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와 공감 그리고 공정성에 대하여

동아일보는 지난 6일(인터넷판 기준) <‘공부 잘한’ 이준석에게 드리운 짙은 그림자>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로 가장 유력한 이준석 후보의 정치 철학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칼럼은 이준석 후보의 ‘공정 담론’을 언급하면서 이 후보의 능력주의는 ‘공정하다는 착각’이라고 마이클 샌댈의 저서를 인용해 공격했다. 하지만 이는 작성자가 시류를 읽지 못한 것이다. 이준석 붐을 만들어 낸 2030 남성들은 운동권 세력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성장하였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운동권 세력은 능력주의를 비판하고 작성자의 논리를 사회에 적용하면서 그것이 공정함이라고 규정했다. 그런 교육을 받고 성장한 2030 남성들이 이에 반발하면서 똑같이 공정성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2030 남성 집단이 작성자가 말하는 관점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2030 남성 집단은 운동권식 공정을 겪어 보니 능력주의 보다 덜 공정하더라는 준엄함 평가다. 2030 남성 집단이라고 이야기하면 누구나 우습게 생각하지만,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정치 세력으로서 기존 정치 세력의 과오를 지적할 때는 어리고 치기 어린 집단이 아니다. 그 잘난 배려 타령을 해서 그게 꼰대들이 이야기하는 공정성이 확보 됬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차라리 노인들이 추구했던 능력주의가 더 공정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작성자는 공감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배려를 위한 TO 만큼 합격할 수 있었지만 불합격하는 취준생과 입시생들의 눈물에 대해서는 왜 공감하지 않는가? 2030 남성 세대는 세대론의 관점에서 보면 그 누구보다 치열한 경쟁을 경험하는 세대다. 이 극한의 경쟁을 경험해 보니까 그 배려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는 이야기다. 누가 이들에게 반박할 수 있겠는가?

정의와 공정함에 대해서 논한 철학자는 마이클 샌댈 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철학자들마다 관점은 다르다. 그런데 이 칼럼은 마이클 샌댈의 논리가 무슨 유일한 진실인양 툭 던져놓고 모든 논리 전개의 전제로 사용한다. 하지만 애초에 2030 남성들 다수는 마이클 샌댈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다른 경쟁자가 나보다 더 유리한 교육 환경을 가졌을 수도 있고 끝내 주는 과외를 받아서 명문대에 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실력으로 평가 받는 것이 더 공정하고 덜 억울하고 자신이 받아들일 만하다는 사고방식을 왜 이해할 수 없는가? 경쟁에서 질 수 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불리한 점을 안고 경쟁하다 경쟁에서 탈락해서 불쌍하니까 열심히 노력한 다른 경쟁자를 탈락시키고 대신 꽂아주겠다는 논리는 공정함이 아니라 동정이다. 공정한 경쟁이었다면 이런 동정은 필요 없다는 발상이다.

사회적 약자의 존재를 2030 남성 집단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필자가 장담할 수 있다.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 중 하나라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만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다만 납득할만한 진짜 공정다운 공정한 경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걸 약자에 대한 외면으로 몰아 붙이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이준석 후보는 당대표로 나서면서 2030 남성 집단의 욕구를 성실히 반영한 정치철학을 내놨다. 동아일보는 이준석 후보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2030 남성 집단 전체를 깍아내린 것이다. 동아일보는 언론사로서 민심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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