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 보다 드라마

필자는 2020년 올해 한국 나이로 38살이다. 필자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학교에서는 남존여비, 남성우월주의의 뜻을 가르쳐 주면서 타파해야 할 과거의 잔재라고 이야기했다. 학우들은 명절에 시골을 방문하여 목격한 일이나 평소 자신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이야기하며 정말로 과거의 인식이 우리 사회에 남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던 것을 기억한다. 세월은 흘러 90년대 중반 부터 이른바 ‘간 큰 남자’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2000년대 초반 한국 사회는 ‘자상한 남자’가 대세가 되고 화장실 앞에는 여성 가방을 들고 시간을 보내는 남성들이 바글바글하게 된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2010년대 말에 와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개기로 갑작스럽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외치며 극렬한 투쟁을 벌이는 세력이 나타났다. 이들 세력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십 여 년 전 부터 알음알음 수 십 만 회원을 거느리고 활동하던 이른바 ‘여초카페’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1) 이들은 모든 사안에서 여성에겐 특권을 남성에겐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들고 나온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째는 이미 이 십 여 년 사이에 기울어진 운동장은 상당히 바로잡혔다는 것이고 둘 째는 좌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위해 우로 기울어진 땅을 파다 보면 언젠가는 우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탄생하지 평평한 운동장은 볼 수 없다는 것이다.2)

페미니즘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한국형 페미니즘은 정치권과 결탁하여 온갖 법안과 특혜를 얻어내고 있지만 별 의미는 없다. 사회적인 큰 인식은 이미 바뀐 상태기 때문에 바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남성 차별적이고 기괴한 온갖 결과물들은 그들의 전성기가 지나면 바로잡힐 것이 분명하다. 남성들의 반발이 크고 여성들 사이에서도 저 집단 – 비록 그 규모는 크지만 – 을 제외하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저 자칭 페미니스트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투쟁이 아니면 누가 이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걷어찬 것인가? 그것은 바로 드라마다. ‘간 큰 남자’ 시리즈의 시작은 1995년에서 1996년 사이에 방영된 드라마 ‘간 큰 남자’의 영향이고 자상한 남성상이 유행하며 자상한 행동을 부추긴 것은 2002년 방영된 드라마 ‘겨울연가’를 필두로한 드라마들이었다.

그 속에는 온갖 정신 나간 구성원이 있을 수 있지만 일반론으로는 남성도 여성에게 사랑받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여성이 원하는 남성상을 닮으려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타인의 욕구 속에서 압박을 받고 변화하려 한다. 그게 이미 1990년대 중반 부터 2010년대 까지 이어져 온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잡히는 과정의 기작이다. 그리고 남성이건 여성이건 일정 수준의 이성적 사고가 가능하다. 실상은 인종차별주의자인 자칭 페미니스트들이 하는 것 처럼 비이성적이고 남성차별적인 제도를 밀어붙이고 그러한 인식을 사회 구성원에게 강요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보시키지 않는다. 그건 오히려 이렇게 불러야 마땅하다. 퇴보.

  1. 이들은 2000년대 “여자는 돈을 쓰지 않는거야.”를 전파하던 집단이다. 지금은 “더치페이는 가성비 연애.”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으니 그 일관성 만큼은 존경할만하다.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진 것은 피해자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영향을 많이 받은 1990년대~2000년대 미국과 유럽의 미디어에서 모든 비용을 척척 내고 모든 걸 자기 손으로 해버리는 남성을 여성을 수동적 인격으로 보는 남성우월주의자로 비난했던 걸 생각하면 저들의 성향이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낄 수 있다.
  2. 그렇기 때문에 한국 페미니즘 주류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인종차별주의다. 독자들은 저들이 한국인 남성을 타인종으로 보고 있다는 것 부터 인식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