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청년단을 생각하다

꽤 오래 전의 일이다. 2002년인가 2003년 쯤 되었을 것이다. 광화문 부근에서 열린 북한 인권을 지지하는 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열 몇 명 쯤 되는 사람이 집회를 가지고 해산하기 전에 대화를 나누는데 우리를 지켜보던 어느 말쑥한 노신사 무리가 덕담을 건냈다. 그러다가 그 중 가장 젊잖아 보이던 노인의 언어가 점점 격해지다가 애꿎은 우리를 탓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때는 서북청년단이 있었는데 왜 그런 걸 안하는 것이야!”

그 때 필자는 서북청년단이 무엇인지 잘은 몰랐다. 전쟁 직후 발생한 반공 성향의 전체주의 집단이라고 인식한 듯 하다. 극우의 등장이자 퇴장으로 배운 기억은 났다. 나는 그 노인을 떠올리면 ‘왜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을 젊은 사람에게 투영하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중에 책을 뒤적거리며 그들은 전쟁 전에 활동했고 활동내용은 정치 깡패에 가까웠으며 학살 전력도 있었다는 걸 배운 기억을 떠올렸다. 당연히 혐오스러웠다.

20년 가까이 혐오의 존재였던 서북청년단에 대해서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재평가는 아니다. 다만 그 노인의 고함이 계속 뇌리를 맴돈다. 그는 시대상이나 시간 순서는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2000년대의 서울 한복판에 그가 서 있었다는 것은 서북청년단이 활동하던 1940년대에 많아야 10대 쯤 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었을 것이다. 그의 기억은 서북청년단에 대해선 희미하고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은 뚜렷하게 담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확고한 분노를 보면 말이다.

2020년 초엽에 피가 끓던 그 때 그 노신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공산주의자란 사회주의자란 얼마나 사악하고 잔인한 사람들인지 말이다. 우한코로나 상황과 차이나 게이트를 보라. 자기 만족을 위해 역병을 들이고 운동권 진영의 영원한 국가 지배를 위해 중국의 종이 되기를 기쁘게 자처하는 이들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음을 느낀다. 그리고 저들이 날뛰는 지옥도에 사랑하는 아이를 낳아 살게 만들었음을 자각한다.

서북청년단 류의 부활은 여전히 끔찍하다. 분명히 시간이 흐르면 힘 있는 사람들의 단점을 들추고 기분 상하게 하는 말을 멈추지 못하는 필자 같은 사람은 저들의 적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식민지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임에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미국에서 겪은 일을 불합리하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싸워야 할 때가 왔음은 직감한다. 탄압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도 안되지만 그럴 수도 없다. 그게 우리 앞 세대가 혼을 쏟아 구축한 시스템이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쏟아 공산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었던 이들과 싸우고 저들을 주류 정치의 무대에서 끌어내리고 저들의 악마성을 증명하는 낙인을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찍어야한다. 저들은 악마다.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광기가 자리잡고 있지만 공산주의 이념은 그 광기를 깨워내는 악령이다. 하지만 서북청년단은 사양이다. 악마와 싸우기 위해 악마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극단으로 치우친 좌익 진영의 현실을 보면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겨야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저 악마들의 지배를 받을 것이니까. 3년 간의 집권기간에도 이렇게 고통과 혼란의 도가니인데 그런 시절이 오면 지옥문을 연 꼴이 될 것이다. 죽기 전에 그런 세상을 보면서 차마 눈을 감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