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위치

당연히 재난지원금을 받을줄 알았다가 소득상위 19.99%에 해당되어 대상자에서 제외된 지인이 있다. 나보고 항상 위만 바라보느라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잊는다고 지적한 그였지만, 그 역시도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올바로 파악하는데는 실패했다. 19%나 21%나 한끗 차이지만 그 정도는 5명 중에 1명은 되는 명백한 상위권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배부른 소리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사회에는 ‘우리’의 눈은 물론 상상에서조차 벗어난 저소득층이 매우 많이 존재한다. 어쨌든 기생충의 송강호 가족도 반지하에서나마 집이 있고 애를 낳아 키울 정도는 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나의 행복도 변화로 아프리카 인구증감을 측정할 수 없듯이, 내 아래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는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냥 현실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팩트풀니스>라는 책은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부정확하게 추정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유니세프의 과장과 달리 세상 평균은 우리가 짐작하는 절망보다는 훨씬 높았다. 동시에 선진국에서는 우리의 눈높이보다 현실평균이 더 낮을 것이다. 한편 클럽에 가면 모두가 키 180cm가 넘고, 결혼정보회사 성혼사례를 보면 학력은 최소 SKY에 자산 100억 이하인 집안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래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심지어 더 작은 세상이지도 않다. 굳이 안 보니까 없는 것처럼 생각이 되는 거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이재용만 탐욕스러운게 아니고 못 가진 사람이 더욱 약자를 차별하고 괄시한다. 적어도 이재용은 감방 생활이라도 해 봐서 가장 바닥을 안다.

민주당은 어떤 분야에서든 상위 20% 소수와 하위 80% 다수를 갈라치기해 다수가 소수를 증오하고 학살하도록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런데 우스운 점은, 상위 20%에 너끈하게 들어가는 이들조차도 자신이 다수파인줄 알고 먼저 죽창을 집어든다는 것이다. 일할 능력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잘 사는 사람들이 도와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를 듣고, 팔다리 멀쩡하게 달리고 밤을 새도 쌩쌩한 20대들이 지원금을 타 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80대와 90대는 아예 존재하지 않아 고려대상에도 들어가지 않는 인구다. 20대가 도움을 받으면 80대는 누가 먹여 살리는데?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고글의 해상도는 매우 낮다. 수능 1등급인 상위 4%는 생각보다 그 과목을 잘하는게 아니다. 서울대생간의 학력과 지능 차이도 매우 크다. 똑똑함에도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흔히 표현하는 해상도는 대기업 직원도 1%, 전문직도 1%, 연예인도 1%, 심지어 재벌도 1%다. 기초생활수급자와 탑급 연예인의 재력 차이보다, 탑급 딴따라와 재벌가 상속자의 차이가 훨씬 크다. 진짜 상위권은, 다같이 바닥에서 빌빌 기는 서민들이 아파트라는 닭장의 위치 차이로 서로를 구분하는 감각을 결코 알지 못한다. 상위 0.01%와 0.001%의 차이는 상위 90%(하위 10%)와 상위 10%의 차이보다 훨씬 훨씬 크다. 그렇게 이질적인 집단을 상위 1%란 후려치기로 묶어놓고 적대시하는 정책이 얼마나 옳을 것인가. 대기업 맞벌이를 하면 상위 5%안에 든다. 통계가 그렇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은 약간 숨통이 트이는 것이지 결코 어디가서 떵떵거리며 여유롭게 사는 수준이 될 수 없다. 보다 좋은 음식, 좋은 차, 좋은 집을 누릴 뿐이다. 하지만 민주당에 의해 그들은 재벌과 같은 상위권으로 일단 무조건 ‘잘 사니까 내놔’가 되는 것이다.

잘못된 현실인식으로 출발한 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이재용이 그들만의 궁궐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좁듯이, 서민들은 서민 나름대로 임대주택에 갇혀 세상을 보는 눈이 마찬가지로 좁다. 차라리 궁궐은 높아서 멀리 내려다보이기라도 하지. 죽창을 든 상당수는 그들이 찔릴 대상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 상위 49%는 그보다 더 많은 하위 51%의 죽창에 당할 운명이다.

그렇게 당해도 싼 적폐들을 세간에서는 귀족이라고 하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