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도 절도 없는 코로나

코로나로 국민의 삶에 제한을 두는 ‘사회적 거리 두기’는 그 용어도 근본이 없이 갑자기 등장했지만 이 일렬의 통제의 종합선물세트는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토론도 선행되지 않았다는 것에서 매우 우울한 상황이다. 물론 긴급한 국면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괴물은 괴물이다. 그런데 이 사회적 거리 두기가 도저히 끝나질 않고 반복하고 또 반복된다. 그리고 이제는 3단계의 극단적인 조치도 목전에 있다.

이 따위로 문제가 악화된 것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중국에서 촉발된 유행성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중국인들의 통행을 전혀 통제하지 않은 것에 있다. 당시 중국에선 출국하는 자국민을 전혀 검사하지 않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도 전원 검사를 실시도 하지 않았으며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국에서는 감염자가 전혀 들어오고 있지 않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오직 중국에서 귀국하는 한국인만 감염이 되어있다며 이를 비판하는 국회의원에게 비아냥거리기 까지 했다.

이제는 중국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이동을 멈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를 작동 시키는 운동권 사람들은 당시 감염된 중국인은 입국한 적이 없다고 하거나 그 나마 물러선 태도는 만약 그랬으면 중국은 우리나라에 경제 보복을 가했을 것이라며 상대를 ‘극단주의자’로 모는 것이다. 물론 한국을 제외한 베트남, 대만 같은 국가들은 중국인들의 입국을 제한했으며 중국은 보복을 가한 적이 없지만 여기 까지 반론할 기회 조차 주지 않고 돌아 서 버린다.

이런 제멋대로 대응책과 비판하기 전에 휙 돌아서는 태도는 엉망진창의 상황을 낳았다. 운동권 관료들이 고안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는 점염병 전파를 막기 위한 통제가 아니라 통제를 위한 통제였기 때문에 기준도 없고 설계도 없다. 과학적인 근거 같은 것은 따지지도 않으니 잠깐 효과가 있는 듯 하다가 시일이 흐르면 어딘가 공백이 있는 분야를 통해서 싹 퍼져 버린다. 그런데 그럴 때 마다 정교함은 애초에 내다 버린 정책이 아니라 국민들에게서 원인을 찾는다.

운동권 사람들은 오직 한 가지만 잘하고 어떠한 것도 잘하는 것이 없다. 그것은 신조어인데 바로 “정치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