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머문 보수 정치

2002년 겨울이었다. 그 시절에는 북한 내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그리 높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많은 선각자들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금은 탈북한 분들이 북한 인권의 주류로 자리잡았지만 그 당시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무명의 운동가 몇몇이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새내기던 필자는 그 현장을 몇 번 찾아 참여했던 바가 있다. 당시 어느 80대 노인 무리를 접한 기억은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있다. ‘오리지널 공산주의자’들을 직접 못격했던 그들은 왜 20대가 ‘서북청년단’을 재결성하지 않는지 열변을 토했다. 좌익은 극좌라는 말이 필요 없이 그 자체로 극단적이었고 거기에 저항하기 위해서 폭력에 폭력으로 맞처는 극우가 판을 치던 시대의 인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젊은 시절 각인된 기억이었다. 필자는 이 노인들을 젊은이들을 자신들의 꼭두각시 정도로 여기는 노인들의 사례로 자주 안급하지만 동시에 젊은 시절 형성된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음을 보여주는 본보기라고 본다.

현재 70대 80대 노인들은 1960~197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다. 그들의 청년기에 가장 첨단의 사상은 극단성을 버리고 합리성을 받아들인 사민주의였다. 이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미래지향적인 신문물은 자신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회주의이다. 말하자면 스마트한 운동권이고 요즘 유행하는 대로 표현하자면 “할아버지가 허락하는 사회주의”인 것이다. 그러니 지난 20년 동안 국민의 힘은 지지율을 고민할 때 마다 이른바 ‘좌클릭’을 해왔다. 뭐가 문젠가 고민하면 늘 그 결론은 ‘최신 유행인 사회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끝장난 이념인데 50년 전을 사시는 분들께 그런 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정권을 잡은 운동권은 40년 전을 사시는 분들이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다. 자유 이념과 개인의 권리는 여전히 유효한 아이디어고 전 세계에서 지금도 자유를 얻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이들이 매 시간 나타나지만 이 노인들의 머리 속에 자유란 이승만이 떠들던 고리타분한 이야기이고 역시 트랜드는 ‘개인의 자유를 때려잡고 국민을 국가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웃긴 건 이 노인 정치인들이 개인의 자유를 옹호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이승만 이후로 군사정권이 표어를 이어받았다. 군사정권의 독재 정치 하에 자유가 어디있고 공화정이 어디에 있겠는가? 구보수 세력은 국가에 의한 계획경제와 부의 강제 분배를 휘둘러 찬란한 역사를 이루었다. 말하자면 독자적으로 구축한 한반도판 수정사회주의였던 것이다. 한국을 사회주의 성향의 사람들이 만든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는데 사회주의와 유사한 조선식 농경문화를 물려 받은 군사 정권과 이들이 육성한 대형 자본이 뒤섞인 교묘한 세상인 것이다. 그리고 그걸 이룬 사람들이 지금의 노인 정치인들이다. 자신들은 개인의 자유와 경제 주체의 자유를 보장한 적이 없으면서 이를 구태로 모는 것을 보면 정말 황당하다. 자유경제를 1800년대 홍콩에 이식된 그것이고 인류가 이제야 거기서 벗어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것인 줄 아는 것 같다. 물론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향은 그것이 아니라고 믿겠지만 이제 까지 주장해 온 정책들이 딱 거기다. 김종인 비대위장이 박결 전 위원장을 지칭하며 “옛날 사고”를 운운하는 것에 황당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