적인 적개심을 생성하여 왔고, 누군가 지식인이 문제를 삼으면 그것은 그저 ‘픽션(fiction, 허구)’이라고 발뺌을 하는 식으로 지속하여 온 것이 오랫동안 이루어져 온 책략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는 사이에 일반대중의 인식체계는 점진적으로 큰 변화를 이루어냈고, 그 방향성을 한 마디로 평하자면 ‘현행체계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으로 요약된다.

이런 상황을 되새겨볼 때, 그저 세상의 모든 조직이 ‘비선에 의한 점조직’이 없이 정상적이며 공식적인 원리에 의하여 작동되리라고 믿는 엘리트 모범생들에게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점에 대하여는, 그러한 엘리트 모범생들 스스로에게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한 큰 책임이 존재한다. 그러나 엘리트 모범생들이 ‘차악(次惡)’이라면 비선조직에 의한 점조직은 ‘최악(最惡)’이다. 더 나아가 ‘거악(巨嶽)’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논하지 않겠다. 그것은 국면이 바뀌었을 때 다시 논할 문제이다. 요컨대, 문빠들이 생성해낸 ‘차악론(次惡論)’은 오히려 역행된 거짓 이론이라고 보는 것이 내 자신의 견해이고,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에 대하여 추호의 의심도 없다)

이렇게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음모론적인 설계를 감행하고 실천한 장본인이 ‘조국 교수’라고 보는 것이 나의 견해이고, 각계각층의 비주류에 속하는 엘리트들의 2인자 계층은 그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달콤한 자리 제안( 중국의 공자가 제안한 논어에서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경구를 되새겨볼 대목이다)’에 현혹되어 뒷거래로서의 ‘자리 거래’를 암암리에 감행하면서 수많은 민주주의자와 정의론자들을 그저 ‘총알받이’로 희생시켜 왔던 것이 내가 파악하는 진실이다.

나는 사법농단의 사태가 현실화된 이후에 단한 번도 방송사나 신문사 등의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다. 그것은 커다란 계획을 세운 설계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은 가운데 내 자신이 한낱 소모품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다. 나는 그들과 적정한 선에서 타협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만약 그들이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방향성의 전부라고 한다면 타협하고 자시고 할 문제도 없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강남’에 살면서 ‘진보’를 꿈꾸며 실천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강남좌파’라는 용어는 존재할 수 있는 말일까? 나는 동료법관들에게 항상 “엘리트들이여, 온 세상에 흩어져서 살라!‘라고 말한다. 서민들이 강남으로 올 것이 아니라, 엘리트들이 흩어져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세상이 좀 더 나아진다. 조국 교수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나는 이 점을 곰곰이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그저 자신들의 출세를 위하여 의로운 국민들을 총알받이로 희생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자신의 견해이다.


자신들이 ‘진보’라면 마땅히 일상생활 속에서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섞이면서 살아가야 한다. 자기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무슨 진보며 정의를 논할 수 있는 것일까“

진중권 전 교수가 오랫동안 하여 온 여러 가지 사실적시와 진실의 논증은 그것들을 설파하여 왔던 것이고, 문재인 대통령… 보다 엄밀하게는 문재인 대통령을 바지사장으로 앞세운 조국 전 교수와 그로 인한 친위대인 ‘문빠’라는 집단은 진중권 전 교수를 공격하려고 애쓰고 있는 형국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발언했던 유명한 경구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어떤 주체가 소수의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다. 그리고 어떤 주체가 다수의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주체가 되었든지 간에 대다수의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 있는 것은 가능하지 않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볼 때, 기만에 의한 포퓰리즘의 역사는 5~6년을 넘기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위 기간을 넘긴 적은 없다.
고 신해철 씨나 이정렬 변호사 등 ‘문빠’의 대표주자들은 지난 몇 년간 문빠를 ‘철기군’에 비유하곤 하였다. 영국에서 있었던 청교도혁명에서 크롬웰의 독재정치에 동원된 철기군의 행태는 대한민국의 현 시점에서 ‘문빠’의 행태에 많은 부분에서 중첩되곤 한다. ‘맹신적인 구호’, ‘충성에 대한 후사’, ‘독재’…,, 그것은 의회 정치라는 비정상적인 행태( 이것은 위원회 정치를 포함하는 의미이다. 즉, 헌법 및 법률상으로 공식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주체가 아닌 회의체 형태의 다른 임의의 주체가 집권 및 집행을 함으로써 법적인 책임의 소재를 회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법적인 근거조차 없다. 내가 의아한 것은 이러한 의회정치, 회의체정치에 대하여 그토록 많은 국회의원들이 ‘이것이 법치주의 위배’라는 발언을 단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당선’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더니 빈 말은 아닌 것 같다. 국회의원들이 의회입법권을 되찾고, 대한민국의 행정부가 스스로의 행정권을 되찾기를 희망한다. ‘위원회’라는 정체불명의 주체에게 헌법권력을 함부로 넘겨주지 말고…,, 그것이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이다.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은 뭐하고 있는가? )를 지렛대로 삼아 소수의 사람들이 다수의 사람들을 향하여 공포정치에 몰아넣고 국정을 장악할 수 있는 일종의 노하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의 역사가들은 이러한 현상들을 민주주의로 보지 않아 왔다. 비록 영국의 청교도 혁명 당시에 공화파가 왕당파를 무찌르는 과정에서 크롬웰이라는 독재 정치인이 ‘철기군’이라는 소수의 훈련된 친위부대를 동원하여 공포정치를 일삼았고, 영국사회를 5~6년 동안 ‘편가르기’에 의한 갈등사회로 몰아붙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자율적인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민의식이 존재한 가운데 왕당파에 저항하였던 것이 아니라, ‘상명하달식( = 지시체계)에 입각한 종교전쟁’에 의하여 종속적인 의사결정 하에 전개된 역사이기 때문에, 이것을 참된 의미에서의 근대시민혁명의 범주에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저 ‘맹신적인 포퓰리즘적인 종교전쟁’이라는 것이 역사학계의 평가이다.

내가 이상에서 길게 설명하였는데,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의문이다. 오랫동안 관찰하여 보았는데, 이것인지 저것인지 여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그저 영국의 청교도혁명 당시에 크롬웰이 독재를 감행한 종교전쟁을 통해서라도 ‘왕당파’를 무찌르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채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유일한 ‘선(善)’이라고 간주를 하고 있다면, 이것은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은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주장하고자 한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그런 방식의 생각이었고, 그런 방식의 발언이었으며, 그런 방식의 행동이었다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교육받은 내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판단된다( 사후적인 어떤 감성적인 이벤트로서 이러한 요구를 회피하는 것에 대하여도 동의하지 않는다. 이미 해명할 시간은 충분하게 주어져 있었다. 국민들에 대하여 시민의식에 입각한 합리적인 자각을 촉구한다).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대한민국의 국정수반으로서,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수호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므로, 내 자신 한 명의 국민으로써 본인의 의지와 능력이 그 정도의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면 대통령으로써의 직을 하야하기를 요구한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헤어날 수 없는 늪으로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