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멋대로 방역은 왜?

정부의 방역방침이 기준이 없고 제멋대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사람들이 활동을 줄이고 서로 접촉하는 횟수가 줄면 호흡기 감염병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은 이제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빈축을 사는 것은 도저히 진지하게 실효성을 검토하지 않은 것 같은 방침을 국민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9시 이후 활동을 제한하지만 그 시간을 9시로 정한 사유는 딱히 없다는 것이 서울시 공식 입장이다. 식당에서 식사는 허용되고 카페에서 음료 섭취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방침이 좀 더 세부화 되면서 카페에서 음식 섭취를 하면 음료 섭취가 된다. 10인 이하 파티도 기업 주최면 단속 대상이고 개인 모임이면 허용된다. 이게 무슨 엉망진창이란 말인가?

이렇게 된 이유는 운동권이 사회주의 문화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시대의 운동권 집단은 사회주의 집단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다. 정확히 말하자면 운동권은 운동권일 뿐이다. 하지만 운동권 세력은 분명히 1990년대 소련이 붕괴되기 전 까지 공산주의 국가를 꿈꾸던 사회주의 집단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들은 소련 붕괴 이후 사회주의를 좋아하지만 남에게만 강요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되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집단의 습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누군가를 희생시키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는 모든 문제점에 봉착했을 때 언제나 누군가를 희생시켜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는 개인이나 집단을 더 큰 집단이나 국가의 부속물로 사용하고 희생을 당연시하고 바람직하게 여기는 이념적 특징이 야기한 현상이다.

운동권 사람들은 변질된 사회주의자였던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희생을 굉장히 즐기고 바람직하게 여긴다. 이들은 항상 어떤 집단이나 개인을 희생시킬 욕구에 시달리다가 이 사회가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기꺼이 제단에 바친다. 이들은 코로나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부득이한 고통을 국민들에게 청하는 것이 아니다. PC방 업주라던가 카페 사장이라던가 하는 자영업자들을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희생시킬 절호의 기회가 코로나인 것이다. 나아가 국민 개개인을 모두 희생의 길로 몰고 국가가 자유와 권리를 짓밟을 기회로서 코로나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효를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자영업자들을 도산으로 모는 정책만 양산하는 것이다.

실효성도 합리적으로 검토하지 않은데다가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은 애초에 전혀 고려되지 않은 이런 정책만 준비해뒀다가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늘자 마자 쏟아내는 것을 보자. 이것이 운동권의 속성이다. 이것이 이념이다. 누가 지금이 탈이념 시대라고 했는가? 이념은 지금도 당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