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가 아니다 부속품도 아니다

어느 부사관이 상관도 아니고 같은 계급의 고참 부사관에 의해 지속적인 성범죄에 노출되다가 결국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야 말았다. 동료들 특히 상관들은 성범죄를 단죄하지도 않고 내부적으로 해결하려 하지도 않았으며 반복되는 성범죄를 멈추려는 시도 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들이 자신 보다 아래의 위치에 있는 군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노예나 부속품 같은 것으로 보는 시각은 인간의 고통을 무가치하게 여긴다. 수 많은 군 부조리 사건에서 부조리한 상황에 처한 사병 혹은 간부들에게 상사들은 오히려 분노를 표하고 무조건 감내할 것을 요구한다. 무한한 감내의 끝은 죽음 혹은 폭발이다. 이들은 후자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이 져야할 책임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저 부속품 끼리 괴롭히다가 당하는 쪽이 부셔져 버리는 것이 대한민국 국군의 간부라는 것들이 바라는 바이다.

“참으면 윤일병 못참으면 임병장.”이라는 어느 인터뷰 내용이 격언 처럼 굳어진 것은 이 한 마디가 담고 있는 진실의 무게가 매우 무겁기 때문일 것이다. 국군은 단 한번도 구성원들 간의 부조리 아니 부조리라는 단어는 너무 지나치게 상황을 순화한다. 군 내부의 범죄행위에 대해서 조금도 해결 의지가 없다. 이들이 군 내부 범죄에 신경을 쓰는 유일한 이유는 피해자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이 사례가 외부에 알려졌을 때 자신들의 승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속품을 위해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수고를 쏟는 상황은 원치 않는다. 이들의 시각에 사병이나 부하 간부들은 동증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방치 속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한히 괴롭히다가 전역하던가 아니면 피해자가 죽어 버리는 것이다. 이들은 피해자의 고통이나 죽음에 아주 작은 연민도 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죽으면서 자신들의 방임이 노출되지는 않아야한다. 노출되면 역시 승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부사관의 죽음에도 똑같은 태도가 작동되었다. 부사관이 지속적으로 성범죄에 노출되었고 이것에 대해서 보고 체계를 통해 해결을 요구했지만 상관이라는 사람들은 성범죄가 시스템에 올라가면 자신들의 관리 책임이 부각 될 것이 두려워서 이것의 원칙적인 처리를 차단해 버렸다. 그리고 피해 부사관에게 인내하고 시스템에 문제 제기를 하지 말 것을 강요했다. 자신들의 승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피해 부사관에 대한 조금의 연민도 관심도 없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가해자를 제제하거나 하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부속품들이었기 때문에 가해 부사관이 피해 부사관을 강간을 하던 성노예를 삼던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다 피해자가 조용히 자살이라도 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완벽하고 훌륭한 결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목숨을 끊으며 이제 까지 벌어졌던 자신들의 훌륭한 조치를 고발하여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된 것을 원망하고 망자를 마음 속으로 모욕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군에서 늘 벌어지는 일이다. 가해자의 성과 피해자의 성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수 없는 가해가 벌어지고 수 없는 자살과 돌발 행동이 발생하는데 그 성별을 따질 것도 없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의 범죄 행위가 단죄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이렇게 수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스러져 가고 있다. 그것은 군 구성원이 피라미드 아래의 부사관 부터 장성 까지 이 부속품 따위의 인권과 생명은 조금도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들의 발목을 잡지 않고 어디 가서 자살이나 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국군의 모든 부조리 해결 시스템은 간부들의 이러한 욕망과 맞물려 피해자가 자살하는 쪽으로 몰아가게 설계되어있다. 어디 단 한명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이 것이 나라인가? 그들이 어디 군인인가? 인간 백정이다. “우리의 주적은 간부.” 이 말이 왜 수 십 년 동안 통용되는지 군 수뇌부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들에게 명예는 사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