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이 보여주는 집 사야하는 이유

지금은 정체를 규정하기가 까다롭지만 본래 공산주의자들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을 위시한 운동권 집단은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희대의 프레임을 생산해냈다. 집을 사는 것이 큰 스트레스인 일부 국민들에게 획기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사람들이 저 말의 함의된 내용이 바로 “어떻게든 내 집 마련은 없다.”는 걸 알게 될 때 까지에 국한되었다. 이 프레임이 고약한 것은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모든 대상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사는 것이 아니라 찍는 것.”, “차는 사는 것이 아니라 타는 것.”, “쌀은 사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 보니 세상 모든 것에 적용되는 저 프레임이 소름이 돋는 문구인 이유는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사회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 세상이 되고야말기 때문이다. 붕괴된 소련 보다 더 매운 맛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3평(과거 19평형) 짜리 아파트를 둘러 보며 어리다는 조건 하에 두 아이도 충분히 키울 수 있다는 발언을 해서 사람들의 분노를 샀는데 청와대는 그 뒤에 발언이 중요하다고 강변한다. 정말 중요하다. 다만 청와대는 이것이 면죄부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더 끔찍한 발상이다. 해당 발언은 이렇다. “살기 좋은 중형 아파트로 옴겨 갈 수 있는, 굳이 자기 집을 꼭 소유하지 않더라도”라고 발언한다. 이 발상은 계속해서 국민들을 임대주택이 붙들어 놓으려는 의도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집마련이 소중한 대다수 사람들에게 끔찍한 내용이 된다. 혹자는 임대 아파트 살다가 내집마련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지만 저런 의도를 가지고 정부가 임대아파트 공급에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아파트 분양 물량은 굉장히 급감하게 된다. 실제로 정부 계획도 그런 상태다. 내집 마련은 더 어려워질 예정이며 그러한 이유로 집값은 더 오를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저 소련에 대한 미련이 이런 한심한 정책을 밀어 붙이게 된 것이다.

다시 운동권 사람들의 프레임으로 돌아와서 인간은 소유욕이라는 것이 있어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소유하고 싶어 할 수가 있다. 특히 집이 그렇다. 물론 용도에 따라 렌탈을 선호할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집 만큼은 언젠가 소유하고 싶은 대상이다. 내가 사서 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유난히 그래야 하는 이유를 바로 이 날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줬다. 임대아파트 거주자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해당 동네 주민의 글에 따르면 대통령의 정치쇼를 위해서 새벽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하는 폭력적인 행동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경호를 이유로 사람들을 나오지도 못하게 막아 버렷다고 한다. 과연 민간 아파트였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도저히 허락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소유한 아파트이기 때문에 입주자들은 온전한 권리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소유는 권리와도 이어져 있다. 소유하지 못한 국민들은 그 만큼 권리도 제한 받을 것이고 정부의 권리는 더 커질 것이다. 그것이 공산 국가가 끔찍했던 이유기도 하다.

내 집이 아니라는 것은 국가임대아파트에서도 서러운 것이다. 이 사실을 증명한 현장이 문재인 대통령이 내집 마련을 추구하지 말고 국가임대아파트에서 살라고 피력하는 정치 쇼의 현장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