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Under Run

– 한국 병원들은 MERS와 같은 비상사태에 대처할 여력이 있는가

1. CD-RW 보급 초창기에는 CD를 굽다가 ‘뻑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드디스크의 정보를 일단 버퍼에 채웠다가 순차적으로 CD에 기록해야 하는데, 기록하는 레이저가 중간에 잠시라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레이저 기록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버퍼가 바닥나면 적절한 지시를 받지 못한 레이저는 기록할 부분을 놓치고 만다. 버퍼 언더런이다.

2. 고속도로가 아무리 막혀도 갓길은 비워둬야 한다. 이런 비효율을 감내해야 하는 이유는 비상시에 구급차나 소방차가 긴급상황에 그 길을 신속히 이용하기 위해서다. 갓길은 보통 운전자에겐 없는 길이나 마찬가지여야 한다.그런데 한국 의료에는 버퍼와 갓길이 있을까? 한국 병원들은 전쟁이나 지진, 또는 전염병처럼 대량으로 환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비상 체제를 성공적으로 가동하지 못할 것이다. 평소에 이미 한계까지 사람과 시설을 끌어쓰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에서 트럭 뒤를 바짝 따라붙어 가면 공기저항이 줄어들어 연비가 크게 개선된다. 그러나 트럭이 급정지라도 하게 되면 바로 사고가 나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연비를 위해 안전을 포기한, 트럭 바로 뒤의 승용차다. 우리는 탑승객이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연비에 만족하고만 있었다.

주당 40시간을 일하는 미국 의사는 국가재난 상황에서 80시간을 근무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가 일시적으로 두 배로 늘어난 효과를 즉각적으로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주당 140시간을 일하는 한국 신경외과 전공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평소에도 이미 한계를 강요당했으므로.. 좋게 봐주면 한국 의료는 의협심(대충 히포크라테스 선서 정도의 의미다)으로 지탱되는 안정협심증 상태다. 안정협심증은 심장에 산소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졌다는 신호다. 심장이 휴식하는 평소에는 좁은 혈관으로도 나름대로 괜찮다가, 운동을 해서 산소를 많이 소모하게 되면 혈액 수송량이 따라주지 못해 통증이 발생한다. 새로 역병(plague)이라도 생기면 안정협심증은 급속도로 악화되어 불안정협심증(unstable angina)이 된다.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과에서는 실습학생마저 수술의 멤버인 3번째 어시스트로 승격시키는데, 이것을 STudent분 절로 상승이라고 한다. 그런 과에는 intern이라도 많이 배정해야 (internvention) 한다.

한편, 무작정 의사를 늘리면 기피과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순진한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대 정원을 아무리 늘려 봤자, 먹고 살기 힘들어진 의사들은 더 안전한 길만 가려고 한다. 인력이 부족한 과에선 일이 힘든데 보상마저 적어지니 (Value/QOL mismatch) 아무도 안 가려고 하고 당직과 콜 없는 인기과에만 몰리게 된다. 이 현상을 ‘콜 오느니 스틸(coronary steal)’이라고 부른다. 어딜 가나 다 shunt찮지만..

MERS 환자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력과 시설과 돈이 필요하다. 의심에서부터 확진까지, 진단과 격리와 치료까지 단 하나의 빈틈과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MERS가 없었을 때에도 응급실은 이미 전혀 여유가 없는 전쟁터였다. 더 이상 오래 일할수 없는 의사와 이미 꽉 찬 병상. 버퍼는 당연히 바닥난다. 하나의 응급실이 문을 닫으면 다른 응급실도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대책이 뻑날 수밖에.

(이 칼럼은 지난 2015년에 작성되었습니다. – 편집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