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지만 부자가 아니어서 불행하지는 않다. 물론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그렇기에 더 올라가기 위해서 아둥바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먹고살만하면서 더 앞 선 사람들을 헐뜯고 폄하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쟨 탈세햇을거야”, “쟨 착취했을거야”, “쟨 상속받았을거야”… “저거 다 몰수해서 나눠가져야해”… 아니 당신들이 뭐가 그리 불행하냔 말이다. 정말 불행한 사람들이 분노에 찬 것이라면 이해라도 한다.

월세로 살고 있는 애매하게 오래된 구축 아파트에 10년 넘은 중고차 그리고 마트에서 사온 광어회로 아내가 직접 만들어 준 물회. 든든한 배를 두드리며 따뜻한 거실 바닥에서 딸과 뒹굴고 딸의 웃음소리에 따라 웃음이 터진 아내의 모습. 이 순간에 나는 더할나위 없는 행복을 느낀다. 왜 이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물질적인 이유로 불행을 호소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물론 나도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 신혼의 터를 잡았던 이 아파트에서 신축 아파트로 이사갈 계획이 있고 그 아파트는 융자가 있지만 내 소유다. 계획에 없던 지출이라 즐겁기 보다는 치명적인 한 방이지만 적당한 차도 계약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불행에서의 탈출은 아니다. 나는 불행하지 않다. 그저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나의 욕심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파텍 필립 시계가 부러운 것은 자연스럽다. 내가 가지지 못한 포르쉐가 부러운 것도 자연스럽다. 내가 가지지 못한 버킨백이 부러운 것 또한 자연스럽다. 그러나 내가 찬 카시오가 부끄러울 이유는 없다. 내가 모는 국산 차량이 부끄러울 이유도 없다. 내가 든 어느 시장에서 산 가방이 부끄러울 이유 또한 없다. 너무나 부러워서 불행할 것 까지는 없다. 그래서 질시하고 저주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옛날 사람들은 질박한 삶을 강조했다. 어쩌면 지금의 시각에서 봤을 때 별 다른 물질적인 것들이 없던 그 시절 사람들도 욕심 때문에 불행한 이가 많고 적당한 욕심을 가지기는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질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많은 것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현대 사회에서 굳이 안빈낙도와 질박한 삶을 추구하자는 도덕관념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욕심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욕심으로 내가 고통스럽고 가진 누군가가 원망스럽다면 그 감정은 잘못되었다. 그런 이들에겐 질박한 삶의 즐거움을 부르짖던 옛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