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최선이 최선인가

서울에 미사일이 떨어져도 문재인에게는 아직 레드라인이 아닐 것이다.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이 담배를 꺼내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꺼낸 것이 총이라도 그저 주머니를 정리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총을 장전하더라도 총알을 잃어버릴까봐 그럴 수도 있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더라도 혹시나 곰이 다가올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나를 겨누는 것만큼은 안다.

미국 경찰은 바보가 아니어서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총기를 사용할 의도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발포한다. 아니 그전에 핸들에서 손을 떼는 것만으로도 이미 선을 넘었다고 본다. 총이 재킷 주머니에만 들어있으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총을 쏠 생각을 한 사람은 물론이고 그저 면허증을 꺼내려고 하는 사람도 그 경찰이 무엇을 경계하는지 잘 알고 있어서 자중한다. 운전자가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나중에 따질 문제다.

테러범은 서 있고 인질만 엎드리라는 말을 하며 진압하는 특공대는 없다. 핸들에서 손을 떼지만 않으면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이 미국 경찰이 제시하는 기준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따르기 어렵지 않다. 이 규칙을 모르는 희생자는 안타깝지만, 알고서도 위반하는 사람은 악의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레드라인은 그 다음 진행을 막을 수 있어야 유효한 저지선이다. 핵미사일 탄두가 영공인 대기권에 재진입한 때를 마지막 레드라인으로 칠 셈인가?

운전자가 샷건을 권총만 든 경찰에 겨눈 후에는 레드라인을 선포하는 주체가 바뀐다. 블랙홀의 특이점의 크기는 0이지만, 블랙홀의 크기는 어느 물질도 빠져나올 수 없는 가상의 경계면을 기준으로 한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었지만 아직 특이점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희망이 있는가? 재킷에 손을 넣고, 총을 꺼내고, 총알을 넣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치는 단계단계마다 애써 합리화하다가, 나에게 총을 겨눈 후에야 최고수준으로 응징하겠다는 말은 우습다.

레드라인이 조롱거리가 된 이제와서 논해봤자 의미없는 얘기긴 하지만, 레드라인이 무엇이든간에 그것을 언급한 것 자체가 경솔한 외교이자 자승자박의 실책이었다. 레드라인을 긋기 위해선 그것을 위반한 상대방에게 처벌을 내릴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상대방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성이 없는 반달곰에게 그것도 맨손으로 레드라인을 선언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심지어 미국조차도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는데, 싸움의 주체가 아닌 인질이나 전장에 불과한 남한이 주제도 모르고 그것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한국이 1.5톤의 폭발물을 탑재하려 노력하는 동안 북한은 무려 1.5메가톤의 폭탄을 만들고 말았다.물론 미국은 하루아침에 북한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얻는 이득이 동맹 남한의 피해를 넘어서지 않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그럴 수 있어도 수 십 년 간 그러지 않았다. 그건 결국 ‘못하는 것’이다. 북한의 실체는 김씨왕조 단 하나다. 1천만명의 인민이 죽어도 김정은이 살면 북한은 유지되고, 수뇌부가 와해되면 2천만명은 자동으로 해방된다. 핵무기 실험장을 아무리 폭격해봐야 그곳은 원점도 아니고 피해도 없다. 완성된 핵무기는 실험장이 아닌 데이터에 존재한다. 북한인을 몇만명 죽여도 북한 정권에는 전혀 타격이 되지 않고 국제적 명분만 얻는다. 그래서 북한이 전략적으로 잘 계산해 미국이 말하는 레드라인이 아닌 진짜 레드라인을 넘지만 않으면 오히려 유리해진다.

ICBM 핵무기는 어떤 레드라인도 넘지 않고 끝까지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완성된 수소폭탄이 지금 휴전선에서 터지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는가? 그렇게 인질들은 자기가 묻힐 구덩이를 스스로 파고 있다. 당장 죽는 것보다는 몇 시간 동안 땅을 파면서 살아있는 편이 조금이라도 낫다. 그리고 생매장당해 죽는 것은 의외로 최악의 선택은 아니라는 걸, 구덩이를 파지 않으면 알게 된다. 그렇게 최선의 선택으로 판 구덩이에서 예외없이 모두 죽는다. 그 몇시간 동안 아군이 들이닥칠 확률은 낮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