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시대 저항운동사 – 노무현 시대의 성립

(주) 노무현 시대 저항운동사는 2003년 ~ 2007년의 보수우익 운동이 노무현 시대에 어떻게 저항했으며, 결국 어떻게 노무현 시대가 몰락했는지를 다룬다.

노무현 시대의 성립 그 자체는 이 시리즈에서 다룰 주제가 아니긴 하다. 이 글에서는 이 시리즈의 전체적인 배경을 살펴보자는 의미에서 간략하게 언급하는 정도로 넘어가고자 한다.

2002년에 있었던 대선은 이회창과 노무현의 대결이었다. 이회창은 대법관으로 유명했고 김영삼 시대에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대선 1년 전까지만 해도 크게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당시 김대중의 좌익 정당의 경선에서 갑자기 1위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 김대중은 IMF 사태 이후 집권에 성공하였고 IMF 탈출을 성공하였으나, 2000년 총선과 2002년 지방선거를 내리 참패하였으며 말년에는 인기가 없었다. 따라서 좌익 정당의 후보들은 김대중과의 단절을 어떻게 하느냐, 다시 말해 김대중과 거리가 먼 흉내를을 어떻게 내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노무현은 애초에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어서 김대중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부산 출신으로 정치 초반에는 김영삼의 도움을 더욱 많이 받았다고 한다.

노무현은 ‘서민’을 기치로 내걸었는데, 부자와 서민의 이분법으로 국민을 나누어 지지를 얻는 전략은 적어도 기자의 기억에는 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노태우가 ‘보통 사람’을 내세우긴 했지만 국민을 둘로 나누는 개념은 아니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던 노무현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이회창을 꺾기 위해 부자와 서민을 가르는 전략을 취했다. 그리고 이회창 아들이 병역 비리가 있다는 공격을 했었고, 이회창을 희화화하는 작업도 하였다. 특히 김대업이라는 사람이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가 있다는 내용이 녹음된 테이프가 있다는 주장을 하였으나, 선거가 끝난 후 허위사실로 밝혀져 실형을 받고 복역했다.

노무현이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기존에 알려진 정치인이 아니었다는 점을 들어 ‘서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는 훗날 그를 반대하는 보수우익 세력으로부터는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