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유용함

공포라는 감정은 그다지 사람들에게 선호받는 감정이 아니다. 공포란 긍정적인 감정이 아니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이를 느끼는 순간이 달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가끔은 즐거움을 위해 영화나 체험의 형태로 공포를 찾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감정이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인지 부정적인 면이 강조된다. 운전을 하다 위험한 상황이 오면 공포 때문에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거나 전쟁에서 공포에 빠진 지휘부가 오판을 내린다거나 하는 사례들이 자주 언급된다. 물론 사실이다.

하지만 공포라는 감정이 부정적인 면이 더 크다면 진화를 거듭하면서 이 감정이 억제되거나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쉽게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공포가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방어요소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높은 곳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위험한 곳에서 조심성을 잃고 죽을 가능성이 높다. 날카로운 날붙이를 보고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면 부주의로 다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공포는 인간의 미움을 받는 감정이지만 사실을 우리를 지켜주는 중요한 감정인 것이다. 물론 스트레스의 원인이니 좋아하게 되긴 힘들겠지만 말이다.

정식 명칭은 코로나-19로 명명된 이른바 우한 코로나는 어마어마한 전파력과 폐렴으로 발전됬을 경우 극심한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줬다. 이 변종 코로나가 발견됬을 때엔 낯선 존재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혔으며 여러가지 방어 대책이 쏟아졌다. 그리고 억측도 폭발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정부는 처음 부터 공포감을 가지지 않을 것을 국민들에게 요구했으며 친정부 성향의 다수 매체들은 집권세력의 정치인들과 함께 공포 마케팅이라던가 가짜뉴스 운운하면서 사람들의 공포를 비웃었다. 사망자가 생기지 않자 불필요한 공포였다는 망언도 서슴치 않는다.

그들의 공포 폄하는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공포가 사람들을 구했다고 보아야한다. 의외로 사람들은 위생이 철저하지 않다. 도시 한복판의 쇼핑몰 화장실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우한코로나의 주요 예방법은 손씻기이다. 공포는 사람들의 위생조치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7번 확진자가 아무에게도 전파하지 않은 것은 만약의 경우 옴길 수 있다는 공포가 그를 철저하게 마스크를 착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어린이들이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야외활동을 할 수 없다는 불평을 소셜미디어에 적는 것이 눈에 띄는데 이러한 공포에 의한 선택이 어린이 확진자 0명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고 볼 수 있다.

운동권 진영은 공포는 불필요했고 수 많은 경고들은 정권을 잡은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조작된 내용들이라고 주장을 하는데 상술했다시피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언론의 경고 때문에 대중은 위생에 집착하게 되었고 이게 가장 큰 방역이었다. 또한 이들은 걱정할 것 없다던가 중국인들의 출입을 막을 수 없다고 프로파간다를 해댔지만 우한 등 극심한 발병지 출신자들을 입국시키지 않는 등 비판자들이 주장한 바를 슬그머니 시행했고 청와대를 소독하느라 난리를 피웠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잘하고 있는데 비판자들이 공포를 조장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실상은 비관론자들에게 등 떠밀려 조치를 취한 것에 가깝다.

이러한 실상을 보면 현재 잘 통제되고 있다는 인식도 의심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비관론자는 의사협회로 입국거절 대상을 중국 전체로 확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우한코로나의 세력이 더 커졌을 때 막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각에선 협회장의 자기 표현 전력을 이유로 정치적 판단이라는 낙인을 찍었는데 낙인을 찍은 이들이 친중성향 정치인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아이러니하다. 현재 한국 상황이 안정적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발원지인 중국에서 상황이 악화되면 그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최악의 상태를 미리 준비는 해놓아야한다. 이것을 마냥 ‘과도한 공포’라고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정치공학이 발달한 집권당과 운동권 사람들의 “정부가 잘 하고 있어. 겁내지 마.” 프레임은 총선에서는 자신들에게 유용할지 모르겠으나 자칫 국가적 방어 태세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공포도 적당해야하지만 프로파간다도 적당해야한다. 경각심을 주는 공포를 부정하지 말자.