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문화는 재앙

사회주의 문화권에서는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누군가를 희생시킬 생각 부터 한다. 공산정권이 붕괴된 국가나 혹은 지금은 자본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젊은 시절 공산주의자였던 노인들에게서 보이는 경향이다. 전체를 위해 구성원을 희생시키는 것이 당연한 사회주의 이념의 영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당연해지는 순간 난관이 목도될 때 마다 사회 구성원들은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자신만 아니면 되기 때문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한다.”던 과거 유교 문화권이 그랬듯이 말이다.

마오쩌둥의 지도 하의 중국 공산당은 노동력이 없는 노인, 환자들에게 국영상점 이용을 금지 시켰다. 이는 궁극적으로 이들의 아사를 의미한다. 자신들이 야기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약자들을 희생시키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더 나은 주거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고 그저 낙후된 주거환경을 유지하라는 메세지를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조류독감에 대한 기가 막힌 해결책이라면서 살처리 영역을 반경 500m에서 3km로 늘렸다. 면적을 계산하면 36배 넓이에서 살처분이 벌어지는 것이다. 결국 산란닭들이 대거 살처분 당하면서 달걀 가격이 미친 듯이 치솟아 서민들의 삶이 힘들어졌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코로나 방역 방법도 도산을 하던 자살을 하던 무조건 사회를 멈추는 방법만 고집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멈춰도 부유한 국가의 공무원들은 삶에 아무 지장이 없으니 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너무 선호해서 굳이 백신을 살 생각도 없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만 하면 감염자가 내려가는데 왜 백신이 필요한지 이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계급주의에 젖어 있는 이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 자신들은 해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다. 이들은 수 없이 도산하고 해고되어 자살한 자살자의 더미 위에 올라서서 자신들이 너무나 현명해서 이 사람들을 도태 시키고 이 사회를 구했다고 자화자찬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굳이 증명할 필요도 없이 이 정부의 모든 정책 방향이 일관되게 이 방향으로 향한다. 이것이 이들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들여오지도 못하고 있지만 여론이 들끓고 온갖 욕을 먹으니 부랴부랴 이미 계약이 밀려 있는 백신 생산 기업을 찾아다니고 “확보했다” 같은 애매한 워딩으로라도 면피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결국 저항이 생존을 가져다 주는 마지막 동아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