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중 논란

땡중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불교에서 계율을 지키지 않는 승려를 지칭하는 말이다. 중은 불교 승려를 의미하까 말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중 답지 않은 중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떨 때는 욕설로도 쓰이고 어떨 때는 미묘하게 긍정적으로 쓰이기도 하고 심지어 애칭으로도 쓰인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평가 받는 고승들도 서로 땡중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 유명한 고승 성철도 “마 땡초가 좋은 중 될라 안 카나?”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고 알려져 있다. 땡초는 땡중과 비슷한 단어다.

현재 불교 조계종의 혜민이라는 승려가 자신의 행적이 밝혀지면서 사람들에게 큰 지탄을 받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사건의 시발점은 혜민의 텔레비전 출연이었다. 지상파의 인기 프로그램인 온앤오프에 출연하여 멋진 자신의 집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집이 너무나 많은 것을 갖춘 것이 문제였다. 온전한 집 한 채인 것도 세간의 인식과 달랐지만 가구며 전자제품이며 없는 것이 없었다. 물론 미니멀한 살림이었지만 사람들의 기대완 달랐던 것이다.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남산이 보인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좋은 인테리어, 없는게 없는 세간 그리고 좋은 입지와 좋은 뷰 까지 합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살고 싶은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장 ‘풀소유’라는 말이 나왔다. 혜민이 평소 무소유를 주장했던 것에 대한 풍자다.

그러다 보니 지난 3월 연예인 사업가 홍석천이 혜민을 지칭해 착한 임대료의 다음 타자로 세운 것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당시엔 혜민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단체는 임차해 있다고 밝혔지만 더 파보니 그가 건물을 소유했다가 자기가 대표인 조직에 매각한 사실이 나왔다. 가장 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른 것은 그가 온갖 셀럽들과 어울리고 초고가의 페라리 488 모델을 보유했다고 알려진 부분이다. 게다가 명상앱, 여행 등등의 수익 사업도 힐난을 받았다. 온갖 비슷한 사업모델 중 조계종 승려인 혜민이 운영하는 사업체들이 폭리로 보이는 수익을 추구한 것이다. 수익을 얼마나 추구하는지는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컨텐츠도 빈약함에도 혜민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도태는 커녕 승승장구 한 것이 혹평을 불렀다. 그리고 그가 주장하던 무소유와도 배치되는 경영 방식이었다.

그의 과거 언행도 다시 파헤쳐졌다. 지난 2011년에 베스트셀러 ‘무소유’의 저자인 승려 법정이 무소유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은 인세로 돈을 많이 벌어서라는 해괴한 이야길 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엔 대충 넘어갔지만 그것은 법정에 대한 후안무치한 음해였다. 법정은 생전 자신의 인세를 장학금으로 몽땅 지급해 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치료비가 없어서 고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가 대납하는 사례도 미담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유명 소프라노 조수미의 공연을 보고 의상을 여러 번 갈아입는 것을 비아냥 거려서 본인이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라며 그에 따르는 노력이 어떤 것인지 밝히는 사건도 있었다. 이런 많은 사례들이 있었지만 그의 유명세와 인기로 비판의 목소리는 대충 묻히고 지나갔던 것이다.

그는 이제야 중 답지 않은 중이라며 땡중 논란에 섰다. 사실 사람들은 그럴듯한 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이제 까지 그러한 혜민의 이미지를 돈을 지불하고 구매해 왔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하니 사기를 당한 느낌일 것이다. 자신의 삶을 합리화 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주장하는 무소유는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지되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거부감을 자아냈다. 잔뜩 가지는 그의 태도와 결부해서 잔뜩 가져도 집착하지 않으면 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불교는 우리 사회에 수 천 년을 녹아있었고 그 중 ‘무소유’는 대중도 잘 아는 개념인데 이를 뒤틀어 버렸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게다가 벤츠와 롤스로이스를 몰면서 축첩을 하는 부패한 중들이 늘어 놓는 궤변과도 유사하다.

혜민은 오래 전 부터 신분만 승려일 뿐 수행은 등한시하고 강연 등 돈벌이 활동만 전전한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스님 컨셉의 연예인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그가 듣기 좋은 말을 해준다는 이유로 비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에게 돈다발을 안겼다. 과연 이렇게 돈벼락이 꾸준히 쏟아지지 않았다면 그가 이런 삶을 오랜 세월 유지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혜민에 분노하는 대중이 사실은 혜민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단순하게 이미지와 말을 소비하는 ‘소비자’라고 하더라도 현상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진지하게 사색하는 수고는 들여야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니 수행하지 않는 승려가 불법을 전한답시고 활동하는데에 돈을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