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교 보성일세

지난 21일 오전 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보성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도와달라는 글을 올리는 일이 생겼다. 학생의 이야기는 이렇다. 수업시간에 연극을 하게 되는데 연극 대본에서 가해자를 여성으로 피해자를 남성으로 표현한 것을 남녀 성별을 바꾸어야한다고 교사가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업 때 마다 이를 강요하고 이를 몇 번이나 따르지 않자 학생생활기록부를 입에 올렸다는 것이다. 학생은 이를 협박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 의도를 떠나서 저런 발언이 정말 있었다면 이것은 협박이다. 공개된 대화 속에서 교사가 주장하는 것 처럼 피해자와 가해자의 성별이 주제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생기부는 기록 권한이 있는 교사의 입에 언급되는 순간 엄밀하게 따지자면 학생에게는 협박이 아닐 수가 없다. 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힘을 가진 교사의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모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이 떠오른다. 국민의 정부 시절이던 그 때는 교총과 전교조가 갈등이 심했던 시기이다. 어느날 지구과학 시간에 언제나 처럼 은사님께서는 옆구리에 일간지를 끼고 들어오셔는 굉장히 울적해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싶고 그러면 홀가분할 것 같다고 고백하시면서 하지만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는 시기에 교사가 생각을 밝히면 그것이 그대로 자리잡을 것이라며 그것은 당신의 가치관에도 위배되고 보성의 교육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당시의 상황을 죽 사실만 나열하시면서 나중에 기준이라는 것이 정립되면 오늘 이 상황을 떠올리며 생각해 달라고만 하셨다. 그리고 앞 서 말씀하신 정신은 배웠으면 한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필자는 정말로 그걸 금과옥조 처럼 새겼다. 상대가 십대라는 것을 알았으며 가치관을 정한 경우가 아니었을 경우 굳이 필자의 의견을 묻는 질문을 받았을 때 여러 의견을 나열하고 그 중 내 의견이 몇 번 째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순전히 이 십 년 전 그 수업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항상 스승 보다 제자가 스승이 가르치는 가치관을 더 잘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십 여 년 전 새로 부임하신 586 선생님께서는 마치 정치인 유시민이 자유주의를 부르짓는 것 처럼 자유에 대해서 강조하셨지만 학교에서도 그리고 그 분의 대학 시절에 대한 회상에서도 그 분은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계셨다. 물론 인격 적으로는 훌륭한 분이었다. 권위주의 시대를 사셨던 선생님께 자유는 이론이었고 그 제자들에 이르러서야 삶이 된 것이다. 현재 교육계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의 페미니즘이 피상적이고 정말 남녀평등을 체화한 학생들이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교사들에 반발하고 반박하는 분위기도 같은 원리에서다. 표현의 자유가 있고 아무리 사소한 부분이라도 교사라는 이유로 그리고 상대가 어린 제자란 이유로 강요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필자의 시절에는 그건 가치일 뿐인 것으로 여겨지며 어기는 것이 상식 처럼 벌어졌고 지금의 학생들은 이를 아주 심각한 문제로 여긴다. 그것이 2021년 현재의 사회적 가치다. 문제의 교사는 필자와 비슷한 연배로 당연히 지금과는 다른, 필자와 비슷한 세상에서 성장했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바뀌었다.

현재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있지만 외부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에 대한 고소, 고발이 언급됬다는 제보가 있으며 가장 심각한 내용은 재학생들이 외부에 학교에 불만을 적시할 경우 징계하겠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만약 이러한 주장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재학생들이 이 땅에 태어나자 마자 부여받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학교로 부터 침해받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학생을 보호해야 하는 학교가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부족해 헌법적 권리 까지 박탈하는 지경에 까지 이른 것일지도 모른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일제 시대에는 2.8 운동과 3.1 운동을 주동하고 이승만 독재 치하에서 4.19에 앞장 섰던 보성의 선배들을 볼 낯이 없게 된다. 혹여나 학교가 필자를 사법적으로, 정치적으로 공격한다고 하면 일개 장삼이사인 필자가 산산히 찢쳐나가는 것은 뻔한 결말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선배들도 권력 앞에 분쇄 되지 않았던가 그 분들이 그런 걸 신경이나 썼던가?

필자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현상 자체는 이해할 수 있지만 2021년을 사는 시민으로서 학교의 행동에 동의를 할 수는 없다. 시대는 변화했고 특별히 감추어진 다른 진실이 없다면 어린 학생의 문제 제기가 정당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학생의 문제 제기는 수용되야하며 이 과정에서 학교 구성원들 마음속에 내제될 불만이 만들어내는 무형의 불이익 까지 막을 장치가 준비되야 할 것이다. 어느 은사님의 말씀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너희들의 학습권은 선배들의 투쟁과 희생으로 확보된 것이다. 너희들도 미래에 후배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배웠다. 그리고 또다른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를 배우던 보성중학교 재학 시절의 시간이다. 여기서 껍데기는 순수하지 못한 모든 것을 지칭한다고 했다.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이 이 십 년 전에 뿌린 씨앗이 후배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와 문을 두드리오. 껍데기는 가시오!”.

<John Kim (김상우) 보성고 의혹 대책 위원회 위원장, 보성고등학교 92회 졸업생, Die Neue Generation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