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진의 남용

미국 핵우산 정책의 문제는 그게 실행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거다. 서울이 핵을 맞았을 때 워싱턴이 보복당할 각오를 하고 베이징을 날려버린다는 약속이 말이 되냐는 것이다. 보복한다고 이미 핵을 맞은 서울이 복구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서울이야 한국 핵심이니 그 자체만으로 세계대전 발발이라 그렇다 쳐도, 신안이나 제주도에 맞은 정도라면 더욱 애매해진다. 이것은 심지어 미국 본토 방위에도 적용된다. 사람이 살지 않은 네바다 핵실험장에 핵을 맞았다고 모든 핵무기를 적국으로 발사하는 둠스데이머신을 가동할 당위가 있을까?

철저히 계산된 도발은 반격의 수위를 애매하게 만든다. 영국이나 캐나다같은 운명공동체면 몰라도, 일본보다 좀 나가 있는 전초기지를 위해 본국의 이익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핵우산은 그저 핵확산을 막기 위해 어떻게든 둘러대는 사탕일 수도 있다는 거다. 일단 핵을 맞으면 핵우산에 대한 신뢰가 깨질 텐데, 그때 가서 생각해 보면 되지. 물론 이런 우려는 핵우산 수혜국들도 잘 알고 있고 선례가 생기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약속을 이행할 거라는 예측도 많다. 핵보복이 실행되지 않으면 그걸 믿고 핵개발을 포기한 나라들의 배신감과 후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물의를 일으켜 공석이 된 자리에 보궐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당헌을 내세웠는데, 막상 그것이 서울시장 자리가 되어버리니까 당헌을 어기고 후보를 내기로 했다. 하긴 어떻게 서울시장이 성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상상했을까. 그 당헌은 강제성도 없고 국민께 약속드린 것도 아니며 내부적인 자정 규정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깐깐한 규정으로 다른 당보다 더 도덕적이고 더 청렴하다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공매도처럼 어차피 지키지도 않을 약속 끌어다가 지지율에 사용한 것이다.

한편 물의를 일으켜 다시는 복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동정표를 끌어모았다가 사람들의 관심이 옅어질 즈음 복귀하는 이들도 많다. 물론 복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이며 실정법을 어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면 오히려 없던 거부감이 생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약속을 스스로 내세워 인간관계든 명예든 각종 이익을 다 취한 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생각조차도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섣불리 ‘평생’ ‘절대로’ 등으로 못을 박아버리는 그 가벼움도 싫다. 문신에 대한 거부감은 이런 측면이 크다. 자신의 생각이 나중에 바뀔 수도 있고 후회할 수도 있는데도 함부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해버린다는 것. 그런 판단력과 자기검증을 비즈니스나 인간관계에서 신용하기는 어렵단 것.

단정하지 말라. 배수진을 치지 말라. 현재의 나 자신이 보증할 수 있는 건 현재의 나 뿐이다. 미래의 나도, 현재의 타인도 확실하고 영원한 건 없다. 현재의 내가 얻을 이익을 위해 미래의 내가 처신할 자유를 저당잡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