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처절하다

트럼프의 패배가 확실시 되는 시점에서 트럼프 진영에서는 선거의 절차와 공정성을 문제삼고 있다. 트럼프가 결국은 승복할지 미국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선거의 당위를 판단해 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모습이 우스워 보이긴한다. 왜냐면 일단 패배자이고 그 모습이 너무나 처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는 본래 처절한 것이다. 작게는 선거의 결과에 따라 수 많은 정치 종사자들이 실업자가 되지만 크게는 그 지역이나 국가의 미래가 바뀌는 일이다. 패배자로서는 작은 가능성이라도 질기게 물어 뜯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면 선거는 작은 내전이기 때문이다. 건곤일척의 승부이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그래서 부정선거의 가능성은 인류가 존속하는 동안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건 자신의 선거원들과 보좌관과 지지자들을 위해서 최후의 최후 까지 물러서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그것이 정치다. 괜히 정치판, 흙탕물이라고 하던가?

한국에서도 최근 몇 개의 선거에서 부정선거 논란이 일었다. 문제적 행동은 분명히 있었다. 지역 선관위는 투표함의 관리라던가 투표용지 관리에 있어서 아주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은 분명하다. 법원 명령에도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심지어 폐기하는 증거인멸의 행태도 분명히 확인되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벌어져서는 안되는 오류가 있으면 이것은 확인되야 하며 이것이 법적으로 잘못된 것이 판별되면 선거부정이다. 선거부정이 존재하는 선거는 엄밀히 말하면 부정선거가 맞다. 다만 그것이 선거가 무효과 될 정도이냐 아니냐는 별개의 판단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선거에서 진 우익 진영의 반응이다. 대다수는 아주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면서 부정행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음모론자로 몬다. 특히 셀럽급 인사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신랄한 폄하를 퍼붓는 중이다. 이들은 부정선거가 존재할 수 없는 논리적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이런 사안은 검사가 영장들고 가서 실물을 확인해보지 않고는 증명할 수 없다는 것에 기인한다. 기껏해야 잘 쓰여진 각본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논리적인 이유가 말하는 셀럽마다 다 다르다.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미심쩍은 부분을 하나하나 다 파해치며 그 과정에서 자기확신에도 빠지고 음모론도 슬금슬금 떠오르는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이 정말 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 정의의 측면에서는 선거라는 공화정의 신성한 정치행위에 부정 선거는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사실의 측면에서는 낱낱히 세상에 까발리지 않고서는 사실을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의 측면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는 처절한 투쟁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폄하하고 독설을 쏟아내며 검증에 훼방을 놓는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사실 제대로 사실에 기인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 요설이다. 이들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멋있는 척을 하는 것이다. 요즘 말로 “쿨병”이다. 이들 정치인들과 정치계 셀럽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것은 보수 진영에 오랬동안 이어져온 ‘멋진 패배’를 추구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멋진 패배를 위해 선거를 하고 그러다 당선되면 좋은 것 뿐인 것이 이 집단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처절한 의문 제기와 검증의 과정은 이런 ‘멋진 패배’를 망친다.

운동권 진영은 선거 패배 때 마다 부정선거 논란을 촉발했다.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검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도덕성에 타격을 주고 선거 패배로 모래알 처럼 흩어진 지지층의 마음을 하나로 묶기 위한 발버둥이다. 물론 운동권 세력은 그 속성상 최후를 넘어 선을 넘기는 경향이 있고 요즘 유행하는 ‘뇌절’의 단계 까지 가는 추하고 역겨운 지경에 이르곤 하지만 정치 세력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구성원에 대한 도리라던가 정치의 속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운동권 진영의 행태를 보며 멈추어야할 선에서 멈춰야한다는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지금 우익 진영의 주류가 생각하고 있는 멈추어야할 선은 한참 잘못되었다. 스포츠에서도 어떤 종목은 경기가 끝나고 나서 도핑을 실시한다. 그리고 한참 후에 연구실에서 부정행위가 밝혀지기도 한다. 그 때에도 스포츠 팬들 사이에는 동일한 논란이 벌어진다. 온갖 데이터를 들고 나오면서 약물을 했을리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얼마나 논리적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행위는 종종 발견되곤하다.

정치는 진흙탕 싸움장이지 점잖은 특권층의 파티장이 아니다.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증거물을 뒤지는 것도 그리고 모든 검증의 과정 뒤에 멋쩍은 승복을 하는 것도 감수해야하는 정치의 의무다. 하지만 정치가 생존의 전쟁이 아닌 안락한 특권 속에 살면서 유흥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의무 같은 것은 거추장 스러운 흉물일 뿐이다. 물론 음모론이 잔뜩 들어간 모습은 무언가 잘못되었다.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언론의 행태에 실망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증거물을 들추는 것 조차 만류하는 어설픈 합리성은 정치 진영에 해악이다. ‘음모론자’가 족쇄 정도 된다면 이 ‘쿨병 환자’들은 다리를 잘라 버리는 금속 덫이다. 학자니 셀럽이니 하는 이들이 원로 학자의 신중한 의견도 천박한 단어를 동원한 조리 돌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정상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