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게임과 상속세

게임이론에서 유명한 ‘최후통첩게임’의 구조는, 1번 참여자가 상금의 분배 비율을 결정하고 2번 참여자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두 명 다 상금을 받지 못하게 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이 게임은 다시 보지 않을 사이에서 단 1회만 시행되며 제안과 수락에 따른 차후 평판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 기계적인 계산으로는 1번 참여자가 99%를 가져간다 하더라도 2번 참여자가 한푼도 얻지 못하는 것보다는 1%를 가져가는 것이 낫다. 1번 참여자는 그것을 알기에 최대한 유리한 비율을 제시하려 할 것이다. 2번 참여자는 너무도 무력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게임을 시행해 보면, 1번 참여자가 지나치게 불공평한 제안을 하면 2번 참여자가 소액의 자기 몫을 포기하면서까지 판을 엎어버린다고 한다.

나 역시 상금 100만원중 내가 10만원을 받고 상대방이 90만원을 받아가는 꼴을 볼 바에야 둘다 0원을 받는 쪽을 택하겠다. 10만원은 그렇게 비굴하게까지 받아가고픈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금이 100억원이라면 10억원만 받아가는 선택지는 아무래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기분 때문에 10억원을 포기하기엔 내 인생에서 너무 큰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그런 생각을 상대방에게 들켜선 안 된다. 내가 10억원쯤은 포기할 수 있다는 호기를 보여야 상대방이 나에게 30억쯤은 넘기려고 할 테니까… 도덕과 정의의 관점을 배제한다면, 집권여당은 국민의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최대한으로 착취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정책을 밀어붙이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의사 월급을 반으로 깎으면 당연히 의사들의 저항이 심하겠지만 일을 그만두지는 않는 정도라면, 정부는 그 정책을 밀어붙이려 한다.

아 그래서 평생 투자한 직업 포기할거냐고. 하지만 실제로 어느 이상으로 착취를 하려고 하면 내과나 흉부외과의 대량미달 사태처럼 아예 전공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상황이 생겨버린다. 국민 건강에 해가 되는 이 정책은 손해다(이 정부는 국민들의 생명에 관심이 없다는 진실은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 한편 과도한 상속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삼성이 이러다가 한국을 떠나버릴 거라고 경고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삼성은 실제로 생산 기지의 상당수를 해외로 이전했다. 손익을 계산해보니 그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사를 옮기지는 않았다. 한국은 엄청난 상속세를 떼어 가는 국가기도 하지만 그만큼 정경유착이 심한 나라이기도 해서 재벌에 특혜를 주는 면도 있다. 이것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유리한 한쪽만 취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중국은 기업을 창업자에게서 강탈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밀어줄 때는 국가 차원에서확실하게 밀어준다. 기업을 압수당한 창업자는 역설적으로 중국이 그만큼 밀어주었기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삼성이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아직까지는’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이 유리하기에 삼성은 한국에 붙어 있다. 애국심 때문에 남아 있을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 딱하게 순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속세를 99% 매긴다고 한다면 경영자 입장에서는 기업을 한국에 남길 요인이 사라진다. 상속세 70%는 어떤가? 설령 상속세가 90%라고 하더라도 기업을 해체하고 한 푼도 못 버는 것보다는 여전히 낫다. 독재 국가에서 기업을 해외로 이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상속세가 90%가 넘어가도 기업을 운영하는 편이 여전히 낫다. 1조원 대신에 세금 뜯기고 1000억이라도 버는 편이, 고작 월 5억 벌면서 선민인줄로 착각하는 것보다는 여전히 낫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최후통첩게임을 생각해본다. 비굴하게 10만원을 받느니 한푼도 못 받겠다는 사람조차도, 비굴한 10억원은 할 수 없이 택한다. 그렇다면 분배비율을 제안할 권력이 있는 자는 어디까지 모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인가? 재벌들이 한국에서 받는 특혜와 각종 장벽(언어,기업문화,매몰비용)들을 절대 포기하지 못할 거라고 자신한다면 상속세를 더 올려도 된다. 정의와 별개로 국가는 세금을 많이 걷을수록 좋으니까. 하지만 규제가 도를 지나치면 수익과 별개로 ‘기분이 나빠서라도’ 기업을 해외로 이전하든지 아예 사업을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사업을 차라리 포기해버리는 것은 중소기업에서, 해외로 이전하는 행위는 대기업에서 일어난다. 사업으로 순수익 600만원 버는 것보다 월급쟁이로 500만원 아니 400만원을 버는 편이 훨씬 나을 수도 있다. 균형점은 단순히 숫자로 계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가치관에 따라 달라서, 서로의 오판을 유도한다. 정리하자면, 당위와 별개로 정책은 대상자의 행태를 변화시킨다. 그래서 정책의 효과는 대상자의 변화된 행태로 인한 실익까지도 반영해 계산되어야 한다.

재벌에 물리는 세금과 규제를 무한정으로 높이다 보면 기업을 해외로 이전하는 비용을 뛰어넘게 되고, 9조 걷힐 세금을 10조로 늘리려다가 한푼도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때 다른 나라는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우리가 변하지 않아도 기업의 행태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삼성 정도 되는 기업이 더러워서 사업을 때려치거나, 홧김에 해외로 본사를 이전해 버릴 수도 없다. 그것은 창업자이자 경영자인 대주주가 회사를 전부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굳이 지금보다 더 잘 대우해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의사 수입을 월 300만원으로 해도 월 290버는 사람들이 줄 선다면 왜 깎지 못하겠는가? 게다가 국민들이 그 정책으로 인해 집단 폐사한다 하더라도 정부 탓인줄 모른다면 왜 재정을 아끼려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적어도, 기업하기 더러운 나라라서 재벌들이 사업 때려칠거라는 예측은 너무 순진무구한 시각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