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실익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좀비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자살하는 광경이 나온다. 그는 좀비에 물렸고 곧 좀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사람을 뜯어먹는 것으로서도 공포의 대상이지만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바이러스의 숙주라는 것으로도 공포의 대상이다. 그렇다. 숙주는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이야기다. 어느 유명인은 중국인이 바이러스가 아니라고 일갈했지만 그는 핵심을 회피한 것이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모두 중국인도 아니고 중국발 여행객 중에는 분명히 숙주가 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보균자 혹은 감염자 말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제한하자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외국인은 입국을 금지하고 내국인은 격리 후 일정 기간이 지나서야 귀가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효과가 없다고 거절했다. 물론 전염병이란 돌아돌다 결국은 퍼진다는 이야기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렇게 사스에 대비했고 우리가 항시 실시하는 검역이라는 것이 본질은 이것이다. 정부는 입국제한을 거절한지 몇 일 만에 후베이성 출신 중국인을 막는 것으로 모순된 행동을 취했다.

그렇다면 또 의문이 생긴다. 후베이성 만큼은 아니어도 심각한 상황이 된 지역이 많은데 왜 막지 않는가? 그럼 운동권 진영은 주장한다. “입국을 막아도 효과가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 다시 반문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후베이성 사람들은 왜 막는 것인가?” 저들도 알고 있다. 검역을 강화하면 아무리 종내는 막을 수 없는 강력한 바이러스라도 적어도 시간은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랬으면 병상이 모자라 자가격리하다 죽을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된 날짜와 치료제 개발 시기가 가까워졌을 것이다.

이제는 실효가 없을지 모른다. 이미 판데믹이 실현됬고 후베이성 말고는 우리나라 보다 심한 나라나 지역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판데믹의 영향을 제한적으로 받는 입장과 다른 나라에 판데믹을 압박하는 입장은 다르다. 대내적으로는 후자가 전자 보다 훨씬 괴롭고 의료시스템에 부담을 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분명 판데믹 이전에는 중국을 염두에 둔 검역 강화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지난 28일 입국금지가 실효성이 없다고 역설하면서 “초기라면 몰라도”라고 발언한 것이 그렇다. 다른 의미로 해석할 여지 조차도 없는 문구다.

어느 운동권 성향의 어용 의사는 방송에서 우한코로나와의 싸움에 힘을 모아야지 왜 비판을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영이 인간을 어디 까지 타락시키는지 목격하는 기분이다. 국가의 역량은 크다. 그리고 한국 같은 선진국 문턱의 중진국은 더 크다. 비판 같은 것을 해서 우한코로나 대비에 지장이 생길 여건은 아니다. 또한 정부는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여전히 검역 확대를 거부하고 있다. 비판을 하지 않는다면 최선의 선택과 또 멀어질 것이다. 위급시라고 비판이 죄악시 될 이유가 없다. 비판이 불가능했던 나치 독일의 최상층이 줄줄이 오판을 내렸다가 멸망했던가? 물론 나치의 멸망은 인류에게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우한코로나 사태를 보아 운동권 세력은 권력 획득 말고는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다. 잘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타인의 입술을 뭉개는 것 말이다. 언제 상황이 변해서 검역의 역할이 부상할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론화 되는 것을 운동권 진영에서 회피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운동권에 붙들려 재앙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큰 목소리를 내어 검역 강화를 요구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